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화자_0: 적응된 팟캐스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즌 7, 에피소드 24가 지금 시작됩니다. 이 팟캐스트는 2016년부터 한국의 국제 입양인들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0:00:23) 화자_0: 입양된 사람들은 입양의 삶의 경험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입니다. 저는 카오미 리이며, 한국에서 입양되었습니다.
(0:00:32) 화자_0: 우리의 목소리는 종종 입양 기관, 정부, 때로는 우리의 입양 가족과 오직 기분 좋은 이야기만을 기대하는 사회에 의해 침묵당했습니다.
(0:00:43) 화자_0: 우리의 삶은 그보다 더 복잡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0:00:48) 화자_1: 엄마는, 뭐랄까,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그녀가, “아, 너는 결코 손주를 가질 수 없을 거야,” 또는 “나는 결코 손주를 가질 수 없어, 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0:01:00) 화자_1: 그리고 나서 그녀는 이런 순간을 맞이하고는, “음, 입양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어요.
(0:01:05) 다음 대화는 제프리 윈더와의 대화입니다. 그는 흑인-한국인으로, 인종적으로와 국가적으로 입양된 사람입니다.
(0:01:13) 그는 자신의 삶을 퀴어 옹호와 공동 리더십 공간에 바치고 있습니다. 이제 제프리를 소개합니다.
(0:01:31) 좋습니다. 제 이름은 제프리 윈더입니다. 제 중간 이름은 케빈이고, 제 출생 증명서에 적힌 이름은 종 케빈입니다.
(0:01:42) 저는 그는, 그, 그의 대명사를 사용하며,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올라니 땅에 있습니다. 저는 42세입니다.
(0:01:52) 제프리, 어디서 시작하고 싶으신가요? 자신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주실래요?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0:02:01) 물론입니다. 저는 1982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0:02:07) 저는 서울의 고아원에서 첫 1년 반을 보냈고, 그 후 콜로라도에 사는 백인 가족에게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0:03:24) speaker_1: 이 일은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0:03:24) 화자_1: 음,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고 느끼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것은 제가 아주 기이한 상황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 시작과 존재의 방식이었죠.
(0:03:50) 화자_0: 네, 네. 알겠습니다. 음, 데이비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당신은 커밍아웃을 했나요? 그리고 성소수자 아이들을 위한 환경은 어땠나요?
(0:04:02) 화자_1: 네. 1998년, 1999년 즈음이었으니, 여전히 지난 세기였죠. 그리고 저는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0:04:15) 화자_1: 15살 때 가까운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16살 때 GSA 동아리를 시작하면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0:04:27) 화자_1: 음, 제가 시작했을 때 학교에 다른 커밍아웃한 아이들은 없었고, 제가 유일한 커밍아웃한 학생이었습니다.
(0:04:35) speaker_1: 음, 음, 음, 그래서 제 고등학교 생활 내내 저는 유일한 공개된 남학생이었습니다.
(0:04:42) speaker_1: 음, 그리고 그 클럽은 초기 LGBT 권리 운동에서 클럽이 다룰 법한 것들을 다뤘습니다.
(0:04:58) speaker_1: 음, 그래서 그것은 동성애 혐오였고, 또한 매우 지지적인 학교 행정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클럽의 가치를 보았는지 아니면 제가 그들을 괴롭히는 것에 지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럽이 LGBTQ 문제에 대한 인식과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했던 많은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0:05:20) speaker_1:
(0:05:20) speaker_0: 그래서 당신은 학교에서 정말로 개척자 같은 존재였군요.
(0:05:24) speaker_1: 음, 음, 여러 면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또한, 그곳은 대부분 백인 학교였고, 제 졸업 반에는 흑인 학생이 여덟 명 있었습니다.
(0:05:34) speaker_1: 음, 그래서 많은 면에서 제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이례적이었고 아마도 선구적이기도 했습니다.
(0:05:42) speaker_0: 음, 네. 당신은 주로 백인 지역에 정착한 백인 부모에게 입양된 것이죠, 맞죠? (웃음)
(0:05:53) speaker_1: 네.
(0:05:53) speaker_0: 그-
(0:05:54) speaker_1: 비록-
(0:05:54) speaker_0: 그거 아주 익숙하게 들리네요. (웃음)
(0:05:54) speaker_1: … 비록 캘리포니아였지만 (웃음).
(0:05:56) speaker_1: 네, 다행히도 캘리포니아였고, 그래서 UC 데이비스에서 학생들이 수업 중일 때, 최소한 (웃음) 20대 아시아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어요.
(0:06:05) speaker_1: (웃음)
(0:06:05) speaker_0: 음, 음. 당신은 어떻게, 어…
(0:06:08) speaker_0: 그 당시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당신은- 어, 아시다시피, 다양한 정체성을 시도해보는 시기였죠.
(0:06:18) speaker_0: 음, 하지만 당신에게는, 혼혈이기도 하고, 그리고 퀴어로서 나오는 것도 있잖아요, 그 순간에 어떤 정체성이 더 강하게 작용했는지 궁금했어요.
(0:06:35) speaker_1: 음,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고 어렸을 때 한국 학교에 다녔어요.
(0:06:44) speaker_1: 음, 그런데 그건 입양아 버전의 한국 학교였어요. 정말 엄격한 한국 학교는 아니었어요.
(0:06:52) speaker_1: 음,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 한국인 정체성을 어느 정도 느꼈어요. 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 그룹이 없었던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 정체성에 대한 어떤 대화도 부모님과 나눈 적이 없었어요. 한국에서 입양된 것 외에는요.
(0:07:17) speaker_1: 음, 그리고 저에게도 한국에서 입양된 언니가 있는데, 그녀도 반 한국인이고 반 라틴계예요.
(0:07:26) 화자_1: 음, 하지만 제가 성장하면서, 제 개인적인 감각 외에는 사람들이 저를 한국인으로 보거나 아시아인에 대해 생각할 때 저를 포함시켜주지 않는 것 같았어요.
(0:07:43) 화자_1: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제가…
(0:07:46) 화자_1: 음, 제가 나오고 퀴어가 되는 것이 하이브리드 정체성과 존재의 다원성, 그리고 이중성, 아니면 이중성조차도 아닌, 정체성의 유동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0:08:04) 화자_1: 그리고 퀴어가 되는 것이 저를 racial categories, 즉 제가 맞지 않는 인종적 범주 외에서 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제공해주었고, 퀴어 공간에서는 인종이 그 공간의 주된 통합 요소가 아니었어요.
(0:08:24) speaker_1: 그래서, 음, 퀴어 공간에서 혼혈인으로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찾았어요. 그 공간은…
(0:08:33) speaker_1: 인종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공간이 아니었어요.
(0:08:40) speaker_1: 음, 그리고 대학에 가면서 정말…
(0:08:43) speaker_1: 저는 뉴욕의 NYU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저는 훨씬 더 흑인으로서 인종화된 경험을 했어요. 그런 공간과 일상생활에서 저는 정말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0:08:59) speaker_1: 네, 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네, 제가 이전에 그것을 수용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제 정체성에서 흑인임을 힘의 원천으로 보는 것, 모든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요.
