한국계 입양아 캐나다인 제니 해준 윌스 39세는 2019년 회고록인 언니, 혈통으로 이어져 있지 않음. 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회고록은 친가족과 만난 뒤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 언어, 장벽, 아이 압류와 국제 비밀 입양, 부모 간의 실패로 인해 멀어진 이복 언니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입양아들 간의 문제도 고발한다. 소수자 집단이 자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폭행에 대해서 숨기고 보호하며, 그러한 방식을 부수고 고발한 행위에 따라오는 공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윌스는 입양아들이 한국에 돌아와 가족을 찾고 뿌리를 찾기 위해 입양아들이 겪어야 하는 감정적 노동과 취약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국제 입양과 탐색 방식이 입양아들이 과정, 가족 그리고 정체성을 찾으려고 할 때 어떻게 관련 지원이나 개인적 자유를 빼앗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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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전 제니 해준 윌스입니다. 만 39세이고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선호하는 인칭대명사는 She/Her입니다.
제니: 언니, 절 믿지 못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친어머니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직접 만났을 때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 사진을 봤을 때……. 무언가를 만졌을 때, 아주 뜨거워서 얼음장 같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사랑에 급격히 빠져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은? 그 전까지는 전 제 친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 못했어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죠. 입양되지 않은 일반인들과 한국계가 아닌 사람들의 좋은 의도로 한 경고를 받아들여서 문화적으로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고 인식했죠. 그 사람들은 어머니들이 우리를 잊고 삶을 이어가고, 과거에 우리를 원치 않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인식이 강해질 뿐이라고 말했어요. 차이마저도 우리가 좋은 삶을 입양된 국가와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친 어머니들의 삶을 방해하는 일은 이기적이라고 말했죠. 우리가 숨어서 지내는 일이 맞는다고 했죠. 숨겨야 할 일이고, 정당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제니: 제 회고록의 첫 부분은 한국 가족과의 재회입니다. 첫 페이지들부터 나와요. 다른 입양 회고록들과는 다른 시작이죠. 보통 입양 회고록들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시간대별로 진행됩니다. 제 회고록은 재결합부터 시작해서 그 사건으로 인한 영향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그리고 약간 이야기가 진행된 뒤 시작하는 이 문단에서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친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죠.
팟캐스트: 그러니까 이 부분은 큰 언니한테 보내는 이야기란 말이죠. 가장 친밀하지 않은 가족 중 하나로 보이는데 왜 언니에게 편지를 쓰셨죠?
제니: 우선 팟캐스트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팟캐스트의 애청자로서 여기에서 인터뷰하게 되어서 아주 기뻐요. 과거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최고의 재회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 질문이 창작에 대한 두 개의 질문을 하시고 있는 기분이라 더 좋네요. 첫 번째 질문은 왜 이 책이 작은 부분들로, 이 작은 장면과 시점으로 나뉘어져 있냐는 질문이죠. 짧게 대답하자면 이 책은 시집으로 시작했어요. 그 뒤에 정리가 되어서 서사가 부여됐죠. 제가 시를 쓸 때는 사람들의 기억처럼 조각난 채로 저에게 영감이 내려와요.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한국에 갔던 뒤 7년에서 8년 뒤에 이 시들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죠. 그래서 이러한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요. 논리적이지 않고, 아이디어들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래서 이 책에서 그러한 사고방식에 따라오는 작성과정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제가 느낀 다른 질문은 이 책에서 왜 이런 언니에게 직접적인 질문이나 편지형식으로 글을 작성했냐는 의문이에요. 제가 그런 스타일을 선택한 이유는 제가 직접 대화하지 못할 상대이기 때문이죠. 언어적 장벽이 있으니까요. 동시에 언니와 여러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하죠. 거기에 더해서 혈통적인 문제도 있어요. 제 언니는 제 어머니와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거든요. 전 제 어머니와 가장 깊게 연관이 있죠. 그래서 그러한 혈통적 문제가 직접적 대화를 어렵게 해요. 그리고 눈치 채셨을 지도 모르지만 편지에서 가장 직접적인 감정이 드러나요. 물론 제 언니에 대한 감정은 아니죠. 하지만 분노와 정치적 수사가 가장 잘 드러나게 되어요. 거기에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하죠. 독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독자 대상으로 직접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세세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문학적 전략이기도 하죠. 대화라는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면서 심문하는 느낌은 줄이고 정보 전달을 하게 되어요.
