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의 마지막 에피소드: 신선영+호랑이에게 바치는 연가 

어답티트 팟캐스트 시즌5의 마지막 에피소드, 지금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인 입양인들을 위해 처음으로 생긴 팟캐스트의 호스트 카오미입니다. 이 팟캐스트에서는 지금까지 120여명을 인터뷰하며 해외한인입양인들의 경험을 담아왔습니다. 오프닝 음악을 협찬해주시는 제이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더 듣기를 원하시면 jaejinmusic.com을 찾아주세요.

“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가족관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 제일 힘들죠”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시인이자 대학 교수인 신선영을 만나봅니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시집“The Wet Hex(역자 가제 : 젖은 주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유령같은 존재로서의 입양인, 입양인으로서 문학의 세계를 넘나듬기그리고 가족 관계 안에서의 인종적 자각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 봅니다. 

제 이름은 신선영이고 대명사로 그녀/그들을 사용합니다. 48세이고 미네아폴리스에 살고 있어요.

저희 팟캐스트에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일이 정말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새 책을 출간 했잖아요. 그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이번에 나온 책은 시집인데요 지난 6월 14일에 출판됐어요. 제목은 “The Wet Hex (역자 가제 : 젖은 주문)”입니다.  제 네번째 시집이고 Coffee House 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책을 써온지는 얼마나 되었죠?

25년 정도요.

주로 쓰는 내용은 입양과 관련된 그러니까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에 대한 내용인가요?

글쎄요. 책을 하나하나 뗴어 놓고 보면 그렇게 느끼지 않을수도 있어요. 하지만 입양인이라는 사실이 내가 쓰고 관계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쳤어요. 특히나 타국으로, 타인종간에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어떻게 사고하고 쓰는지, 내가 어떻게 나의 책과 나의 문학에 다가가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가르치는 지에도 모두 영향을 주니까요.

“The Wet Hex(역자 가제 : 젖은 주문)”는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죠?

일종에 대량 멸종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다가 시작되었어요. 진화라는 관점에서 인류인 우리는 어디쯤에 있나하는 물음에서요.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의 모든 단계는 전환기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지금의 호모사피엔스는 어떤 전환적 존재인가 하는 그런 의문에서 시작됐어요. 인종이나 국가, 기후, 종들간의 평등, 생태계, 한국문화의 여러 면들을 생각하게 되면서요. 제 양아버지가 2017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어떤 시들은 상실에 관한 여러 면들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사후세계라든지 지하세계에 대한 생각들.  그런 생각들에서 시작됐어요.

입양인으로서의 우리는 어찌보면 같은 한 세대라고 생각돼요. 언젠가 닥쳐올 죽음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요즘 많이 하거든요. 가족 그리고 나의 기원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는데 중년을 넘긴 입양인들이 많이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 책도 선영씨가 나이들어가는 과정인가요? 이런 주제들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죠. 2020년에 팬데믹이 시작됐잖아요. 그때도 이 책을 쓰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책 뒤에 있는  작가서문이 유난히 길어지게 되었죠.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우리가 얼마서 서로 긴밀하게 엮여있나, 공공보건등등을 생각하게 되었잔아요. 입양인들의 입장에서 수명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족력이 없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더 취약하죠. 예상수명이 얼마인가같은 질문에서 답할 근거가 없죠. “우리 할머니가 100살까지 사셨고 우리 엄마도 80대 치곤 굉장히 건강해” 이런게 없으니까요, 거기다가 원래의 문화나 생화습관이나 환경으로부터도 떨어져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카톨릭 가정에서 자랐는데 아주 대가족이었어요. 그래서 자라면서 장례식에도 많이 참석했어요. 카톨릭에서는 죽음이 굉장히 큰 부분이니까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제 작품의 일부가 되었죠. 그리고 나이들어가며 아마 45살을 넘으면서부터인가봐요. 그때 자각을 했죠.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어린 노인”의 단계에 들어서는 구나 하고요. 지금 “Z”세대들이 성인이 되었잔아요. 큰 변화죠. 그러니 우리가 벌써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세대인 거잖아요. 가장 어린 알파세대로 부터.

물론 이런것들도 다 다 임의적은 개념이죠. 한번 밀레니얼 세대가 오고 나니까 그 뒤에 바로 “Z”세대가 바로 따라오고. 뭔가 엄청난 주목을 받았잔아요. 우리 “X”세대가 줄 수 있었던, 그리고 우리가 받았던 것 혹은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는 관심을 요구하고요. 우리는 좀더 자유롭게 자라났잔아요. 우리 세대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것을 보게 되었죠. 그래서 그런 부분이 항상 제 화두에요. 항상 무엇을 뒤에 남길 것이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를 생각하죠. 그리고 영어선생으로서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들을 가르치잖아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같은 작품들이요. 200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생생한 작품이죠.

물론 번역이 잘 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요. 전쟁, 희생, 가족들간의 비밀이나 불화, 파워, 젠더, 영역 싸움 같은 주제들은 변하지 않아요. 제 세번째 시집에 그 “안티고네”가 많이 녹아들어있어요. 남북전쟁때의 가족의 혈통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며 누군가는 파멸하는 내용이죠. 아무튼 그게 제가 기웃거리는 주제들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나이듦에 대한 주제로 많이 기울고 있어요. 제 아이들이 25살 21살이에요. 저는 꽤 어린 엄마였고 지금도 상대적으로 젊은 엄마죠. 성인이 된 아이들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가면서 제 엄마 역할도 계속 변하는 것도 참 재밌고요. 결론적으로 각각의 세대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요. 특히 제가 대학에서 일을 하다보니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당면한 문제와 그들 세대의 불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요. 매년 저는 늙어가지만 제가 가르치는 그들은 같은 나이대에 있으니까요.