(0:09:13) 화자_1: 그래서 지금은, 저는 다인종 퀴어 유색인종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블랙 한국인 퀴어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요소가 저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 과정은 확실히 제 성인기 전체에 걸친 여정이었어요.
(0:09:39) 화자_0: 네.
(0:09:40) 화자_0: 아, 그래서 당신의 퀴어 정체성이 처음으로 당신이 편안함과 힘을 느낀 장소였고, 나중에 뉴욕에 가서 블랙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면서 한국인이나 아시아인 부분이 나중에 생긴 건가요?
(0:10:03) 화자_1: 아, 그게 시작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0:10:07) 화자_0: 알겠어요.
(0:10:57) speaker_1: 음, 제게 블랙 한국인이라는 것은, 제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요. 제가 한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두 문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저를 형성했기 때문에, 저는 이 두 정체성을 통해 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제가 한국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한국 문화와 언어는 여전히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경험도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 두 정체성이 제 삶에서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여정이었어요.
(0:12:08) speaker_1: …the world, um, I see myself as part of that narrative of being a child of war, um, and being a product of those historical circumstances.
(0:12:17) speaker_1: Um, and it’s, you know, it’s a complex identity, um, because it’s intertwined with issues of race, nationality, and belonging.
(0:12:27) speaker_1: Um, and so, you know, being Black and Korean for me means navigating these intersections, um, and understanding the nuances of my identity in relation to both cultures.
(0:12:39) speaker_1: Um, and I think it also means, um, embracing the richness of that duality, um, and finding strength in the complexities that come with it.
(0:12:08) 화자 1: 세계 곳곳의 전쟁 아기들의 전통에서, 제 존재의 방식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0:12:15) 화자 1: 그리고 저는 제 역할이나 존재를, 자신의 혈통과 유산의 일부로 한국성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이 훨씬 더 큰 것과 연결되어 있고, 여전히 그 시대의 지정학적 상황과 관련된 한국이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확립하기 위해 활용한 산업화된 입양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0:12:52) 화자 1: 그래서 제 일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체성을 가지려는 사람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인류라는 종이 더 혼합된 인종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일부로 보고 있습니다.
(0:13:26) speaker_1: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혼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좀 더 혼합된, 그런 지구적 시민권, 시민권을 가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0:13:36) speaker_0: 음, 맞아요.
(0:13:36) speaker_1: 네.
(0:13:37) speaker_0: 네. 덜 흑백의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죠.
(0:13:44) speaker_1: 네.
(0:13:45) speaker_0: 네. 음, 부모님이 백인이라는 게 어떤 느낌이었나요? 음…
(0:13:52) speaker_0: 사람들이 당신에게 백인 부모를 두는 게 어땠는지 물어보나요?
(0:13:58) speaker_1: 네. 저도 그에 대해 많이 반성해봤습니다. 제 작업의 많은 부분이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죠.
(0:14:04) speaker_1: GSA 네트워크에서의 제 작업은 LGBTQ 청소년들이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0:14:13) 화자_1: 그래서, 네, 저는 그것이 다른 유형의 백인 부모를 가진 다른 입양인들과의 반성과 대화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0:14:22) 화자_1: 저는 정말 이상한, 이상한 백인 부모를 가졌습니다. 음-
(0:14:27) 화자_0: 이상하다고요? 알겠습니다.
(0:14:29) 화자_1: 네. 그들은 아주 차분한 방식으로 반문화적이었습니다.
(0:14:36) 화자_1: 음, 그들은 히피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기독교인도 아니었어요.
(0:14:44) 화자_1: 저는 저희를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로 키운 사람들에게 입양되었습니다.
(0:14:50) 화자_0: 오, 와우.
(0:14:50) 화자_1: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종교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0:14:56) 화자_1: 음, 제 엄마는 언어 치료사였고, 초등학생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0:15:03) 화자_1: 그리고 제 아빠는 생화학자이자 환경 과학자였습니다.
(0:15:10) 화자_1: 그래서, 음, 매우 지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요, 음, 우리가 이야기했던 주제와 그들이 인종에 대해 생각했던 방식에 관해서요.
(0:15:23) 화자_1: 음, 그들은 저희를 한국 학교에 등록시켰어요. 제 엄마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학교에 다녔어요. 음-
(0:15:31) 화자_0: 와우.
(0:15:32) 화자_1: 음, 집안에는 그런 것들이 있었어요.
(0:15:34) 화자_1: 제 엄마는, 음, (웃음) 에센스와 에보니 잡지를 구독했어요. 그리고 제가 어느 순간에 물어봤던 것 같아요, “왜 이런 잡지가 필요한 거죠?”
(0:15:43) 화자_1: “그랬더니 그녀가 말하길, “나는 당신이 집에서 흑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볼 수 있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음, 흑인에 관한 것들을 읽을 수 있는 것들이요.”
(0:15:52) 화자_1: “그리고 저는, 음… 그냥 그런 것들이 제 집에 있었고, 저는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0:15:57) speaker_1: 하지만 네, 그건 그녀의 의식적인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0:16:01) speaker_1: 음, 그래서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odd했지만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0:16:09) speaker_1: 음,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만약 그들이 인종에 대한 언어를 가졌다면, 그것을 활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맞죠?
(0:16:18) speaker_1: 그리고 만약 그들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종과 백인성에 대한 언어를 가졌다면, 그것이 우리의 대화의 일부였을 거예요.
(0:16:26) speaker_1: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건 인터넷 이전의 일이에요.
(0:16:32) speaker_0: 네. 사람들은 지금 이야기해요. 제 성장기에는, 음, 우리는 교차성 같은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0:16:40) speaker_1: 맞아요. 정확히요. (웃음)
(0:16:41) speaker_0: (웃음) 그러면 당신의 부모님은 인종에 대해 이야기했나요, 아니면 그들이 그냥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나요?
(0:16:52) speaker_1: 그러니까, 네.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어요…
(0:16:56) speaker_1: 그들은 우리가 백인인 척 하게 하거나, 우리가 백인이 아니거나, 아니면 우리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0:17:04) speaker_1: 음,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인 우리에게 이해가 될 방식으로 말이죠.
(0:17:14) speaker_1: 음, 그래서 이건 ’80년대의 일이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용어들이, 당신이 알다시피…
(0:17:23) speaker_1: 퀴어 사람들 덕분에,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던 거죠.
(0:17:30) 화자_1: 그리고, 그들은 똑똑했지만, 학생으로서 인종이나 비판적 인종 이론을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0:17:38) 화자_1: 그래서, 음, 제 엄마는 2020년의 봉기 때 백인성과 백인 특권에 대한 모든 것을 읽고 있었어요.
(0:17:46) 화자_1: 그리고 저는, 음, 그녀가 저와 니콜과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해요.
