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제 이름은 피터 뮐러입니다. 48세이고 덴마크에서 사는데 지금은 한국에 머무르면서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그룹(DKRG)과 활동하고 있어요.
카오미: 네, 한국에 얼마나 계셨나요?
피터: 거의 한 달이 다되어 갑니다.
호스트: 네,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피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TRC)에 최근 발굴된 불편한 사례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8월 23일 한국의 진실화해위에 요구사항을 제출하였고,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해외입양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아동 성적남용에 대한 새로운 불편한 사실들이 추가로 발굴되었는데요. 당시 한국 정부와 해외입양기관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홀트와 한국사회봉사회(KSS) 모두 이중 문서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한 문서는 공식적인 기록이고, 다른 문서는 비공개로 해외입양에 대한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진실화해위가 이 사례들을 조사할 때 당시 사실이 그대로 반영된 문서를 참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카오미: 홀트와 한국정부측이 각각의 입양인에 대해 2개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피터: 네, 마치 거울처럼 저희 각자가 갖고 있는 입양 문서와 번호가 있고요, 이 외 진짜 이름과 진짜 생년월일이 적힌, 친가족에 대한 정보가 담긴 다른 문서가 있습니다. 고유한 번호가 붙어있고, 진짜 문서와 가짜 문서를 구분할 땐 닉네임이 사용됩니다.
카오미: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피터: 여러 입양인들이 사례를 접수했고, 그들이 제출한 서류로부터 알게 되었어요. 사례번호들이 다르게 나오길래 처음에는 저희의 서류정리에 실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한 명의 입양인당 문서가 두개가 있는 거였죠. 실수였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어요. 특히 한글 문서는 한자로 되어 있어서 굉장히 읽기가 어려워요. 공식문서은 영어로 되어있는데 (국내) 기록된 문서는 한자라, 한국사람들도 한자를 읽기 어려워합니다. 한자는 과거에 문서를 작성할 때 썼던 언어이거든요.
카오미: 왜 두 개의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세요?
피터: 그게 저희가 진실화해위에 전달한 내용입니다. 1960년대외 1970년대에 한국정부가 사회정화라고 하는 제도를 운영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인정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지만 사회정화제도가 1960년대에 당시 정부에 의해 시행되었고, 혼혈아부터 시작했습니다. 섞인 아이들, 백인과 흑인이 섞인.
카오미: 혼혈인종이요.
피터: 네 혼혈인종이요. 덴마크에서는 이 단어가 매우 적절하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혼혈인종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미군들의 자식이고, 흑인이거나 절반이 흑인이거나 백인인 아이들입니다. 실제로 저희가 아는 바로는 홀트의 전대표인 부씨가 아주 생생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요, 1960년대에 당시 청와대로 찾아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안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혼열인종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했어요. 미국에 가서 많은 흑인 아이들이 구두를 닦는 걸 봤다고 이야기했어요.
피터: 그는 대통령에게 만약 여행객들이 공항에 와서 흑인 아이들이 구두를 닦는 걸 본다면 한국에게 오명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혼혈 흑인 아이들이 구두를 닦는 걸 말한거죠. 공항과 거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수치스러울 거라고 이야기해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혼혈인종문제를 해결할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부씨는 스스로 마을과 도시와 미군기지들을 돌아다니며 혼혈아동을 수거한 이야기를 설명했습니다. 또 엄마들이 아이를 내어주는 걸 꺼려했다는 이야기도 하죠. 그들을 설득했다고 말합니다.