이 젊은 세대들의 불안에 대해 저도 아주 깊이 공감해요. 그리고 지금 초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해서도요. 제가 아이들을 위한 책도 쓰거든요. 지난주에는 한 학교를 방문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나 갑지고 소중한 존재들인데 이 나라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죠. 교사들도, 여자들도, 성소수자들도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저런 폭력에 노출되어 있죠. 작가들이란 사회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여러 당면주제들을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항상 이런 이슈들에 대해 쓰는 사람들이에요. 한국 작가들이나 입양인 작가들이나 재미교포작가들이나 모두요. 우리는 모두 집단적으로 트라우마, 고통, 걱정 속에 살고 있잖아요. 물론 희망적이고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지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지배구조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죠.

다른 입양관련 활동가들은 우리의 존재가 소멸되기를 바라잔아요. 없어져야 한다고요. 이것또한 같은 맥락일까요?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맞는.

그렇죠.  오랫동안 생각을 해봤어요. 한국인 해외입양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입양들을 위한 활동가들, 미혼모들을 위한 활동가들, 재생산권을 위한 활동가, 가족유지 활동가들 모두 큰 변화를 만들어냈죠. 그런데 제 친척중에 같이 한국에서 입양된 사촌이 있어요. 시카고에서 같이 자란. 저보다 다섯살 정도 어린데요. 여덟살인가? 암튼  그 친구가 몇 년전에 한국에서 입양을 했어요. 세살짜리 여자아이를요. 그 아이 개인을 놓고 봤을땐 집이 생긴거죠. 그래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비록 예전 같은 한인대거입양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요. 그 수준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되고요. 

기후 변화나, 이민, 추방 그리고 한국이 됐든 우크라이나가 됐든 혹은 그 다음 어느 나라가 됐든 사회 불안정을 겪는 나라들, 여성억압, 강제 이주 이런 것들이 제가 깊게 생각하는 주제들이에요. 제가 전문 활동가나 법안을 만든다거나 그럴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 분야-제 수업시간이나 제가 쓰는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할때 항상 그런 부분들을 인식하고 자료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이 이뤄놓은 자료들을 나누려고 해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왔고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등에 대해서요. 우리가 입양인으로서 하는 이런 모든 일들도 이 사회의 다양한 담론들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신중절권이든 임시보호가 됐든 혹은 사회복지, 시민권등의 모든 부분에요.

쓰는 내용이 어떻게 변해왔나요?

그 질문을 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변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책을 한권씩 낼때마다 다루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주로 천착하는 주제가 있거든요. 지난번에 나온 시집에서는 환대의 정치학과 손님됨에 대해서 다뤘어요. 손님과 주인이라는 언어와 그 관계가 흥미로웠거든요. 지금은 조금 더 환경적으로 생태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쓰려고 노력해요. 생태시인이라고 하든가요? 기후와 종의 생존등에 관한것들요. 그런쪽으로 제 주제가 변해왔다고도 할수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쭉 해오고 있는 것들은 특히 시쪽으로는 제가 원자료수집(역자 주-SOURCE DOCUMENTS)에 관심이 있어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한 말 – 그게 프로파간다가 됐든 다른 작가들이 쓴 말이든 – 샘플링하고 모아붙이고 하는 작업을 해요. 일종의 업사이클링이죠. 그게 제가 계속 해오고 있는 작업들이에요.  전설이나 동화에도 관심이 있고요.

이번 책에는 한국을 많이 언급 했잖아요. DMZ라던지 휴전선이라던지, 고아라던지, 조금 더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들어있나요?

네. 이번엔 더 내 이야기 같아요. 내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느끼기도 하고요. 한국에 다섯번 갔었고 그 중에 두번 DMZ에 갔었어요. 제 모든 책들은 디아스포라 (주:이산, 원래의 거주지를 떠나 삶)로서 이곳의 삶과 그곳의 삶 사이의 차이를 붙들고 씨름하는 거에요. 한국과 미국의 관계도 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변동과 함께 발전하고 있는 것도 나와 아주 관련이 깊다고 느껴져요. Books and BOBA 팟캐스트에서 한국인 소설가 조셉 하가 나와서 그의 데뷔 소설 “Nuclear Family(역자 가제 – 핵가족) 에 대해서 말하는것을 들었어요. 저도 한 권 구입했어요 . 그래서 이 현재 진형형인 상실과 슬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죠. 전쟁이 끝난지 70년이나 되었는데도 갈라지고 떨어져 살아야 되는 사람들말이에요. 엄밀히 따지면 한국은 아직  전쟁중이니까요. 아직도 이산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많이 돌아가셨고 혹은 다들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았고요. 굉장히 슬픈 일이죠.

입양인으로서 모국과 다시 이어지는데 굉장한 노력이 들어요. 기회비용이랄까요. 한국에 가기 위해서 많은 비용이 들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들이요. 그걸 다른 내적 성장에 썼다면 – 테라피 같은 거요. 물론 테라피도 많이 받기도 했고요(웃음). 아무튼 평생을 가는 작업이에요. 또 제 아이들이 닻없이 표류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무언가를 물려주고 싶기도 해요. 비록 한국에 다른 가족들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굉장히 훌륭한 질문이었어요. 네. 개인적인 이야기맞아요.  비록 제 매일의 생활이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그것들이 재미없거나 중요하지 않았어서라기 보다는 한인입양인으로서의 저의 경험은 뭐랄까 조금더 집단적인 경험 같아요.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하잖아요. 백인우월주의라던가, 가족들간에 신념체계라던가, 입양 그리고 미국인으로 흡수, 동화되는 과정등 말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저의 개인의 경험이 시 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감추려고 하거나 그런건 아니고요. 저는 다 보여주는 사람이거든요.

시를 읽어줄 수 있을까요?