(0:17:51) 화자_1: 우리는 이야기했고,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다르게 또는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0:18:00) 화자_1: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들은 우리의 정체성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나쁘게 느끼게 하지는 않았어요.
(0:18:08) 화자_1: 그래서, 네, 저에게는 그게 (웃음) 승리였어요.
(0:18:13) 화자_0: 네, 그들은 자신의 백인 특권을 인식하고 있었군요.
(0:18:17) 화자_1: 음,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생각하지만, 백인 특권에 대한 언어는 없었어요. 그래서, 음, 마치-
(0:18:24) 화자_0: 네.
(0:18:24) 화자_1: … 그들은 시도하려고 했어요…
(0:18:26) 화자_1: 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하고, 그들은 왜 백인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지 다른 백인들과 이야기해야 했고,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어요. 또는, 네, 그런 상황에서 제가…
(0:18:43) 화자_1: 네, 저는 어떤 상황을 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그러다가 제 백인 엄마가 나타나면 상황이 바뀌고, 우리는 감사하게도 그녀가 거기에 있었던 것에 대해 농담을 하곤 했죠. 정말 감사하게도 그녀가 백인이었어요.
(0:18:59) 화자_1:
(0:18:59) 화자_0: 당신은, 음… 많은 다인종 입양아들처럼, 당신도…
(0:19:04) 화자_0: 분명히 당신의 부모와 함께 공공장소에서 불편하거나 어색한 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0:19:12) 화자_1: 네. 특히 저희가 둘 다, 저와 제 여동생 모두 다인종 혼혈, 한국 입양아였기 때문에요.
(0:19:23) 화자_1: 그래서 저희는 사람들이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인종 범주에 잘 맞지 않았고, 이로 인해 약간의 어색한 대화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0:19:33) 화자_1: 음, 그리고, 저는… 아시죠. 그래서 그들은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상황이 그냥 이상했습니다.
(0:19:42) 화자_1: 제 아빠는, 아시다시피, 콜로라도에서 자랐지만, 연중 언제든지 긴 바지를 입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시죠.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0:19:51) 화자_1: 그리고 이건 제가 어렸을 때, 아직 콜로라도에 있을 때의 이야기인데, 아시다시피, 그는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0:19:57) 화자_1: 그래서 눈 속에서 반바지를 입고 있는 백인 남성과 그 사이에 있는 두 명의 갈색 피부 아이들이 있는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정말로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0:20:07) 화자_1: 겨울 한가운데에서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와 함께 있는 두 아이를 보고 사람들이 정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거나, 이 상황에 뭔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0:20:14) 화자_1: 그래서 저는 가족의 전반적인 역학이 정말 엉뚱했던 장소들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가 입양된 맥락 안에서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0:20:32) 화자_1: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이 왜 멈춰서서 쳐다봤는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들어요.
(0:20:50) 화자_1: (악기 음악이 연주됨)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0:20:56) 화자_1: 하지만 분명히 제가 곱슬머리를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머리를 만지거나 우리 공간에 들어와서, 뭐랄까, 작은 즐거움처럼 행동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0:21:13) 화자_1: 제가 찾고 있는 단어가 뭐였더라?
(0:21:17) 화자는 “음, 액세서리들이었고, 내 백인 부모님이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아니면 그걸 완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셨던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0:21:30) 화자0: “지금 다인종 입양이나, 백인이 유색인종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0:21:37) 화자1: “음, 저는 꼭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유색인종 고아나 가족이 없는 유색인종 아이들에게 가장 첫 번째 해결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0:21:56) 화자1: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도구들이 있다고 느끼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백인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0:22:08) 화자1: “하지만 일반적으로 백인들이 기본 도구를 갖추고 있다는 것, 그것은 제가 건강한 일이라고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네, 다인종 입양인들에게는요.”
(0:22:26) speaker_1: 저는 국제적이든, 초국적이든, 그건 제가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0:22:34) speaker_1: 그리고 저는 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저는 그런 삶과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0:22:45) speaker_1: 그리고 저는 또한 어린 시절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고 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0:22:55) speaker_0: 당신은 심리적으로 외로웠군요. 그들에게 사랑이 있다고 느꼈나요?
(0:23:02) speaker_1: 음, 저는 분명히 그렇게 느낍니다. 그리고 저는… 아시죠.
(0:23:06) speaker_1: 제 아버지는 2010년에 돌아가셨고, 그가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를 사랑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0:23:18) speaker_1: 음, 하지만 저에게는 더 큰 질문이 있었어요. 그들이 저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입양아로서 느끼는 그 감정이 사랑의 대체물인 감사의 감정인지…
(0:23:31) speaker_1: 음, 제가 실제로 그 감정을 느끼는지, 아니면 감사의 감정이 사랑의 대체물로 암시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0:23:41) speaker_1: 하지만, 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저는…
(0:23:46) speaker_1: 네, 저는 그것이 사랑이 있는 상황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이 감사의 감정보다 더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0:23:56) speaker_0: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는 아직 살아 계신가요?
(0:23:59) speaker_1: 네. 음, 네, 그녀는 아직 살아 계세요.
(0:24:01) speaker_0: 알겠습니다. 그녀와 관계가 있나요?
(0:24:04) speaker_1: 음,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음, 저는 관계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정기적으로 이야기해요. 음, 저는… 알아요.
(0:25:05) speaker_1: 음, 그건 의도적인 것이었나요? 그들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나요?
(0:25:06) speaker_1: 처음에는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를 입양한 후에,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저와 비슷하게 생긴 형제를 두기 위해 또 다른 한국인과 흑인 아이를 입양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0:25:21) speaker_1: 음, 하지만, 그들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지 않았거나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또 다른 다문화 한국 아이를 입양한 이유이기도 해요.
(0:25:32) speaker_0: 알겠어요. 왜 그들이 특별히 한국인과 흑인에 관심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0:25:37) speaker_1: 글쎄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0:25:38) speaker_1: 음, 아마도 고아원에서 보내준 아기였고, 고아원에서 보내준 사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마 첫 번째 아기를 입양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0:26:49) speaker_1: …or you’re never gonna have kids,” or something like that.
(0:26:53) speaker_0: Oh, wow.
(0:26:54) speaker_1: And, you know, that was, that was hard for me, but, um, I think ultimately, you know, she was just worried about, you know, her own expectations and her own, you know, dreams of what she thought my life would be.
(0:27:06) speaker_0: Right.
(0:27:07) speaker_1: And, um, I think it took her a while to, to, you know, come to terms with that.
(0:27:12) speaker_0: Yeah, I can imagine.
(0:27:14) speaker_1: But, you know, ultimately, she, she came around, and, um, you know, we have a good relationship now.
(0:27:20) speaker_0: That’s great to hear.
(0:27:22) speaker_1: Yeah, yeah.
(0:26:48) 화자_1: “아니, 나는 결코 손주를 가질 수 없을 거야… 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그녀는 그런 순간을 겪었고, “그럼 입양할 수도 있겠네.”라고 말했어.