팟캐스트: 아 네. 이해가 되네요. 그리고 책을 아직 읽지 못한 청취자 분들을 위한 질문인데요. 제니씨가 관계와 장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려운 점은 그 언니분과 이복자매라는 점 때문이죠. 아버지와 친어머니의 관계가 그 당시에는 불륜 관계였고, 아버지가 언니분의 어머니와 결혼한 상태로 제니씨의 친어머니와 관계를 맺었으니까요. 그래서 제니씨가 그 언니분의 삶에 나타난 일이 그 언니 분에게 문제를 일으켰나요?
제니: 네. 제 존재 자체가 제 부모님과 제 친척들에게 부모님의 문제를 보여주는 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시점에 제가 삶에 나타나는 일은……. 물론 저도 성인이었고 언니도 성인이었지만 서로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되었죠. 충분히 비유적인가요?
제니: 제가 태어난 뒤에, 제 친할아버지가 저에게 이름을 주셨죠. 그 다음에 저를 호적에서 지우는 서류에 서명하셨고요. 그 결과 제 상태를 확인하시던 어머니에게서 절 빼앗아 가셨죠. 어머니에게는 제 젖은 머리에 입맞춤을 할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저를 잃어버리셨죠. 어머니의 입에는 어머니 자궁에서 나온 검은 내용물이 짙게 남아 있었고요. 30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이름은 제시카, 킴벌리, 메간과 같은 한국인들에게는 맞지 않는 이름으로 바뀌었죠. 한국인들에게는 다양한 이유로 불가능한 이름이죠.
제니: 제가 대답하는 이름이지만, 제가 그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저한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이죠. 저에게 맞는 이름이 아니죠. 처음부터 전 제 피부색을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고, 포크와 나이프를 옆에 놓고 식사해야 했죠. 크림, 러시아 캐서롤, 아이리시 세터, 형식과 가죽 교회용 신발의 삶에 맞춰 들어가야 했어요. 콘체르토, 가죽 신발 그리고 메이플 설탕 캔디에 묻혀 제 친어머니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죠.
팟캐스트: 제니씨의 대화 방식은 매우 운율적이네요. 자연적인가요 아니면 어떤 사람들에게 배운 기술인가요?
제니: 아 감사해요.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러운 재능과 사회에서 배운 능력을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러한 개인의 성장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 팟캐스트에서 많이 나오겠지만 말이죠. 제가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적은 없으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로서 한 번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전 문학 교수이고,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고, 시를 사랑하니까요. 거기에 문학적인 표현을 쓰기 좋아하기도 하죠. 그래서 관련 문학과 자료들로 주변을 채워요. 그래서 카오미(팟캐스트 호스트)씨가 받고 있는 느낌은 자연적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겠죠. 인터뷰할 때 마다 질문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당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묘사하시나요?” 라고 물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끔찍한 것들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려고 해요. 끔찍한 것들을 아름다운 단어로 묘사하죠. 그러한 부조리가 제가 문학을 읽을 때 저한테 큰 영향을 남기거든요.
팟캐스트: 제가 책을 읽을 때 눈에 띄었던 사실이 생각나네요. 처음에 시를 먼저 쓰셨고 나중에 서사를 붙여 넣었다고 하셨죠. 제가 책을 읽었을 때 제니씨의 책은 아주 영화 같았어요. 읽었을 때 장면이 떠올랐죠. 그게 제니씨가 나중에 하나로 묶으려고 한 생각들일지도 모르겠네요. 독자로서 이런 짤막한 묘사들과 놀라운 이미지가 아주 자세히 묘사되는 것을 읽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언제부터 회고록을 쓰실 생각을 하셨고 회고록을 이러한 기억들을 모으기 시작하나요?