그럴까요? 제 친구 Sue Hwang을 위해서 쓴시인데 그 중에서 조금 읽어볼게요. 그  친구는 여덟살때 가족과 함께 이민온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몇 년전에 그 친구가 첫 책 “Bodega(역자 가제:잡화점)”를 냈을때 그 친구가 우리에게 여럿이 같이 책을 읽고 모두 “Bodega”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Bodega라는 제목으로 썼다가 나중에 “Behind This Door is a Siberian Tiger(역자 가제 : 문밖에 시베리아 호랑이가 있어)”라고 다시 제목을 붙였어요.

호랑이 해에 태어난 아이

사과를 쪼갤 운명의 아이

성냥첩을 모으고

들판에 서서 불의 언어를 하네.

시인은 해를 시샘하게 만들어.

마법을 부리 도록.

작아도록.

빈 통나무 속으로 숨어들 도록.

발톱을 무디게 만들 도록.

그 발톱은 지난 달의 달빛을 비춰

빛에 대해 말해볼까?

네 엄마는 그걸 어떻게 발음하지?

아빠는 어떻게 묻어버리지?

오빠는 어떻게 그걸 담보로 잡히지?

신이 약속한

모든 것을 걸면서.

어떤 내용이죠?

돌려표현하고 있는데요. 지금 DMZ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연 그대로의 땅이 되었잖아요. 지난 70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일본군의 강제 점령과 제국주의 합병이전까지 한반도 전역에 호랑이가 있었는데 지금 다 사라졌죠. 시베리아 호랑이와 UMER 호랑이 모두 이제는 자연속에서는 찾아볼수가 없죠. 그리고 제가 호랑이 해에 태어났어요. 산호랑이의 해에요. 그래서 제가 호랑이에 집착하는 것일수도 있고요. 그리고 “Lady or the Tiger? (역자 주-여주인인가 호랑이 인가?)” 라는 단편하고도 관련이 조금 있고요. 80-90년대에 미국에서 자랐다면 학교에서 많이 읽었을 거예요. 선택과 그 미지의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죠. 문 뒤에 있는 것이 위험인지 보물인지 알지 못하는.

그리고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는 복권추첨이에요. 고아들과 입양인들이 알지 못하는 가족들한테 보내진다는 것이 말이에요. 아이들을 다른 아이로 바꿔치기 했던 것과 같은 입양과정에서의 부조리들 말이에요. 입양부모한테는 이 아이를 데려갈 것이라고 해 놓고 그 아이가 죽거나 친부모가 나타나거나 하면 다른 아이를 보낸다거나 했던 것 같은거요. Deann Borshay Liem의 “In the Matter of Chan Jung Hee”(주-”차정희에 관하여”)라는 영화에서와 같이요. 입양기관에서 이름을 “차정희”라고 하라고 시켰다고 하잔아요. 뭐라고 이름붙이기도 난해한 그런 문제죠. 독자에 따라서는 그리 심각한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고요.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의 생존에 대한 연가이죠. 생존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가 하는 물음이기도 하고. 여기서 호랑이는 인간에 의해 그 존재가 위협받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나타내는 거죠.

입양인들이 처한 위험과 우리를 향한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요. 물론 그 정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지만 모든 입양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버려지고 포기되었다는 면에서요. 그리고 이 미국이라는 인종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나라, 외국인을 원하지 않는 나라에 보내졌죠. 지난 트럼프 정부때 이걸 썼어요. 외국인 혐오, 속함belong, 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그렇다고 제발 우리를 받아주세요 우리는 여기 사람이에요 그런 뜻은 아이네요. 우리가 원래 살았던 땅도 아니고 착취한 땅이잔아요. 저도 어떻게 보면 점령하러 온 사람에 속하죠. 물론 내가 원해서 오게 된건 아니지만요. 이런 것들이 그 시를 쓸때 아니 모든 시를 쓸때 항상 생각하는 것들이죠. 한국에서 온 소녀라는 존재가 겪는 감정적 부침같은 것들이요.

제가 너무 넘겨짚는 것일수도 있지만 작품속에 폭력이 많이 보여요. 맞나요?

정말 그래요. 제 모든 작품들이 폭력에 관한 것이에요. 제 전집과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모두 마찬가지로 폭력에 반응하는 각각 다른 모습들을 다루고 있어요. 인권침해 혹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설명되는 문제들, 우리가 어떤 이념적 싸움에서 하나의 볼모나 담보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에요. 제 개인적으로 보자면 제 양아버지가 아주 화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도 화가 많아요. 만약에 우리가 여자이고 내가 먼저 화를 내지 않으면 평생을 뇌사상태 처럼 살아가야 하잖아요. 여자들은 화가 나 있고  아시안 여자들은 화가 나 있다 라는 것은 이제 말 하면 입아프죠. 물론 우리는 다 각각 다른 개인들이지만요.

이 세상이 너무 한심해요. 세상에 폭력이 너무 만연해요.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어디에나 있죠. 어디든 안전하지 않아요. 성감별임신중절로 인해 세상을 태어나지 못한 여자아기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끊임없이 해요. 남아선호사상때문에 성별의 불균형이 있는 곳들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화가 나요. 너무 속상하고요. 그래서 최대한 큰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에게든 아닌 사람들에게든요. 세상엔 폭력이 너무 만연하고 그게 제가 세상을 보는 렌즈에요. 물론 기적도 많지만요.

참 멋진 사람들도 많지요. 아름다움 사랑 보살핌도 많고요. 저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혹은 공공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를 비판하는 일이 제가 할일이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폭력을 폭력이라고 부르는 일이요. 이 사회가 이젠 너무 당연시 하고 체념해버린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문학을 파는 이유도 그거 같아요. 그게 제가 쓰는 주제이요 특히 시를 쓸때는요.

책 감수도 했었죠

네. “진실 마주할 시간 : 미네소타의 인종에 관하여(역자 가제, 원제 – A Good Time For The Truth: Race In Minnesota)”란 책이요

미국내에서 가장 백인비율이 높은 곳중에 하나잖아요. 그런 곳에서 자라는 건 어땠나요?