(0:26:55) 화자_1: “그래서 그건 약간 ‘아, 알겠어’ 같은 순간이었어. 그런데, 응, 나는 그걸 내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 중 하나로 생각해.
(0:27:06) 화자_1: 내 아빠는 반응이 없었고, 부정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할게.”라는 식이었어.
(0:27:13) 화자_1: 그리고 그때 나는 LGBT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내가 공동 집행 이사로 있었던 GSA 네트워크라는 조직에 가입하려고 했던 때였어. 내 2학년 때였고, 캘리포니아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GSA 클럽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약 3년 동안 꽤 힘든, 음,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퀴어 청소년으로서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어.
(0:27:43) 화자_1: 그래서 저는 많은 여행을 하고 공개적으로 LGBT 관련 활동을 많이 했는데, 두 분 모두 그걸 매우 격려하고 지지해 주셨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들이 제가 정말 화나고 우울했던 청소년에서 긍정적인 무언가로 감정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거예요.
(0:28:08) 화자_1:
(0:28:10) 화자_0: 현재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들에는 GSA 클럽이 모두 있나요?
(0:28:17) 화자_1: 음, 모든 학교에는 그렇지 않아요. 약 60% 정도인 것 같아요.
(0:28:20) 화자_1: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음, 제가 숫자를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겠지만, 대략 500개에서 600개의 개별 고등학교 정도일 거예요.
(0:28:34) 화자_1:
(0:28:35) 화자_0: 음-hmm.
(0:28:35) speaker_1: 음, 제가 GSA 클럽을 시작하고 네트워크에 가입했을 때, 우리의 GSA는 40번째였어요, 그래서, 음-
(0:28:43) speaker_0: 음.
(0:28:44) speaker_1: … 우리의 것은 정말 초기였고, 이제 25년 후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죠.
(0:28:52) speaker_1: 음, 그리고 그것은 캘리포니아와 미국 전역에서 LGBT 학생들을 위한 클럽을 만들기 위한 이 운동의 시작이었어요.
(0:29:04) speaker_1:
(0:29:04) speaker_0: 조금 외로웠던 것 같네요.
(0:29:09) speaker_1: 음, 그럴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0:29:14) speaker_1: 음, 제가 그걸 되돌아보면, 저는 그렇게 외향적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는, 제 나이가 들면서, 저는 그때처럼 외향적이거나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교적이지 않다고 느껴요.
(0:29:33) speaker_1: 하지만 그때, 음, 그건 아마도 흥미로운 외로움 같았어요. 음, 제가 느끼기에는 그것이…
(0:29:46) speaker_1: 아마도 외로움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0:29:52) speaker_1: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음, 상황을 분석해보면 외로운 상황이었을 거예요.
(0:30:01) speaker_0: 당신은… 가끔, 음, 우리는 입양된 사람들끼리 이, 음, 채울 수 없는 구멍이나 공허함에 대해 이야기해요.
(0:30:16) speaker_1: 네.
(0:30:18) speaker_0: 당신은 그런 경험을 했나요?
(0:30:19) speaker_1: 음, 같은 방식으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제 여동생이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을 봤고, 음, 그건 그녀의 탐색에 대한 필요에 의해 매우 많이 좌우되었거든요….
(0:30:30) speaker_1: 그리고 그녀의 엄마의 이야기를 파악하고, 그 결과로 그녀의 이야기를 파악하려고 했어요.
(0:30:37) speaker_1: 그리고 저에게는, 음, 제가 생각하기에, 그 빈자리는 뭔가, 또는, 또는, 음, 그런 것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은 제 성 정체성과 관련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고, 그리고 제 자신이 비이성애자로서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0:31:04) speaker_1: 어린 시절에는 이런 언어가 없었지만, 차별받는 느낌은 여러 면에서 너무 깊어서, 제가 느끼는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네, 제 정체성의 총체와 관련하여요.
(0:31:31) speaker_1:
(0:31:31) speaker_0: 맞아요. 뉴욕에 갔을 때, NYU, 그때는 정말 놀라웠겠네요-
(0:31:38) speaker_1: 어, 그건-
(0:31:40) speaker_0: … 그 당시에는요.
(0:31:41) speaker_1: 음, (웃음).
(0:31:43) speaker_0: (웃음).
(0:31:43) speaker_1: 그건, 음, 제가 그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이유는 NYU의 첫날이 실제로 9/11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0:31:50) speaker_0: 아, 와우.
(0:31:51) speaker_1: … 그것은, 음, 여러모로 삶을 바꾼 경험이었어요.
(0:31:58) speaker_1: 음, 그리고 네, 저는 뉴욕이 정말로 제가 다른 인종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꼈던 곳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도시의 다른 지역에 있을 때 제가 인종화되는 방식이 달랐어요, 그렇죠?
(0:32:18) speaker_1: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는 누군가가 저에게 영어를 할 수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묻고,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가게까지 따라오면서 제 후드티의 후드를 벗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0:32:33) speaker_0: 음-hmm.
(0:32:33) speaker_1: … 그런 지역에서요.
(0:32:34) speaker_1: 그래서 그게 내가 뉴욕에서 경험한 정체성에 관한 좀 더 독특하고 드러나는 경험 중 하나였던 것 같아.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또는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해석하는 방식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어.
(0:32:52) speaker_1:
(0:32:52) speaker_0: 나는 뉴욕에서 7년을 살았고, 그 경험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 중 하나는, “아, 이곳은 용광로야,”라고 생각했는데, 가면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0:33:07) speaker_1: 맞아. (웃음)
(0:33:08) speaker_0: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즉,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모든 인종적 긴장이었어.
(0:33:15) speaker_1: 맞아, 그리고 그 안에서 얼마나 분리되어 있는지가 정말 그렇지.
(0:33:18) speaker_0: 또는,
(0:33:18) speaker_1: … 미세한 동네들 안에서도 말이야.
(0:33:19) 발표자_0: 맞아, 만약 할렘에 있다면 사람들이 나에게 인종 차별적 비난을 할 수도 있어, 내가 보이면 “중국으로 돌아가라”거나, 그런 식으로.
(0:33:28) 발표자_0: 그리고 아마도 흑인들에 대한 긴장감도 있을 것 같아-
(0:33:34) 발표자_1: 응.
(0:33:34) 발표자_0: … 차이나타운이나 아시아 커뮤니티에서도.
(0:33:36) 발표자_1: 응.
(0:33:36) 발표자_0: 알겠지?
(0:33:36) 발표자_1: 맞아, 심지어 아시아 마켓에서도, 응. 그러니까, 응.
(0:33:40) 발표자_1: 그래서 도시 풍경에서 인종화된 역학이 작용하는 모든 방식들이 확실히, 내 몸과 내 정체성을 통해서 경험된 것 같아, 그리고 그게, 응, 내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내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
(0:34:07) 발표자_1: 음, 그리고 제가 뉴욕과 같은 도시로 가지 않았다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곳은 정말로 지역마다 다르게 독특했거든요.
(0:34:17) 발표자_1:
(0:34:17) 발표자_0: 네. 뉴욕에서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찾았나요?