제니: 자료를 모으는 행동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전 일기를 쓰지도 않죠. 하지만 전 그림에 기반을 두고, 생각하고 글을 써요. 그래서 기억은 제 뇌에 고정하기 어려운 그림들과 기호를 통해서 저에게 다가와요. 그래서 영상적인 느낌이 나는 글이 쓰여 졌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제 삶의 극적인 면모가 그러한 영화적 서사를 부여했을지도 모르죠. 제가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는 회고록을 쓰려고 하지 않았어요. 안식년에 논문을 쓰고 있었죠. 아직 끝내지 못했어요. 물론 지금은 그 진로로 돌아가지는 않겠죠. 학문적인 책을 써야 했어요. 하지만 대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죠. 중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교육을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고 있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빈 시간에 제 머릿속에서 이러한 시들이 한밤중에 흘러나오기 시작한 거죠. 90페이지 정도 쓰고 나서야 이게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하필이면 안식년 말미여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때 시에 대한 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기에 서서히 길어지기 시작하자 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논픽션 책을 쓸 생각은 없었어요. 개인사에는 부끄럼을 타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픽션 계통으로 쓰려고 글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최대한 양보해서 창조적인 논픽션 계통을 써볼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출판 관련 과정에서 회고록으로 변모했어요. 전 제가 회고록을 쓰게 된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하지만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뭐 어떤 사람들은 그럴지 모르지만 전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게 제 여정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2016년이었죠. 그리고 책이 출판된 건 2019년 9월이었어요. 아주 빠르게 진행됐죠.
팟캐스트: 많은 입양아들은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하지 않거나 적어도 삶의 후반부에나 그걸 시도하죠. 그 조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시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제니: 제가 보스턴으로 이사했을 때였어요. 그 때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타서 미국에서 살고 있었죠. 제가 처음으로 어른 입양아들을 만났을 때기도 했었죠. 그 이전 봄에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협회에서 입양아 어른들을 만났고, 그중 상당수가 보스턴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죠. 아주 대단한 시기였어요. 캐나다에서, 특히 제 세대 같은 경우에는……. 전 조사를 진행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동시에 어른 입양아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을 정도의 나이였죠. 제가 30살 언저리였을 때였어요. 제가 감명 받았던 이유를 대자면, 캐나다에서는 미국처럼 입양아들이 서로를 만날 기회가 얼마 없어요. 지역성이라든가, 인구 구성이 전부 이런 일에 영향을 끼치죠. 미국 입양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항상 친부모 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항상 흥미로운 주제였죠. 누가 찾고 있다, 찾지 않는다, 문제다, 항상 누군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 주변에 있으면서 어떤 물리적인 형상이 만들어졌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줬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했죠. 해봐야지. 하지만 사실 걸린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믿어버렸어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걸리죠. 아예 접촉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생각하기를 지금 27세에서 28세일때 이 조사를 시작하면 몇 년 걸릴 테니 그 동안 감정 정리를 하고 정신 건강관리도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고 그리고 모든 것을 멈추거나 느리게 다음에는 제가 겁을 먹고 있었어요. 그래서 첫 편지 교환의 시간에는 전 아직도 보스턴에서 살고 있었죠.
팟캐스트: 조사를 시작했을 때 같은 미국 입양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캐나다 입양아들과 미국 입양아들의 정체성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정체성만 아니라 지역의 유일한 아시아계 아이와 같은 성장 이야기도 비슷했나요?
제니: 네. 하지만 동시에 아니죠. 제가 미국에서 만난 입양아들의 경우, 이미 입양아 단체를 통해서 만났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주변에 다른 입양아가 있는 일은 흔했고 특히 한국 입양아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 비슷한 입양아가 있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죠. 캐나다의 다른 입양아들도 비슷했어요. 제가 토론토에서 몇 명의 입양아를 만난 경우가 있는데 토론토에서 미국과 비슷한 단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미국 입양아들이 주축이라고도 하더군요. 밴쿠버에서도 입양아 몇 명을 만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의 경우 다른 입양아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50대에서 60대가 넘었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캐나다의 사례가 제 경험과 비슷하다고 봐요. 캐나다의 경우 대도시가 적어요. 거기에 거리도 있죠. 대도시 출신이라고 해도 미국과는 다르죠. 뉴욕에서 보스턴까지는 몇 시간 내로 여행할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토론토죠. 오대호를 거쳐 가야 하니 운전 시간만 20시간 넘게 걸려요. 그래서 경험이 달라요. 또 인종관련 이야기가 있어요. 아니면 이야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요? 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죠. 며칠 뒤에 관련 모음집을 출간할 예정이에요. “입양과 다문화”라는 모음집이죠. 그 모음집의 기반이 된 논문은 인디고 윌링과 토비아스 후비넷이 쓴 논문인데 다문화 입양아나 아이로서 자란 장소는 다양하기 때문에 다문화 가정으로 자라는 일 자체를 커다란 한가지의 무언가로 인식하면 안 되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배경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저술하고 있어요.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제가 미국에서 느낀 일을 생각하면 말이죠.