전 실은 일리노이에서 자랐어요. 미네소타가 아니고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미네소타에 왔을때 제 작업에 큰 화두가 되어줬죠. 보스톤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가 세인트폴에 있는 맥갈리스터 컬리지로 편입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 세인트폴에 왔을때 그때 아주 큰 문화충격을 받았어죠. 그때 첫 날 도착해서 당시 남자친구하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미네소타가 처음이었거든요. 교회랑 주류삽이 왜 이렇게 많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참 이상했죠. 그리고 주변이 온통 백인들 뿐이었어요. 백인세상이었죠.

그리고 바로 적응을 하면서 보니 티비 뉴스에 나오는 사람도 모두 백인, 라디오에 나오는 사람도 백인, 의회도 백인, 그 어떤 관공서도 다 백인, 학교 교장들도 백인, 교수들도 백인.. 끝도 없죠. 1992년 가을의 이야기이니까요. 제가 처음 여기 왔을때가요. 그대 90년대에는 90%이상이 백인인 주 였어요. 지금은 84%가 백인인 주이고요. 물론 트윈시티 (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폴)주변은 그때도 상당히 더 갈색(역자 주- 서남 아시아 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이었지만요.  50년 전 이야기에요. 그런데 단지 백인이 많아서 그랬던건 아니에요. 저도 백인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주변 환경은 좀더 다문화였거든요.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도시근처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미네소타에서는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첫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기 오기전부터 이미 전 내가 유색인종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종주의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페미니즘적으로 사고하고 있었고요. 그 모든것이 중고등학교때부터 시작됐었죠. 페미니즘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인종과 지역에 대해서, 이 나라에서 한인 입양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비백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특히 이미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뭘 의미하나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벌써 하고 있었는데. 미네소타에 오니 뭐랄까 불모지에 온 것같은 기분이었어요. 여기는 주된 정서가 인종차별 같은거는 말을 꺼내지 않는 분위기였죠.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살게 됐으니 인종차별도 없어졌고 이제 모두 똑같이 취급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수준이었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그러다가 20년이나 머물게 되었네요.

30년이 거의 다 되가요. 이번 가을이면요. 아직도 좀 힘들어요. 제가 집순이라서 겨울스포츠를 안좋아하거든요. 겨울 너무 싫어하는데. 겨울이 너무 길죠. (웃음) 제가 오랫동안 몸담을 수 있는 모임이 있는 것에 감사해요.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많이 없었는데 지금은 유색인 작가모임이 인원이 많아요. 탄탄한 모임 같아요. 서로 많이 지지해주고요. 이 범아시안모임에 참 감사한 것이 그냥 중국인 모임만 있고 한국인 모임만 하는것이 아니에요. 물론 나라들 고유의 개성이나 문화들은 있지만요.

그래서 항상 다른 그룹들 다른 이웃나라 그룹들에도 최대한 많이 참여하고 맡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려고 해요. 너무 미화하는것은 아니지만 이 예술 영역에서 유색인종작가들은 서로 정말 많이 도와요.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들은요.  서로 치켜 세워주고 같이 만들어나가죠. 경쟁한거나 영역싸움 이런거 없이요. 특히나 시쪽에서는 어짜피 돈이 안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좋아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니면 다른걸 못해서 하기도 하고 아니면 안할 수가 없어서 하는 경우도 있고요. 특히나 시의 경우에는 사랑해서 하는 노동이죠. 구술이 가능한 예술이기때문에 사람들을 모을수 있고 접근하기도 쉽고요

시를 쓸때 돈이 드는 것이 아니잖아요. 때로는 펜도 필요없을때도 있어요. 그냥 말로 해도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계속 이 쪽에 몸담고 있게 되는것 같아요. 예술 속에서의 교류,  영감같은거요. 제 생각엔 전 미국에서 우리 모임이 제일 잘 되는것 같아요. 동부나 서부쪽 사람들말을 들어봐도요. 일단 물가가 비싸니까 생활하기가 힘들고 그러니 모임이 여기 같을수가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힘들고요. 그러니 세분화도 많이 되어있고요. 그냥 제 생각일수도 있죠.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요.

지금의 유색인종작가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이민 이주과정에서 가족들이 겪은 외상, 부모세대와의 단절등이 주요 소재잖아요.  그런면에서 한인입양인작가들이 다른 이민작가들과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굉장히 훌륭한 질문이에요. 물론 그래요. 이렇게 왕성 했던 적이 없어요. 입양인 작가들은 미국에서 성장한 1.5세 작가들하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많죠. 두개 혹은 세개의 문화속에서 자란 사람들이잔아요. 그런데 제 주변에 한인1.5세 작가들을 보면 그들 각각 자기 삶에 녹아든 고유의 문화는 있겠지만 한인1세 부모들로부터 지난 이야기나 고생한 이야기 혹은 조상들이 어떤 일을 겪었나 혹은 한국의 역사를 듣고 자란것은 아니더라고요. 1.5세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포기한 경우도 많고요.

미국인처럼 보였으면 해서요?

네. 그래서 마치 벤다이어그램 같은 모양이 되는것같아요. 겹치는 부분도 많으나 다른 부분도 큰. 지금까지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일반적으로 한인 입양인 작가들을 많이 포용해주는듯 해요. 그런데 소설쪽으로 가면 좀 다르다고 느껴요. 시쪽은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덜하다보니까요. 제가 그런 서사시쪽을 안 쓰기도 하고요. 아무튼 소설이나 회고록쪽에서는 좀 이야기가 다른것 같아요. 다만 유색인종으로서 매일의 삶에서 방황하는 모습에서는 공통점이 더 크다고 봐야죠. 