(0:34:20) 발표자_1: 음, 음, 저는 뉴욕에 가면서 퀴어 이론을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 하던 LGBT 청소년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었어요.
(0:34:37) 발표자_1: 음, 그리고 저는 Bi와 혼혈 학생 연합 같은 이름이 끔찍한 단체에 가입했었어요, 이름이 B- BAYMSA? BLAYMSA?
(0:34:48) 발표자_1: 혼혈 학생 연합 같은 거였어요, 음-
(0:34:55) speaker_1: 어, 거기서 뭔가 일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었고, 그리고, 어, 말씀드렸다시피 9/11이 일어났고, 그래서 제 활동과 제 커뮤니티는 반전 운동가 커뮤니티로 바뀌었어요. 그 커뮤니티는 NYU 학생들로부터 형성되었지만, 훨씬 더 넓은 범위였죠.
(0:35:19) speaker_1: 그리고, 어-
(0:35:22) speaker_0: 반군사주의?
(0:35:23) speaker_1: 네.
(0:35:23) speaker_1: 어, 모든 것들, 그리고 나의 군사 제국, 미국 패권에 대한 이해와, 내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것들, 냉전과 한국 입양아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해는 내가 9/11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이해하고, 이제는 모든 다른 정책들을 바라보게 되면서 그 시기에 형성되었어요. 이것은 이제 (웃음) 군사적 착취와 정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긴 유산이 되었죠.
(0:36:07) speaker_1: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발전시킨 공동체는 정말로 정치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어요.
(0:36:15) 화자_1: 그래서 그 공간에서, 제 인종 정체성과 제 성적 정체성은 오히려 덜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고, 여전히 제가 누구인지, 제 역사와 현재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진정성을 찾으려는 필요성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0:36:35) 화자_1: 그리고 저는 오클랜드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로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0:36:51) 화자_1: 그때부터는 흑인과 아시아인 커플을 보고, 흑인과 아시아인 아기들을 보면서 “아, 여기 내 정체성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장소가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0:37:11) 화자_1: (웃음)
(0:37:12) 화자_0: 네, 정말 깊은 이야기네요.
(0:37:15) 화자_0: 당신의 몸에서 당신이 이야기했던 군국주의, 식민지주의, 정복, (웃음) 제국주의와 같은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0:37:30) 화자_0:
(0:37:31) 화자_1: 네.
(0:37:31) 화자_0: 그 공간에서 활동가가 되는 것은 정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0:37:40) 화자_1: 네, 맞아요. 저는, 저희가 살고 있는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한반도 전체에서, 입양인으로서의 저희 목소리, 특히 흑인 한국인들의 목소리는 그 유산과 관련하여 고유한 위치와 공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군사적 존재와 문화적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가 어떻게 침투하고 지배력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방식이죠.
(0:38:26) 화자_1: 그래서 미국의 인종차별이 한국에 남긴 유산, 그리고 지금 그것이 어떻게 자체적인 형태의 인종차별이 되었는지에 대한 방식들, 그러니까 이질적인 사회와 다양성, 그리고 비미국적 맥락 내에서의 수용에 대한 질문들이 모두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웃음) 미국 맥락의 강제적 요소와 함께 말이죠.
(0:38:56) 화자_1: (웃음)
(0:38:57) 화자_0: 음,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선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0:39:06) 화자_0: 나는 생각했어요, 어떻게-
(0:39:11) 화자_1: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즐거움이죠.
(0:39:12) 화자_0: 네, 카말라 해리스가 흑인과 아시아인이라는 점에서, –
(0:39:20) 화자_1: 네.
(0:39:20) speaker_1: 저는 제 상상 속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버락 오바마가 한 생애에 충분한 야생의 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흑인과 아시아계 미국인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깊이 있는 검증을 해주고, 아마도 더 큰, 네, 우리가 인종과 인종 정체성을 개념화할 수 있는 더 큰 방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식민지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그리고 세계화의 유산, 그리고 선택에 의한 사람들의 이동과 선택에 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동이 어떻게 미국인들이 이 나라에서 인종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죠.
(0:40:22) speaker_1: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있는지를 고려할 때, 그게 매우 높은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0:40:27) speaker_1: 하지만, 음, 네, 저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여전히 조금, 음, 놀라움과 충격 속에 있습니다. 블랙과 아시아 사람의 존재가 (웃음)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고, 음,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모든 대화들에 대해요.
(0:40:54) speaker_1:
(0:40:54) speaker_0: 당신은, 음, 오클랜드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음, 그렇게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커플, 그리고, 음, 관계의 혼합을 보게 되는데요.
(0:41:08) speaker_0: 그러나 가끔은, 음, 한 쪽을 과소평가하는 기분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음, 사람들은 형태 변환이나 코드 스위칭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0:41:22) speaker_1: 아, 네. 네, 네.
(0:41:22) speaker_0: … 하지만 어떤 모임에서는 당신이 블랙이고, 다른 모임에서는 아시아인일 수도 있죠. (웃음)
(0:41:30) 화자_1: 네, 제 인생 전체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공간에서 카멜레온처럼 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자신이나 제 전체를 공간에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했죠.
(0:41:44) 화자_1: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력을 통해서도, 제가 GSN 네트워크에서 했던 주요 작업은 색깔이 있는 트랜스 및 퀴어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거든요.
(0:42:02) 화자_1: 그래서 그 일을 통해서, 그 당시 필요했던 색깔이 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제가 괜찮게 느꼈던 일이었어요.
(0:42:17) 화자_1: 또한 모호하게, 비범주화된 색깔이 있는 사람으로 있는 것이 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0:42:29) 화자_1: 음,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제 정체성의 어떤 부분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음, 사람들이……
(0:42:41) 화자_1: 제가 흑인이라고 생각하면, 저는 확실히 제가 흑인이고 한국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0:42:45) 화자_1: 그리고 사람들이, 음, 만약 사람들이 제가 단순히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음, 저는 제가 흑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지 않을 것입니다.
(0:42:56) 화자_1: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그게 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주요 방식은 제가 흑인 한국인으로 소개할지, 아니면 한국인 흑인으로 소개할지에 달려 있습니다.
(0:43:07) 화자_1: 음, 그래서 그건 종종 제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리고 제가 누구인지, 음, 제가 어떤 식으로, 음, ‘소속’되고 싶은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0:43:23) 화자_0: 소속감.
(0:43:23) 화자_1: … 소위 말하는, 네, 네, 맞습니다, 정렬되거나 소속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0:43:27) speaker_0: 네, 제가 아는 한, 카말라 해리스에 관해서, 제가 몇몇 흑인 공간에 있는 특권을 누렸는데, 그곳에서는 첫 번째 흑인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큽니다.
(0:43:45) speaker_0:
(0:43:45) speaker_1: 음-hmm.
(0:43:45) speaker_0: 그리고 아시아인 부분은 사실-
(0:43:48) speaker_1: 아-huh.