팟캐스트: 주변 사람들에 있어서 아주 보호적이라고 이야기하셨죠.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사실중 하나는 입양 부모님이나 입양 가족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행동 몇 가지, 물건 몇 가지나 환경으로 추측할 수는 있죠. 그래서 어디에서 성장하셨고 그 시간대나 그러한 감정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제니: 네. 그 사실을 알아차려 주셔서 고마워요. 전 항상 이야기를 할 때는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도성과 객관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경험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입양 가족은 최대한 떨어트려 놓으려고 생각했어요. 또 인종 정치적인 전략이라고도 생각해요. 단순히 입양아들뿐만 아니라 주류 입양 가족, 주류 백인 가족이나 주류 서구 가족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죠. 그래서 한국계의 혈통과 관련해서 집중하고 싶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토론토에서 한 시간 떨어진 소도시에서 성장했어요. 굿리드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 프로필을 보고 “아니 이 도시를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고?” 라고 놀라던데 제가 작성한게 아닙니다. 제 편집자가 그렇게 작성한거죠. 10만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에요. 그때는 확실히 그랬고 지금은 덜하지만 매우 인종적으로 통일되어 있고 계급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도시죠. 그래서 입양된 사람들에게는 인종적으로 소외되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저는 백인으로 가득한 교외에서 자랐죠. 남부 온타리오 지대의 도시였어요. 그리고 전 공업지대인 도시였죠. 그래서 그러한 배경에서 오는 계급적, 인종적 난해함이 있는 도시였어요. 그래서 복잡한 곳이었죠. 하지만 토론토로 대학에 가기 위해서 이사한 뒤에 그 복잡함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과거에 이상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문제죠. 어렸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논의할 기반이 없었어요. 왜 불편한지 말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제가 이런 쪽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에요.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고 인종학을 가르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그곳에서 항상 맞아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그걸 제대로 설명하거나 논의할 방법이 없었죠. 물론 듣고 있는 분들과 이 팟캐스트 참여자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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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합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죠. 회고록을 쓰는 분들이 가족들의 사생활을 지키려고 했다고 들었어요. 회고록 자체가 개인적인 삶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그 합의를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요. 독자의 알 권리라고 언급하기에는 그렇지만, 이야기를 진실하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걱정하시나요?
제니: 네. 좋은 질문이네요. 하지만 이런 형식으로 말해지는 것은 처음이에요. 제가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네요. 이 회고록을 쓰고 있을 때 생각했던 일은 타인의 보호만이 아니라, 사실 거의 대부분이 저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아주 선량하고 희생적인 사람이라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죠. 회고록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이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나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계산해내요. 합의만이 아니라 경계도 생각해야 해야 하죠. 제 경계와 한계에 대해서 알고 제가 공유할 이야기를 생각하고 숨길 이야기도 생각해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유하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는 숨길 권리가 있으니까요. 전 독자에게 이야기에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B지점에서 C지점으로 갈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거죠. 그리고 제 편집자가 그 일에 큰 도움을 줬어요. 한번은 편집자가 이야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이야기를 시간대 순서로 정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빈 공간을 지적하면서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면 뭐가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해 줬죠. 그래서 저는 독자를 문학적인 요소로 생각하지만 제가 원하지 않는 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그 이유는 특히 이야기, 창조, 설명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의 한계를 이해하고 우리가 그 권리를 다시 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 독자 분들이 그 사실을 이해하신다면 좋겠네요.
팟캐스트: 물론이죠. 하지만 전 욕심쟁이 독자라서 더 많이 알고 싶거든요. 하지만 전 책에 만족했고 제니씨가 제공하지 않은 정보가 없어서 제가 덜 만족했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제니: 또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작가로서 건축 자재를 다 치워야 한다. 글을 건축한 뒤, 그것에 쓰인 자재들을 치우고, 독자들이 중간 부분에서 작가와 만나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 빈 공간을 채워 넣어 주고 그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봤어요. 공생적 관계인거죠.