게이트키핑(역자 주 – 결정권자가 보도 할 만한 이슈를 취사선택하는 함.)으로 인해 다 같이 힘들어하니 다 같이 맞서야 하는것도 많고요. 그러니 각각의 분야에 대한 개성은 존중하지만 조직을 너무 나눌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리의 경험이 모두 같다고는 말할 수 없죠. 그렇다고 하더라고 외로울 수도 있죠. 제 주변에 입양인들중에서도 그속에서 자란 사람들도 있어요. 같은 아시안들 사이에서 자랐어도 끼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외부자라고 느낄수도 있는거고요. 아쿠는 네가 어디서 자랏고 성인이 되었을때 어디에서 살아가는가에 달려있는것 같아요. 다른점이 분명히 있어요.

다른 한인작가들 사이에서 존재를 인정받는것 같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것 같기도 하고. 소설이랑 회고록분야는 아무래도 배경이나 스토리면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범위가 넓잔아요. 살도 많이 붙고. 장르의 차이겠죠.

문학쪽을 잘 모른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을 더 해주실래요? 소설쪽이 왜 더 힘든건가요? 우리의 경험이 우리가 자란 백인 세상으로부터 만들어진거라서?

제가 한인 작가들이나 혹은 다른 유색인종 작가들 특히 제 나이 또래나 조금 더 나이든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같은 문화권에서 온 멘토같은 동료나 선배들을 찾기 힘들어요. 그것도 힘들고 은근히 자기 뜻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도 힘들고요.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죠. 지금 제가 가르치는 젊은 세대 작가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똑같대요. 장르에 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소설의 경우에 입양인 캐릭터가 비입양인과 상대를 할수도 있고 여러명의 입양인 캐릭터가 그냥 한인캐릭터 혹은 그냥 다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들어 낼수도 있고요. 그래서 마치 포켓볼처럼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서로 어떻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주는지도 그릴수도 있고 시공간내에서 스토리라인을 그려낼수가 있잔아요. 그런데 제가 쓰는 시는 등장인물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어떤 시공간을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연관되어서 움직이는 그런 세상이 아니죠. 어떤 존재에 관한 한 상황에서 조금더 감정적인 경험에 대한 거고 이미지나 느낌에 대한 거죠. 일시적인 상황일 수도 있고요. 혹은 언어 자체에 관한것일수도 있죠. 그래서 쓰는 시에 따라서 품이 더 들어갈수도 있고요.

그래서 조금 더 표현주의적이 될 수도 있고  인상파처럼 보여줄 수도 있고요 뚝뚝 끈기기도 하고요. 일부러 어지럽게 만들기도 하고요. 물론 소설에서도 가능하죠. 저는 장르간에 차이가 있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전문정을 획득하는 과정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요. 어떤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가면 어떤 다른점들이 분명히 있지요. 지난 백년동안 미국내 아시안작가들이 쓴 소설을 보면 이민이야와 부모와 자식  세대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죠. 특히 성장소설 등을 보면요.  우리는 그곳에 못들어가죠.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우리는 한국가족을 접할 기회가 없었잔아요. 우리가 가족과 같이 오지 않았기도 하고 그들의 손에 큰것도 아니고 떨어져 자랐잔아요.

그런 면에서 좀 소외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입양인으로서의 내 이야기가 담겨있는 소설을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쓰려고요. 십대들을 위한 소설을 쓰고는 싶은데 아직은 잠정적이에요. 인간복제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기에 입양도 들어가 있고요. 하지만 입양인의 삶이 어떤가 그런 이야기는 또 아니고요.  입양인들의 회고록들이 참 좋고 그  중에 굉장한 작품들도 있어요.

입양인이라는 경험이 이 모든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배가시켜주는것 같아요. 우리는 뭐랄까 유령과 함께 살고 있잖아요. 우리 주변을 유령이 배회하는 것 같달까요?  혹시 선영씨도 비슷하게 느끼나요? 우리의 삶 안에 유령이 있다고?

고마워요. 그 이야기를 꺼내주어서. 맞아요. 한국인들은 어떻게 보면 20세기 내내 진행된 전쟁과 그 상흔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살고 있죠. 입양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미네소타 주립 대학의  Dr. Pauline Boss의 표현대로 애매한 상실(역자 주-Ambiguous loss)에요. 애매한 상실인 이유가 끝도 없고 실체도 없으니까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실체도 없고 어떤 경우엔 전해지는 이야기도 없잔아요. 예를 들어 전쟁중에 실종되어 유해도 찾을 수 없는 친적이라던가 납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족들처럼 실체도 없고 정황도 없어요.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요.

관계라는 것이 우리 인류라는 종족의 전부나 마찬가지인데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가족관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 제일 힘들죠. 우리의 행복,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개념, 나 자신에 대한 의식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이고요. 그런데 그건 양방향인이기도 해요. 우리의 존재가 비밀 존재일때가 많잖아요.그게 평생 친부모한테 고통을 주죠. 그러면 그것이 우리의 형제자매들한테 영향을 끼치겠죠. 그들이 우리에 대해 알던 알지 못하던요. 비밀이라는것이 그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 주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니까요.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한테도요. 그러니까 뭔가 있어요. 어쩌면 이중의 유령과도 같은 존재죠. 우리가 귀신한테 홀림과 동시에 우리 자체가 살아있는 유령이 되어 친부모가 됐든 우리의 존재를 아는 조부모가 됐든 우리가 유령이 되어 그들의 삶을 홀리고 있죠. 그리고 우리 입양인의 존재가 한국을 흔들고 있잖아요. 몸을 놓고 벌어지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고아 수출등에 관해서요. 정치적으로나 시민사회에서 귀속될 권리를 빼앗긴 사람으로서 말이에요. 