(0:43:48) speaker_0: …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인 공간에서는 첫 번째 아시아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큽니다. (웃음) 그래서, 음, 제가 그 점이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 같습니다-
(0:44:09) speaker_1: 아, 연결, 네. 네.
(0:44:10) speaker_0: 네, 연결이죠, 그래서 그렇게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0:44:40) speaker_0: …multiple identities.
(0:44:41) speaker_1: Right, right.
(0:44:42) speaker_0: And I think that’s, um, that’s a challenge for a lot of people.
(0:44:45) speaker_1: Yeah.
(0:44:45) speaker_0: And, um, it’s, it’s hard to, to, to understand that.
(0:44:49) speaker_1: Yeah.
(0:44:49) speaker_0: And so, um, I think, you know, having these conversations helps to, to break that down a little bit.
(0:44:54) speaker_1: Yeah, for sure.
(0:44:59) 화자_1: 네, 저는 당신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평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를 가질 수 없는 것과 관련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뇌가 자동으로 그쪽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야 했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0:45:18) 화자_1:
(0:45:18) 화자_0: 아니면, 당신의 경험이-
(0:45:20) 화자_1: 맞아요, 네.
(0:45:20) 화자_0: … 당신이 자신과 연관시킬 수 있는. 제프리, 한국에 다시 가본 적이 있나요?
(0:45:24) 화자_1: 네, 갔었습니다. 2000년에 한국에 갔고, 오, 세상에, 이제 2004년이니까 20년 전이네요. 정말 긴 시간처럼 들리네요.
(0:45:36) 화자_1: 음, 저는 입양인 투어 같은 것에 갔었는데, 그때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검색을 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0:45:47) 화자_1: 그래서 그때 제 여동생이 그녀의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0:46:31) speaker_1: Um, I think about it sometimes, but I haven’t really actively pursued it. I think it’s, um, a lot of it is just, like, the emotional weight of it.
(0:46:35) 화자_1: 음, 그게, 나는 내가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 왜냐하면 그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0:46:45) 화자_0: 강제된 느낌이네.
(0:46:46) 화자_1: … 뭐라고-
(0:46:46) 화자_0: 응.
(0:46:46) 화자_1: …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0:46:49) 화자_1: 음, 응, 하지만, 나는 그런 끌림이나 강제성을 느끼지 않았어, 음, 내 여동생은 정말로 자신의 삶과 세상에서의 방향을 찾지 못했었고, 그녀가 그런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0:47:03) 화자_1: 음, 그래서, 응, 나에게는 그런 적이 없었고, 나는, 음, 분명히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 중 하나는 내 생일이고, 아마도 그 날이 내가 정말로 그 상황에 대해 곱씹는 주된 날인 것 같아, 또는, 음, 입양된 것에 대해, 그리고 내 엄마가 몇 살일지, 그녀가 살아 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0:47:31) 화자_1: 음, 하지만 나는 또한 그런, 음, 그래, 모르겠어, 그런 추진력이나 열망을 느끼지 않았어.
(0:47:42) 화자_1: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
(0:47:46) 화자_1: 음, 하나는 퀴어라는 것이고, 그냥, 그래, 퀴어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라는 거야.
(0:47:57) 화자_1: 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어, 내 출생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트라우마였는지, 아니면, 어, 그래, 그냥, 그래, 알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또한 그렇게 좋지 않은 기억이나 상황을 도입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웃음) 그래, 그렇게 좋지 않은, 어, 기억이나 상황이 아닌 것, 어, 내가 혼혈 한국인일 때 이런 여러 가지 미지의 것들 중 하나라고 느끼는 것 같아.
(0:48:35) 화자_1: (악기 음악이 흘러나옴)
(0:48:47) speaker_0: 그게, 네, 꽤 아플 수 있을 것 같아요.
(0:48:52) speaker_0: 모르고 있는 것, 또는 알 수 없는 부분, 음, 당신이 실제로 사랑의 관계의 산물인지, 아니면 권력 불균형의 산물인지, 그리고/또는, 음, 미국 군인과 관련된 것인지.
(0:49:13) speaker_0: 네.
(0:49:14) speaker_1: 맞아요. 상황의 경과가- 네.
(0:49:18) speaker_0: 음, 맞아요.
(0:49:18) speaker_1: 상황의 경과. 모든 것들이, 당신이 아는 것들, (웃음) 함께 오는…
(0:49:25) speaker_1: 네, 그게 제 느낌의 일부인 것 같아요. 음, 연대감을 느끼는 것, 뭐라고 할까요, 전쟁 아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군사 점령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0:49:44) speaker_1: 또는, 음, 우리가 뭐라고 부르든지. 음, 하지만 네, 그런 보고서들과…
(0:49:52) speaker_0: 음.
(0:49:52) 화자_1: 네, 난민이긴 하지만, 군사 작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에 가깝죠.
(0:49:58) 화자_0: 아니면 난민처럼요.
(0:49:58) 화자_1: … 군사 작전의 결과로. 그래서, 그런-
(0:50:01) 화자_0: 오.
(0:50:01) 화자_1: …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우리는 모든 반 미국인-
(0:50:09) 화자_0: 음.
(0:50:09) 화자_1: …
(0:50:09) 화자_1: 반 이라크인 아기들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공동체나, 그런 생각의 맥락에서, 지정학이 어떻게 생명정치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죠.
(0:50:25) 화자_1: 그리고, 당신이 말했듯이, 당신의 몸은 지정학적이고, 매우 개인적인 상황의 현장이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전쟁 상황이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뒤흔들죠.
(0:50:50) speaker_0: 맞아요. 그러니까 구현-
(0:50:52) speaker_1: 네.
(0:50:52) speaker_0: … 점령의.
(0:50:54) speaker_1: 네.
(0:50:54) speaker_0: 네. 네. 아, 그리고 그 이후로 한국에 돌아간 적이 없군요.
(0:50:59) speaker_1: 2004년 이후로는 안 갔어요.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죠.
(0:51:05) speaker_0: 그곳에 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0:51:08) speaker_1: 음, 다시 말하지만, 제가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요.
(0:51:15) speaker_1: 음, 그래서 저는 저를 한국인이라고 보지 않았어요. 많은 입양아들이 돌아갔을 때 느끼는 것처럼, ‘나는 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0:51:23) speaker_1: 그냥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저와 닮은 사람들을 보고 있었어요.
(0:51:27) speaker_1: 그래서, ‘여기 내 사람들, 저와 닮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서 여기 있고 싶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0:51:36) speaker_1: 하지만 강한, 네, 그런, 음, 연결감을 느꼈어요…
(0:51:43) speaker_0: 뭔가 있었죠.
(0:52:44) speaker_1: …because I don’t want to intrude on their lives.
(0:52:46) speaker_0: Right.
(0:52:47) speaker_1: I mean, I think it’s a delicate situation, you know, especially if they don’t know about me.
(0:52:52) speaker_0: Yeah.
(0:52:53) speaker_1: So, it’s just, um, yeah, it’s a lot to think about.