팟캐스트: 아 저도 그런 관점으로 본적이 있어요. 페이지를 다 읽고, 문단을 다 읽고 나서 말이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생략도 아름다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들이 독자에게 있어서 일을 하게 하는 거죠.
제니: 네. 감사해요. 독자에게 있어서 독자를 믿는 관대함으로 보였으면 해요. 제가 모든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죠. 독자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제가 조금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해도 된다는 믿음이고요.
팟캐스트: 제니씨는 엄마가 다시 만난 지 꽤 지났는데, 당신을 전부 이해하신다고 생각하나요? 또 다른 질문이지만, 엄마와 같이 계시면 달라지세요?
제니: 엄마가 저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제 안에 슬픔이 있다는 사실은 아세요. 아이 안에 그런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슬프죠. 거기에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면 더더욱 그래요. 그래서 이런 만남들이 걱정으로 가득하죠. 이런 강렬한 감정적 연결을 가지고 있지만, 제 경우에는 언어의 한계가 있어서 소통의 한계가 있어요. 고통의 잔재만 남죠. 그 사실을 알고, 해결하고, 상대해야 하는 문제가 많아요. 그곳에 같이 있으면, 계속되는 존재감이 기쁨, 고통, 슬픔, 분노와 공포와 엮이고 소통할 수 없죠. 제가 엄마와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이유가 언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문화적 불안함과 적응 부족도 있죠. 엄마는 절 아기나 어린애처럼 대하셔요. 그리고 제가 소통할 때 어린아이 정도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죠. 그래서 어느 면에서 보면 제2의 유년기라고 할 수 있어요. 가능성의 재구성인 셈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매우 이상하죠. 자신의 일을 스스로 관리하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과는 관계 발달이 지체되는 상황이니까요.
팟캐스트: 고통의 잔재가 남는다는 표현이 아름답네요. 엄마를 언어적, 시간적, 문화적 장벽 때문에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죠.
제니: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엄마와 제 여동생의 앞에 제가 나타났다는 사실의 무게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재회의 첫해에 집중하지 않는 일 자체가 어렵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받아낼 시기에요. 잃어버린 관계를 다시 찾는 시간이죠. 그래서 그 시기의 기쁨에 빨려 들어가기 쉬운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죠. 그리고 환상과 이상을 마음속에 품게 돼요. 하지만 부모도 결국 사람에 불과하죠. 그래서 어렵고 실망하게 되요. 하지만 전 부모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팟캐스트: 한국에 돌아가 살았던 시절은 행복한 시간이었나요?
제니: 한국 입양 기관에서 제 한국 엄마와 연락이 아주 빨리 닿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서류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연락이 닿았거든요. 엄청나게 빠른 일이었죠. 그리고 한 9개월 정도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를 알아갔어요. 한 달에 한번 꼴이었죠.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어요. 엄마는 삶에 여러 제한이 있어서 개방적으로 저와 연락을 지속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아직 대학원을 다니던 중이어서 교환학생을 지원했고, 그리고 한국에서 살고 있던 입양아들과 연락을 했어요. 연구 여행이 됐죠. 좀 이상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게 제가 한국에서 지내는 교환학생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지 결정했죠. 그리고 한국에 도착한 뒤 바로 다음날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났어요. 모두 제가 왜 한국에 갔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서울에 4달에서 5달 정도 지냈어요. 한국 여행도 많이 다녔죠. 물론 제가 제 졸업 논문을 준비하던 기간이었으니 그런 측면에서는 제가 그런 일을 진행하기에는 최악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었죠. 특히 제 논문은 입양에 관련한 논문이었고 그러한 논문을 쓰면서 이런 감정적인 일을 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결정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제가 취직하기 전이었고 다른 일들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진행하기 좋은 시점이었죠. 대학원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고 돈도 있었으니까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생이라서 운이 좋았죠.
팟캐스트: 확실히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입양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의 입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자체가 아무 복잡했을 것 같네요.
제니: 네.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했어요. 조금 과도한 일이기도 했죠. 제가 입양에 대해서 배웠던 모든 것이 제 회고록을 쓸 때 반영되었어요. 자주 일어나는 일, 진행 방향, 인기 좋은 일 모든 것을 알았죠. 그리고 그 모든 지식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적용을 해보려고 했어요.