그래서 이 유령의 비유가 적절한것 같아요. Avery Gordon 의 “Ghostly Matters: Hunting and the Sociological Imagination(역자 가제 – 유령에 관한 :  유령에 들림과 사회적 상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미국의 백인 인류학자에요. 또 Grace Cho의 첫 책 “Hunting the Korean Diaspora(역자 가제 : 한인 이주 뒤흔들기”와 최근 책인 “Taste like War”(역자 가제 : 전쟁의 맛) 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들이 제가 “Hunting(역자 주- 유령들림) 에 대해서 파고들 때 항상 보게 되는 책이에요. Grace Cho는 인류학자라서 항상 광범위하게 조사해보죠. 입양인은 아니고 한국인 엄마 백인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우리가 외국에 오래 살다가 돌아오면 신용유령이라고 한다고 들었어요. 신용을 쌓을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가족력을 모르니까 의료기록에 있어서는 유령이나 마찬가지죠.

“Invisible Asians(역자 가제 : 보이지 않는 아시안들)”이라는 Dr. Kim Park Nelson의 책이 있어요. 일인 식민지(역자 주 – Colony of One)” 라는 개념을 그가 명명했거나 아니면 다른 학자가 고안한 개념을 썼던가 할거에요. 그 제목이 참 와 닿더라고요. 책이 나온지는 꽤 됐을거에요. 우리 입양인들은 너무 고립되어 있고 자라면서도 다른 입양인들이나 다른 한국인 모임이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분리되어 살았기 때문에 그 1인식민지라는 개념이 우리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실존적 존재였는지를 보여주죠. 그래서 제가 어디가서 강연을 하거나 할 기회가 생기면 입양이라는 것이 왜 어떤 실존적 상황인지 그냥 단순히 집이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먹을 것이 생겨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려고 해요. 가족이 생기고 음식이 생기고 집이 다시 생겼어도 학대받고 그러잖아요.

작품을 한 편 더 읽어줄 수 있나요?

그럼요. 이건 더 입양에 관한 것인데 아주 짧아요. 제목은 “Our Country Laundered Us (역자 가제 : 내 나라가 나를 세탁해버렸다. )”에요. 고아세탁이라고 아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데 중년이 되니 이러네요. David Smolan이 명명한 개념일거에요. 그도 한인 입양인의 부모인데 법학과 교수인가 그렇죠.

내 나라가우리를 세탁해버렸다.

그것도 종이 위에.

숲도, 빵 부스러기도, 조약돌도

계모도, 아빠도, 죽은 엄마도

빗자루도, 새 장도, 설탕도

파리도, 혓바닥도

기지촌 여자들도.

계속되는 세탁소리.

술집들과 기지촌도,

얼룩말도, 낙타도, 양도,

여물통도.

신과 그의 천사들도, 악마도,

출생도, 사건도.

하얀 빛도, 열기도, 욕설도, 화염도.

한밤중의 희생적 비행

마침내 깨끗해졌다.

굉장히 시적이고 상징적이에요.

고마워요. 이건 뭐랄까 헨젤과 그레텔 같은 이야기에요. 예수와 마리아 같은 시일수도 있고요. 제 어린시절로 부터 떠오르는 원형같은 이미지죠. 이런 원형의 가족같은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요. 왜냐하면 버려진 아이들의 이미지가 항상 가슴속에 있거든요.

미국가족들이 작품속에 등장하기도 하나요?

그런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이름을 쓰고 하진 않지만요. 하지만 항상 존재하죠. 오빠가 있는데 오빠도 입양됐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미국내 같은 백인간에 그것도 가까운 지역에서 입양됐어요. 친부모가 아마 아직 결혼전이었던가 그래서였을거에요. 그런데 그건 부차적인 이야기이고요. 아무튼 그래서 다른  입양인과 함께 자라기는 했지만 그와 나는 다른 인종이기때문에 그에 따른 각각 다른 경험을 했고 그것이 가족간의 친밀감을 쌓는데 다른 역할을 했겠죠.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하죠. 그리고 그에게 지금 아이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백인 입양인의 백인 자녀들은 또 어떻게 자라날까 하는것도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주제고요

제 아이들의 경우에는 부모가 둘다 입양인인 혼혈아이들이죠. 애들 아빠도 입양인인데 그의 경우엔 가족 내 입양이었어요.  얼마전에 Ancestry.com을 통해서 멕시코에 있는 친부와 할머니를 찾았어요. 항상 이 핵가족에 대해서 생각해요. 마음속에 항상 어떤 인형의 집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극장 같은 집이요. 한 곳에는 내 입양가족이 있고 한쪽에는 한국의 가족이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하고는 거의 10년간 연을 끊고 살다가 연로해지시고 사실 날이 얼마 안남게 되었을 때 다시 화해했어요. 아버지가 반이민자 슬로건 같은 것에 빠지셔서 대학때부터 연을 끊었거든요. 도무지 관계를 이어가는것이 불가능했었죠. 나도 그런것을 듣고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었고 서로 한치의 양보도 안했죠. 그런데 그 뒤로 조금 유해지시기도 했고 병세도 악화되고 그래서 그냥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더라고요. 부모님은 제가 대학때 이혼하셔서 그때부터 따로 사셨고요. 엄마는 아직도 건강하세요

78세이신데 일리노이주 시골에 사시고요.  제 입장에서 말하자면 엄마랑 가깝다고는 할수 없을것 같네요. 사이는 좋은 편이고요. 깊은 이야기까지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요. 제 책도 읽으신적도 없어요. 책 읽는 스타일이 아니셔서요. 사는 이야기 서루 공유하고 아이들도 보여드리고 그런정도요. 그러니 이 정도면 좋은 사이라고 할수 있겠죠. 하지만 입양인으로서 항상 부모로부터 멀게 느껴졌었어요. 오빠랑도 잘 지내고요. 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 가까워진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같이 자랐다는 것이 고맙고 우리가 어린시절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주 다르기는 하지만 같이 자란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요. 그리고 엄청 싸웠어요. 그래서 회복력이나 끈기 같은것을 기를 수 있었죠. (웃음)

입양인들과 이렇게 계속 연결되는 것이 우연일까요?