(0:52:43) 화자_1:
(0:52:44) 화자_0: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당신의 자매처럼 그 불타는 열망이 없나요?
(0:52:47) 화자_1: 맞아요, 아니요, 제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은 없어요.
(0:52:53) 화자_1: 제게는 제 이야기가 전통적인 정체성 개념에 뿌리를 두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미래 정의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느껴져요.
(0:53:11) 화자_1:
(0:53:12) 화자_0: 흥미로운 점은, 제가 한국에서도 살았던 적이 있는데, 바로 1년 동안,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할 때였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제가 만난 퀴어 사람들, 또는 게이들이 많은 경우 미국에서 수년간 공개적으로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옷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느낀다는 거예요.
(0:53:37) 화자_0: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들의 생물학적 가족에게조차 다시 옷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죠.
(0:53:43) speaker_1: 음.
(0:53:43) speaker_0: 그리고 그건 그들이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해야 했던 개인적인 희생의 일종이며, 그걸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모든 정체성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클랜드에서처럼요.
(0:54:06) speaker_0:
(0:54:06) speaker_1: 음, 제가 그곳에 있었을 때 본 다른 흑인 한국인이 한 명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거리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기계가 아니라 빗자루로요.
(0:54:21) speaker_1: 그리고 미국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인종차별을 느끼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0:54:31) speaker_1: 음, 그래서 제 퀴어 정체성 외에도,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제가 그 공간에서 되고 싶었던 전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0:54:50) speaker_1: 그래서… 네, 저는 지금 한국에서 활동가들의 모든 노력을 매우 지지합니다.
(0:55:00) speaker_1: 음, 특히 제가 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던 그 시점, 제 20대 초반에요.
(0:55:05) speaker_1: 그리고, 저희가 온 고아원을 운영하던 목사님께 아마 정말 무례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0:55:14) speaker_1: 음, 하지만 그때는 확실히 아니었고, 저는 이 상황을 잘 풀어내기 위해 제 자신을 억누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0:55:23) speaker_1: 음, 그리고 제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제 정체성의 구성 요소들이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면에서 덜 뚜렷하게 느껴지면서, 제가 다르게 느낄 수도 있고, 그룹의 일원이 되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보다요.
(0:55:47) speaker_1: 하지만, 음,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음, 저는 16세부터 비밀스럽게 지내지 않았으니까, 그게 몇 년인지도 모르겠어요.
(0:55:55) speaker_1: 그래서, 음, 제가 다시 비밀스럽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를 받아줄 수 있는 비밀 공간은 없다고 생각해요.
(0:56:03) speaker_0: (웃음)
(0:56:03) speaker_1: 음, 그리고… (웃음)
(0:56:06) speaker_0: 저를 위한 비밀 공간은 충분히 크지 않아요. (웃음)
(0:56:08) speaker_1: 맞아요. 정확해요.
(0:56:09) speaker_1: 음, 그래서 네,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그것이 아마도 내가 내 정체성의 구성 요소로서 내 탐색을 덜 중요하게 느끼게 한 것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요.
(0:56:28) speaker_1: 음, 아마도 나는 한국 가족과 흑인 미국 가족의 두 가지 평행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내 삶의 어떤 순간에 함께하는.
(0:56:49) speaker_1: 하지만, 음, 그것은 아마도 내 머릿속의 환상일 뿐이에요.
(0:56:53) speaker_1: 하지만 내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 두 개의 평행한 이야기의 궤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일 것 같아요.
(0:57:04) speaker_0: 그리고 제프리, 당신은 지금도 당신의 활동가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나요?
(0:57:09) 화자_1: 네, 저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 주요 지적 프로젝트는 권력 공유에 관한 것입니다.
(0:57:22) 화자_1: 저는 공동 집행 이사였고, 공동 리더로서 이끌 수 있는 능력에서 매우 깊은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혼자서 집행 이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당신은 리더입니다. 당신은 조직이나 운동을 이끌어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적, 제도적, 또는 다른 어떤 신호도 없었을 것입니다.
(0:57:49) 화자_1: 그래서 지금은 다른 공동 리더와 공동 리더십 구조를 지원하는 구조를 개발하고 구축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으며, 또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신생 젊은 경영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0:58:13) 화자_1: 그리고 저는 KQTX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KQTX는 한국의 퀴어, 트랜스 국가적 공간입니다.
(0:58:27) 화자_1: 그리고 저는 이전에 LGBT 청소년 및 교육 정의 분야에서 활동했던 것과 같은 운동 내에서 조언 역할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0:58:43) 화자_1: 그래서 네, 저는 계속해서 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기러기가 이주하는 전통처럼요.
(0:58:52) 화자_1: 저는 V의 앞쪽에서 물러났고, (웃음) 잠시 동안 제 자리를 맡아 초안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0:59:00) 화자_1: 그리고, 네, 제가 어디에 적합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0:59:06) 화자_1: 하지만, 저는 정체성과 소속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수용과 이해, 그리고 급진적인 사랑이 앞으로 제 활동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0:59:24) 화자_1:
(0:59:24) 화자_0: 음, 우리는 분명히 우리 자신의 자기 사랑과 돌봄을 촉진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요.
(0:59:35) 화자_0: 그래서 KTX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어요, 뭐라고 하셨죠?
(0:59:40) 화자_1: K는 한국 퀴어 트랜스 경험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X는 그런 의미인 것 같고, KQTX입니다.
(0:59:46) 화자_0: 아. 네, 음,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0:59:50) 화자_1: 음, 제가 지금까지 있었던 한국 공간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공간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그룹의 정치적 지향이 입양아, 혼혈 한국인, 그리고 하이브리드 한국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1:00:10) 화자_1: 그래서 이 그룹은 아마 2018년부터 활동해왔어요. 그들은 전국 퀴어 및 트랜스 한국 회의를 개최했었습니다.
(1:00:24) 화자_1: 음, 그 이후로는 국가적인 네트워크가 된 것 같아요. 분명히 대부분은 팬데믹 동안 발전했죠.
(1:00:34) 화자_1: 그래서, 음, 성장의 여정이었어요. 작은 공동체에서 큰 공동체로 성장했죠.
(1:00:44) 화자_1: 음, 제가 말했듯이, 제 정체성의 대부분의 요소들이 받아들여지고 이해받는 곳 중 하나예요.
(1:00:54) 화자_1: 음, 출발점이 무작위 백인이나, 퀴어에 대한 이해가 적은 사람들과는 그렇게 멀지 않아요.
(1:01:10) 화자_1: 음, 하지만 저는 그것이 흥미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했고, 한국인들이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다루고 있는 장소라고 느꼈습니다. 종종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1:01:27) 화자_1: 저도 입양인 정치가 제 삶에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01:34) 화자_1: 저는 20대 초반에 입양인 활동과 조직화에 대해 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1:43) 화자_1: 음, 그리고 그 후로 그것은 제가 다루고 있는 더 큰 정체성의 집합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웃음).