팟캐스트: 입양아 모임과 함께 하실 때 고통과 트라우마를 보셨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와, 그리고 혼자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을 보셨죠. 그게 충격적이셨나요? 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를 같이 해결하는 모임과 접촉했을 때의 대응 방식은 어쩌셨죠?
제니: 그렇죠. 좋은 질문이네요. 미국에서 만난 입양아들과 만날 때는 평범하게 놀았어요. 스포츠 게임을 보러 가거나 독서모임을 하거나 그랬죠. 물론 진지한 이야기도 했지요. 하지만 한국에 온 입양아들이 원하는 일은 자신들에게서 빼앗긴 것들을 되찾는 일이었죠. 감정적으로 슬픔, 정당함, 분노로 가득하고, 동시에 주변에 섞여 들어갈 수 있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다는 기쁨이 있죠. 어머니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요. 모순적인 기쁨과 정당한 권리에 대한 요구가 있죠. 하지만 동시에 소속감이 없고, 그리고 입양아일때 매일 이런 삶을 누리지 못했다는 분노도 섞여 있어요. 그래서 감정적인 폭탄이에요. 거기에 더해서 어떤 사람들은 동시에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운데다가, 어떤 결과가 나오던 힘든 일이죠. 그래서 제가 만난 사람들은 동시에 가장 즐겁고 기뻐하는 태도와 가장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동시에 보이고 있었어요. 물론 제가 도덕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어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는 조금 이기적이게 될 수 있죠.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 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회고록을 생각해보면 항상 과용이나 무모함에는 항상 결과가 따라와요. 그리고 많은 소수자 집단이나 고통 받은 집단은 내부의 고통이 있고 따라서 내부적인 해가 있죠. 그래서 이 입양아 사회를 이상적으로 묘사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적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팟캐스트: 항상 사실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죠. 모두가 자기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중요한 일에 대한 통합적인 진실도 중요하죠. 그러고 보니 언급하셨던 것이 서울 입양아 게스트하우스에서 당한 성폭행에 대해서 언급하셨죠. 제가 2017년에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성폭행 관련 문의를 했을 때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공적으로 이런 일을 고발하고 그 고발에 대한 반발에 대해서 걱정하시지는 않았나요?
제니: 제가 생각하기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겪거나, 보거나 경험한 고통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는데 있어서 저항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런 상황, 입양아 간의 상해는 제가 겪은 최초의 고통이 아니거든요. 저에게는 그렇게 특이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살면서 그러한 문제를 겪어왔고 말해왔으니까요. 전 제 경험이 부정당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제 공포는 제 자신이 마음속에서 우리 집단과 우리 집단 내부의 남성에 대해 얼마나 말하고 얼마나 보호해야 하는지 논쟁하는 데에서 나와요. 다양한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서 관대하고 특정 문제에 대해서 과도하게 옹호하고 비밀을 지키는 일이죠. 그래서 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얼마나 내 혈족과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폭로하느냐 숨기느냐의 제죠. 그리고 비입양아나 백인들 같은 주류 사회의 인식에서 이런 문제는 얼마나 숨겨야 하죠? 특히 주류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보고 악용해 다른 종류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 사람의 경험을 사용해서 제노포비아를 일으킬 수 있고, 반아시아계 인종감정을 불러일으킨다던가, 반대쪽에서 반감을 일으킨다던가. 악용할 방법이 많죠. 그래서 이런 이야기에 있어서 얼마나 숨기고, 얼마나 사람들을 지키고, 언제 지키는 행위를 멈춰야 하는지가 제 가장 큰 문제지요.
제니: 이러한 조사를 하게 되면 가족이나 부모님이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러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놓는 경우가 많아요. 상황이 그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불공정함이 우리 집단 안에서 드러나기 마련이죠. 그래서 탄생지 조사, 뿌리 탐색이라고 부르던 이 여행 자체에 제도적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게스트 하우스라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죠. 제도적으로 결함이 있어요. 우리들은 아주 절실한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타인을 믿고 룸메이트를 하거나, 모르는 상대에게 신뢰를 보내야 하니까요.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자주 이러한 일을 해야 하니까 우리의 안전에 위협이 가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빈번하죠. 하지만 이 방식이 우리가 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에요.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죠. 그리고 뿌리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입양아들의 나이는 가면 갈수록 어려지요. 물론 전 입양 부모들이 이러한 뿌리 찾기 여행을 지원해주고 응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18세 정도 되는 아이들이 뿌리 찾기 여행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혼자 가게 되면 혼자서 이런 문제를 겪게 되죠.