아니죠. 분명히 이 세계에 갇혀 있어요. 아이들 아빠와 이혼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임시보호 경험이 있거나 입양되기를 기다렸었거나 혹은 입양인이거나 아니면 부모가 입양인인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일부러 그렇게 찾아다닌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입양인의 경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사람하고는 가까워질 수가 없으니까요. 꼭 한인입양인일 필요는 없고요. 하지만 입양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죠. 그래서 일부러 계획을 하고 의식을 하는건 아니지만 항상 그렇게 됐어요. 아이들 아빠조차도요.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는 군요.

(웃음) 맞아요. 꼭 상처에 끌리는 것같아요. 그렇게 건강한것 같지는 않죠? 확실한 건 어떤 식으로든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한테 끌린다는 거에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우리중의 많은 수가 인종차별주의자속에서 자랐다고 했잔아요. 자기가 인종차별주의자인지도 모르는 양부모들 말이죠. 그것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나요? 지금 성인이 다 됐잔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는데 있어서 조금더 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하나요?

물론이죠. 제 애들은 몸만 성인인 아이들이에요. 딸아이는 아직 대학생이고 아들아이는 직장생활을 하긴 하지만 아직 애들이죠. Z세대 중에서 좀 나이든 쪽이라고 할까요? 모두 상당히 긴 어린시절을 보냈죠. 사회가 변했으니까요. 제 부모님은 그래도 다른 미네소타의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본바에 의하면 상당히 괜찮은 분들이셨던것 같아요. 시카고주변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종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그러진 않았거든요. 아예 심한 인종차별주의자이거나 아니면 다른인종과 친구이거나 그랬죠. 서로 다른 인종 간에 친구가 될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시카고 자체도 꽤 인종분리가 심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유색인종이 아주 많았고 그래서 일터에서 같이 일하거나 이웃이 되거나 다양한 음식을 접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제 부모님은 저를 같은 백인으로 취급하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특히 미네소타로 입양된 저와 같은 또래들과는 달리 말이죠. 저희 부모님은 제가 한국인이지만 미국 시민이기도 하다는걸 항상 강조하셨죠. “People of color(역자 주-유색인종)”이라는 말을 쓰거나 하지도 않으셨어요. 저를 백인만의 특정한 문화나 행동양식등에 맞추려고 하지는 않으셨죠. 어떤 이념을 추종한다거나 하지 않으셨어요. 복음주의 신도들처럼 저를 어떤 백인구원자적인 시각으로 보거나 하지도 않으셨죠. 다른 입양인들이 겪은 것처럼 말이에요. 어려서부터 인종이라는 것에 굉장이 눈을 떴는데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흑인이기도 하셨고요. 엄마가 본인도 모르는새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할때 저는 그게 다 느껴졌어요. 제가 자란 일리노이 부룩필드 근처는 중심가로부터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 폴란드인, 아이리쉬인,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이태리 사람들이 많았어요. 모두 노동자계급들 이었죠. 그리고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철길이 있었는데 그 철로 주변으로 흑인들이 모여 살았거든요. 우리 사회가 차별적이니까요. 그런데 엄마가 “유색인종들이 많이 사는 곳을 지나갈때는 조심해야 해” 라고 말할 때 굉장히 인종차별적이었죠.  물론 제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줄은 알았지만 어쩜보면 그런 것들이 다 미디어등을 통해 각인된거잔아요. 본인이  직접 흑인들한테 해꼬지를 당했던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럴때 인종차별적이었죠. 

그리고 우리 아빠쪽 가족들은 모두 시카고 남부쪽 출신들이고 지금도 다들 그 근방에 살아요. 그래서 N-word를 쓰는게 일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조심했어요. 그냥 튀어나올 까봐요. 그리고 제가 또 굉장히 경계할때가 있었는데 가족들이 외식을 하거나 할때면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항상 알고 있었어요. 저는 다르다는 걸요. 그리고 인종으로 사람을 달리보는게 너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부모가 되고 나서 아이들을 인종적으로 다양한 학교에 보내고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에 사는 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아이들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여러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말이죠. 특히 아시안들이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롤모델을 가질수 있고 우리 아이들이 특출나지 않고 튀지 않도록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물려주는 것이 힘든가요?

글쎄요, 그건 애들한테 물어봐야 되는데. 2018년에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갔었는데 그렇게 할수 있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갈때마다 힘들거든요.

마음 편한 여행은 아니죠.

네 쉬운 여행은 아니에요. 갈때마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고 매번 다르죠. 그리고 이제는 심정적으로 감정이 격해지고 하는 단계는 지났지만 그래도 준비할 것이 많아요. 그래서 애들한테도 항상 뭘 좀 더해줬어야 하나 하고 느껴요. 한국어 학교에도 좀 보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아마 제가 말을 꺼냈었는데 애들이 싫다고 그랬었을거에요. 그래도 항상 좀 더 했어야 되는데 좀 더 할 걸 그렇게 생각하는거죠.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할만큼 한것 같아요. 아이들과 항상 이 입양이라는 것에 대해 공유했고 알만큼 알고 있고요. 한국음식이나 물건등요. 그리고 그때는 요즘같은 스트리밍서비스도 없었잔아요.

그때는 넷플릭스만 틀면 한국 드라마가 나오는 시대도 아니었고요. 요즘처럼 한류다 K-culture가 융성하던 때도 아니었고요. 지금은 그래서 같이 “기생충”영화도 보고 많이 쉬워졌어요. 그리고 아이들 아빠가 한인도 아니니 쉽지 않죠. 하지만 또 그냥 개인이면 되는거잖아요. 아이들한테 한국인 조부모를 못 준 것이 짠하기도 하고 한국인 사촌들이 없는것이 미안하기도 하죠. 그래서 아이들이 대가족 출신인 사람들에 비해서 뭔가 뿌리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왜 그쪽은 소말리아 가족들이 라던가 하는게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최대한 뿌리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내가 미안하죠.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요. 그렇게 느끼는것이 이상하지 않고 나한테 화내도 괜찮다라고요. 그건 일생을 통해 계속 변할테니까요.