(1:01:55) 화자_1: 그래서, 음, 저는 제 정치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지 않아도 되었지만 KQTX의 맥락 내에서는, 입양인들이 있고, 그런 입양인 존재감, 퀴어 입양인 존재감이 있습니다, 음-
(1:02:17) 화자_0: 그렇습니다.
(1:02:18) 화자_1: … 그렇죠… 네, 네.
(1:02:20) 화자_0: 알겠습니다.
(1:02:20) 화자_1: 음,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제가 더 많이 기댈 수 있거나, 입양인으로서의 분석이나 표현을 가져오기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음, 네.
(1:02:39) 화자_1: 그러니까, 제가 이 부분을 피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1:02:42) 화자_1: 저는 사람들에게 제가 한국계 미국인 입양인이라고 말하거나, 한국에서 온 초국적 입양인이라고 말합니다, 음, 그래서 네.
(1:02:50) 화자_1: 그래서 저는 주로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에서 한국인 엄마와 흑인 아빠와 함께한 제 삶을 상상하고, 제 경험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온갖 질문을 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1:03:06) 화자_1: 음, 그리고 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최근에 그렇게 많은 지적 에너지를 쏟은 장소는 아닙니다.
(1:03:15) 화자_0: 음, 당신이 그곳에서 매우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어 좋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입양인 공간이 매우 이성애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1:03:31) 화자_0:
(1:03:32) 화자_1: 음, 그래서 KQTX는 퀴어-
(1:03:35) 화자_0: 맞아요.
(1:03:35) 화자_1: … 입양인들을 수용하는 퀴어 공간입니다.
(1:03:39) 화자_1: 입양인 공간은 매우 이성애적이고, 매우, 음, 잘 모르겠지만 백인 중심적이고,
(1:03:47) 화자_0: 네.
(1:03:48) 화자_1: … 백인 우월주의를 수용하는 종류의 공간입니다. (웃음)
(1:03:51) 화자_0: (웃음) 네. 음, 음, 그 이주 입양 부분과 함께 내재적으로, 그것은-
(1:03:59)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인 우월주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 이는 일종의 수혜자로서의 관점이지만, 실제로는 백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백인들이나 내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입양아가 얻을 수 있었던 것, 혹은 다인종 입양아가 지식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1:04:48) 화자는 계속해서: 그리고 그것조차도 필요했던 것과는 너무 멀었고, 그래야 했던 것과는 너무 멀었다고 말합니다.
(1:04:59) speaker_1: 네, 그냥 뭔가, 제가 잘 모르겠어요, 세상에 대한 어떤 것도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으면, 그러면 일어나는 일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제한적이게 되죠.
(1:05:09) speaker_1:
(1:05:09) speaker_0: 그러니까, 오늘날의 젊은 입양아들도, 백인 부모가 한국인을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1:05:18) speaker_1: 네.
(1:05:18) speaker_0: … 그녀의 가족과 관련되기 위해서, 그게 오늘날에도 매우 진보적으로 느껴지죠.
(1:05:29) speaker_0: (웃음) 정말 고급스럽다고 할 수 있죠, 아니면 매우 의식적이라고요.
(1:05:33) speaker_1: 네. 음, 음, 사실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제 엄마는 다른 부모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어요.
(1:05:38) speaker_1: 그녀는 한국 사람들과 함께 한국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었어요-
(1:05:40) speaker_0: 아, 다른 입양 부모들이요?
(1:05:42) speaker_1: … 한국 사람들과 함께 가는 거였죠.
(1:06:19) speaker_1: … 네, 문화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1:06:20) 화자_0: 그리고-
(1:06:20) 화자_1: … 그것은 또한 겸손의 행위였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에게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게 했거든요.
(1:06:25) 화자_1: 그들은 그들에게 “오 마이 갓. 알겠어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든 것들을 하게 했어요.
(1:06:29) 화자_1: 그리고 돌아보면, 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잘 가. 너를 내려줄게.”라고 했을 거예요. 음. (웃음)
(1:06:39) 화자_0: 그거, 그거 좀 그렇죠.
(1:06:41) 화자_0: (웃음) 그거는 일종의 행위죠, 음, 제가 불편한 일을 할 거라는 것, 한국에서 아이들을 입양하고 그들을 불편할 수 있는 공간에 두는 방식으로요.
(1:06:55) 화자_0:
(1:06:55) 화자_1: 맞아요…. 그래서, 주 1회는 아마도, 음,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주 1회는-
(1:07:01) 화자_0: 네.
(1:07:01) 화자_1: … 평생에 비하면요. (웃음)
(1:07:02) speaker_0: 네.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네. 맞아요.
(1:07:06) speaker_0: 제프리, 당신이 입양인 공간으로 돌아가거나 어떤 형태의 행동주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팟캐스트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는 분명히 다른…
(1:07:23) speaker_0: 다른 입양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경험에 대한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1:07:31) speaker_0: 또한, 희망적으로, 퀴어 입양인들의 경험이 더 가시화되거나, 당신과 같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더 많은 인식과 공간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1:07:50) speaker_0: 정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1:07:52) speaker_1: 정말 감사합니다.
(1:07:53) speaker_1: 그리고 분명히 우리 자신을 알리는 일의 일환으로, 문화적 생산과 입양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 포함됩니다.
(1:08:04) speaker_1: 그래서, 팟캐스트를 해줘서 고마워요. 그런 것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1:08:10) speaker_1: 음,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을 해줘서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음-
(1:08:19) speaker_0: (웃음)
(1:08:19) speaker_1: (웃음) 하지만 사실, 많은 것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음, 제가 젊은 시절에 제 존재와 세상에서의 저 자신을 설명할 방법을 찾으려 했던 시작과 관련된 것들이었죠.
(1:08:34) speaker_1: 그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고마워요.
(1:08:37) speaker_0: 그리고 제프리, 누군가 당신과 연결하고 싶어 한다면, 열려 있나요?
(1:08:43) 화자_1: 아, 네. 음, 확실히요. 음, KQTX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다른 입양인들, 혹은 혼혈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08:53) 화자_1: 음, 저는 멘토링이나 조언, 연결 및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음…
(1:09:04) 화자_0: 어떻게 연락할 수 있나요?
(1:09:06) 화자_1: 음, 가장 좋은 방법은 제 이메일인 G-E-O-F-F-R-E-Y @collectivestruggle로 연락하는 것입니다.
(1:09:15) 화자_1: i- info, I-N-F-O, 음, 또는 LinkedIn에서 Geoffrey Winder, G-E-O-F-F-R-E-Y W-I-N-D-E-R라는 이름으로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악기 음악 재생)
(1:09:37) 화자_0: 정말 감사합니다, Geoffrey. 언젠가 직접 만나길 바랍니다. 이 팟캐스트를 계속 유지해 주신 모든 Patreon 후원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09:47) 화자_0: 당신이 누구인지 아실 겁니다. Yooken Jun은 우리의 자원봉사 한국어 번역가입니다. 그녀의 번역은 adaptedpodcast.com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Kaya MiLee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