팟캐스트: 네 동의해요. 아주 위험한 과정이죠. 이러한 과정을 혼자 겪으면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으니까요. 친구들과 떨어져 있고 혼자서 해야 하니까 말이죠.
제니: 어떤 경우에는 친구들에게도 숨겨야 하니까요. 친구들에게 따라오라고 할 수도 없죠. 아주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개인적이고 불편한 일이니까요.
팟캐스트: 그리고 소통이나 다른 문제를 담당하는 입양기관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적으로 인식되니까요. 그러니 입양기관과도 상대를 해야 해요.
제니: 모두를 믿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해지는 순간이니까요. 하지만 경험의 일부에요. 입양아들이 모이면 서로의 정보와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러면서 친밀함과 믿음이 쌓이게 되어요. 그리고 다른 어른 입양아를 만난 적이 없다면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껴 보는 감정이죠. 그래서 믿음과 경계에 대한 본능이 이러한 관계로 흐려져요. 전 이런 문제가 피해자 잘못이라고 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맞아요. 위험에 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까요. 그것이 문제죠.
제니: 우리 같은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은 상처 입었다고 하죠. 망가졌다고 하고요. 머리를 흔들면서 우리가 한국 부모, 형제, 자매, 친척을 찾으려는 광경을 바라봐요. 다양한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개인 기업에 우리 유전자를 넘겨주고 우리가 친척을 찾을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것을 보죠. 우리가 탄생 국가에서 여행자가 되는 광경을 봐요. 게스트하우스에서 게스트하우스로 넘어가면서 돈과 자존심을 잃어가면서 떠도는 모습을 보죠. 우리에 대해서 책을 쓰죠. 입양 기관에 가서 읽을 수도 없고 읽어서는 안 되는 입양 서류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고 적어요. 술을 마시고 넘어지는 우리를 보고 웃죠. 우리가 똑같은 이유로 길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상담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위로하는 광경을 봐요. 이름을 발음하지도 못하고, 다시는 보지도 않을 한국인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우리를 경멸하는 듯이 보죠. 아빠 문제인가? 라고 비웃어요.
팟캐스트: 지금까지 받은 독자의 감상이나 반응은 어떤 기분이셨죠? 놀라운 감상이 있었나요?
제니: 음……. 캐나다에서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단순히 독자들만 아니라 평론가들도 고평가를 해줬죠. 신인 작가로서 이런 반응을 얻어서 꽤 놀랐어요. 특히 캐나다의 흑인, 북미 원주민, 그리고 다른 유색인종 작가들의 대단한 재능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랬죠. 그래서 아주 좋은 일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줬어요. 하지만 제가 놀란 일은 제 성장기 때의 지인들이 이 책을 읽고 저에게 연락을 해왔던 점이었어요. 특이한 일이죠. 대부분의 경우 좋은 감정이긴 했지만, 어떨 때는 저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던 사람들도 저에게 연락을 해왔죠. 그런 경우에는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은 기억을 똑같이 하고 있지 않거나 잊어버린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놀랐지요.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좋은 반응이었어요.
팟캐스트: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네요. 아주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책이니까요. 이러한 흐름을 타서 더 집필을 하실 예정이 있나요? 이미 무언가를 쓰고 계시나요?
제니: 소설을 쓰고 있어요. 4부작이 될 예정이죠. 짐 존스의 한국계 입양아들이 모티브가 될 것 같아요. 물론 적지 않은 면을 따왔지만 모든 면을 따온 것도 아니죠. 지금 현재 작업상으로는 대부분 한국 배경이에요. 아주 흥미롭죠. 아주 많은 한국 여류 소설가들의 책을 읽고 있거든요. 물론 번역되어 출간된 소설들이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이라 아주 흥미로운 주제에요. 민족지적인 관점만이나, 음식이나 그런 이야기도 아니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었어요. 물건, 관계,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을 알 수 있었고 어떤 것들보다 더 제 문학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줬죠. 아주 대단한 작가들의 책을 읽고 그들의 방향을 따라가려고 하는 연구라 아주 즐거운 과정이에요
팟캐스트: 지금 한국 문학에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시기가 아닌가요? 세대가 교체되면서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제니: 아주 대단하죠. 반전도 대단하고 개연성이 있어요. 읽은 책 전부다 전부 대단하고 멋있어요. 현대 한국 작가들의 이야기 전개는 아주 정교해요. 거기에 아주 짧은 책들은 아주 정교하죠. 복잡하면서도 캐릭터들이 표현되는 방식이 아주 혁신적이고 실험적이에요. 아주 멋지고 대담하죠. 그리고 전 전부 좋아요.