입양과정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이 있나요?

네. 제 서류에 의하면 실은 서류가 두 개에요. 하나는 제가 홀트에서 발견됐다고 하고 하나는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발견되어서 홀트로 보내졌다고 하고. 그리고 서류에 의하면 임시보호 가정에서 6개월 정도 있었다고 하는데 제가 발견됐을때 9개월 정도로 보였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미국에 온것은 13개월이었고요. 감기 등으로 출발이 지연이 되었다고 는 하는데 아무튼 뭐가 앞뒤가 좀 안 맞아요. . 물론 이 입양이라는 모든 일이 앞뒤가 안 맞지만요. 그리고 제 임시보호 가정엔 어른 네명과 개가 한마리가 있었대요. 홀트에 가서 조사를 좀 했는데 통역사를 데리고 가서 제 서류를 보자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만큼이 우리가 공개할수 있는거다 하면서 보여주더라고요. 제가 볼수 없는 서류들도 많았고요. 제 생각엔 친부모에 대한 어떤 1급 비밀 같은것도 아닌것 같은데 말이죠. 제 임시보호 관련 서류로 보였죠. 그것도 제가 알면 안되는 거였고요. 그런데 제가 미국으로 입양되어 올 때 텍사스의 기독 선교단에서 나를 데려와줬거든요. 그때 저를 데리고 와준 분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찾긴 했어요. 나이가 좀 많아서 그분하고 실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던 것 같고 자녀분들과 이야기를 좀 했어요. 그게 제가 아는 다예요

그럼 그걸로 출신 찾기는 끝난건가요?

그런 셈이죠. DNA테스트도 두번이나 했는데 가까운 친척은 찾을수 없었어요. 10촌 넘어가는 사람들만 미국, 한국, 베트남, 중국에 퍼져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가까운 DNA가 나타나거나  제 가족들이 홀트에 찾아가서 저를 먼저 찾지 않는 이상은 힘들다고 봐요. 제가 서류에 제 기록을 남겨 놓고 왔거든요 제 이름등등요. 티비에 나갔던 것도 아니고 광고를 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더 할 일은 없다고 봐요. 제 생일이나 발견 날짜등이 다 정확하지 않아서요. 만약 누군가가 날 찾고 있고 날짜를 대략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그래도 그것이 단초가 될수는 있을텐데 그런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더 이상 할수 있는것이 없다고 봐요. 많이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해요.

오늘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영씨 책은 어떻게 구할수 있죠?

온라인으로 구입하신다면 BOOKSHOP.ORG으로 구입하실 것을 추천해요. 독립서점들을 후원하는 곳이거든요. 혹시 미네소타에 계시다면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Moon Palace, 세인트폴에 있는 Next Chapter,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Birch Bark에서 구할수 있어요. 세인트폴에 있는 Subtext도 항상 제 책을 너무 잘 다뤄주고요. Majors and Quinn도 좋고 어디든 가시면 구할수 있어요. 출판사인 Coffee House 를 통해서 사셔도 되고요. 그런데 이런 동네서점들이 요즘 너무 멋지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뭐가 있나요?

“Outsiders Within:Writing on Transracial Adoption (역자 가제 – 내부의 외부자들: 타인종간 입양에 관하여)” 가 있어요. 2판이 작년에 미네소타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어요. 제가 Jane Jeon Tranka 그리고 Julia Chinyere Oparah와 함께 감수한 책이고 50여명의 공동저자가 있는 책이죠. 대부분이 비백인이고요. 그중에는 입양인 출신인 학자들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 입양관련 연구에 동참해주는 분들이죠.  작년에 나온 음식에 관한 책 “What we hunger for:Refugees and Immigrant stories about food and family(역자 가제 : 우리가 먹고 싶은 것: 난민과 이민자들의 음식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 도 있고요. 미네소타 역사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에요. 어디서든 구하실수 있어요. “A Good Time for the Truth and Race in Minnesota(역자 가제 – 진실을 마주할 시간 : 미네소타의 인종적 진실에 관하여)” 도 있고요. 2016년에 나왔는데 지금도 쉽게 구하실수 있어요. 슬프지만 지금도 유색인종들에 대한 폭력이 만연하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책도 두권 있고요. “쿠퍼의 레슨”이라는 책이고요 한국어와 영어 두가지 버전이 있어요. 시카고에 있는 Lee and Low출판사에서 나왔죠. 그리고 제가 공동집필한 그림책이 10월에 나와요. 다코타출신으로 미네소타에서 활동하는 Diane Wilson 그리고 미네소타에 사는 동화작가  John Coy 와 흑인 혼혈입양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전집 편집자인 Shannon Gibney와 함께 쓴 책이에요. “Where We Come From(역자 가제 :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에요. 10월에 출판 예정이에요. 우리의 모두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가 잘 역여서 그려지는데 인간 진화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준다고도 할수 있어요.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기대됩니다.

저도 정말 고마워요.카오미씨.

선영씨 고맙습니다. 이 팟캐스트를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매 시즌 돌아와주시는 청취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잠시 여름 휴가를 가질 예정이에요. 그 사이 혹시 놓친 에피소드가 없는지 찾아 들어주세요. 입양에 관한 다른 팟캐스트들을 찾아 들어보기에도 좋은 시간이 될거에요. 아니면 잠시 다 내려놓고 쉼을 갖는것도 좋겠어요.

                                                          (번역 : 전유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