팟캐스트: 제니씨가 나타나서 부모님이 재결합하셨죠. 그 현실에 대해서 큰 무게감을 느껴 보신적이 있나요? 다른 입양아들은 제니씨의 상황을 보고 “만점이네! 조사도 성공했고 널 찾아서 부모님도 재결합하셨네!” 라고 했겠죠. 이런 상황이 또다른 압박으로 작용했는지 알고 싶어요.
제니: 네. 그게 제 경험을 책을 만들려고 한 또 다른 이유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듣고 대단한 이야기라고 했거든요. 아이가 바다 건너 먼 나라로 입양되고 부모는 아이를 입양시키고 나서 인연이 끊어 졌지만, 아이가 되돌아와 다시 한번 로맨틱한 관계를 만들게 됐다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 같다, 영화를 써야한다 이야기했죠. 확실히 한국 드라마 같긴 했죠. 처음에는 확실히 대단한 느낌이었어요. 다시 한 번 시도를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고 특이했어요. 제 부모님이 같이 저를 어린애 대하듯이 대화를 하셨죠. 부모님이 서로 누굴 더 좋아하는지 물어보시기도 하셨고요. 그리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어린애처럼 엄마일까, 아빠일까? 답했어요. 아주 이상했죠. 그러한 이상한 관계는 지나갔어요. 하지만 제 책에 언급되었던 대로 긴장감도 높았죠. 아빠와 엄마의의 관계에서는 통제 문제가 있었어요. 특히 저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더더욱 그랬죠. 그 뒤로는 꽤 무섭고 괴로워졌어요. 어머니의 삶에 이런 사람을 다시 데리고 돌아온 일이 잘하는 일일까? 하지만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셨어요. 하지만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였죠. 제가 언어 장벽 문제로 정보를 25% 정도밖에 얻어내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었죠.
팟캐스트: 제가 책을 읽었을 때 남성 캐릭터들도 등장하더군요. 그때의 남자친구에서 현재의 남편까지 보았는데 책에서는 물리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더군요. 의존 상대나 안정적인 피난처로 생각 하는 것이 보였어요. 하지만 아빠의 경우에는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지만 더 파괴적이고 피해적인 행동이 심했다고 언급하셨죠. 그리고 여동생과의 관계 묘사까지 감안했을 때 이 책이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제니: 네. 제가 하는 모든 일이 페미니스트적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부정할 수 없죠. 처음부터 제가 여성의 관계에 집중하려고 했죠. 어머니-딸, 할머니-손녀, 자매 간의 관계에 더 집중하려고 했어요. 저에게는 두명의 한국 형제가 있지만 이 회고록만 읽으면 모르겠죠.
팟캐스트: 많은 사람들이 집필은 치료라고 이야기하죠. 책을 쓴 이유가 제니씨의 치료였는지는 모르지만 책이 제니씨를 치료해줬나요?
제니: 부분적으로는 그랬죠. 우리 입양아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저에게 이야기를 해왔어요. 그런 면으로는 확실히 치료를 해줬죠. 확실히 인정받는 느낌이고요. 보살핌, 사랑,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죠. 그러한 상황에서 확실히 대단한 이야기가 나타나죠. 전 저 자신을 치료해주거나, 문제를 해결할 책을 쓰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글 쓰는 과정은 그렇지 않았죠. 제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읽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제가 책의 일부를 읽으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감정을 가장 깊게 느끼게 되죠. 책을 쓰는 과정이 아니라 읽는 과정이 제 존재를 확인해주었죠. 그래서 괜찮다고 인정해줬죠.
팟캐스트: 오늘 와서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니씨
제니: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팟캐스트 청취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려요.
–유호형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