또 절반이 흑인인 아이들이 불만족스러워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한국인이라고 항의했지만 부정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외국인 취급했죠. 이런 혼혈아이들이 모두 소환되어 초기에 미국으로 보내지고 제 고국인 덴마크, 노르웨이에도 보내졌는데요, 그는 이를 칭송했습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아이들을 데려간 걸요. 이후 제가 부씨를 인터뷰한 2시간의 내용이 덴마크와 한국 방송사 양측에 의해 녹화되었습니다. 지금 할 이 이야기는 녹화된 내용이 아닌데요, 그는 다음은 소아마비장애인, 그 다음은 뇌성마비장애인, 그리고 다른 종류의 장애인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방식으로 소집되어 해외로 입양이 되었죠. 세번째 그룹은 미혼여성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사회정화제도는 당시에는 꽤나 현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덴마크에도 사회정화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의 목적은 깨끗하고, 보기 좋은 사람들로 인구를 구성하는게 목적이었죠. 그래서 이 제도는 입양제도와 한국정치에 통합되었습니다. 제가 위원회에 주장하는 건 혼혈인종아동에게 일어난 일이 인종청소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순수한 혈통의 한국인이 있다고 믿었고 인종이라는 말을 잠시 쓰면, 그 외의 아이들을 단순히 피부색이나 혈통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환해서 일을 도모한 건 인종청소라고 보여집니다. 저는 위원회에 이 내용을 전달할 계획이고 UN인권위원회에도 전달될 것입니다.
카오미: 한국은 아직 UN이 발행한 아동권리와 관련된 문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국가들 중 하나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피터: 아동권리협약은 비준한 상태입니다. 아마 헤이그 협약을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요.
카오미: 네, 헤이그 협약이요. 한국은 아직 헤이그 권리협약에 서명을 하지 않았죠.
피터: 네, 헤이그 협약은 입양인권에 대한 내용이고 아동 협약은 아동인권에 대한 내용입니다. 실질적으로 저희는 성인이지만 아동인권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아동 협약의 제7항과 8항에 보면 한국은 모두 서명을 했고, 정체성에 대한 권리,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카오미: 그러니까 한국은 이 협약에서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조항에 서명을 한 셈이네요.
피터: 네, 하지만 한국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건, 한국은 사실 많은 법이 제정되어 있고 이 법들은 미국이나 덴마크등 다른 국가로부터 차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가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와 기관들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마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보기에는 좋아보이지만.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제 생각엔 무정부주의처럼 보이고 조금 어지럽기도 합니다. 책무를 이행할 도구가 실제로 없습니다. 사실 아동협약은 문자 그대로 한국법에 통합되어 있습니다. 법에 적힌 내용이 아동협약에 적힌 내용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기관들이 뭘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협약을 어겨도 기관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습니다. NCRC 같은 경우에는,
카오미: 아동권리보장원이요.
피터: 네, 국제법에 따르면 입양을 관장하는 최상위 기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양기관이 입양이후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이를 볼 수 있고 언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해당기관을 처벌을 하거나 조치를 취하도록 보장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무능력한 관리자들과 무능력한 기관들이 뒷짐지고 있는 셈이죠. 그들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변화를 시행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도구가 없는거죠.
제주도에 제가 갔을 때 베이비박스 활동가들을 봤습니다. 바로 이거에요. 우리가 겪었던 똑같은 일이 아직도 한국에서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정체성을 지워버리고 이름도 지워버리는 건 불법입니다. 베이비박스는 한국에서 불법이지만 관리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순히 불법이라고 말만 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죠. 경찰서에 가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처벌이 없고 제도에 대응을 위한 조치사항이 없습니다. 2014년 실제로 특별입양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홀트는 여전히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홀트는 아직도 법을 어깁니다. 그런데 제도가 없죠. 기관들은 외치고 있습니다만, 시행하기 위한 방법이 없는 게 한국의 문제죠.
카오미: 홀트가 어떻게 계속 법을 어기고 있나요?
피터: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불법으로 여성을 위한 장소를 운영 중입니다. 여성을 위한 쉼터라는 이름을 붙였죠. 기관이 운영하는 여성사업이 있습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굉장히 부유한 국가가 되었고, 입양을 통해 아동을 돕는 일은 더 이상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사회적 문제들이 많죠. 아이가 있는 미혼모들이 우선 (홀트에) 찾아갑니다. 사회적 도움이 없어요. 새로운 사회적 프로젝트들이 시작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작단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입양기관을 통해서 민간인이 운영하는 사회적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아이를 기관에 위탁해야 하죠.
카오미: 네, 그러니까 안전한 쉼터 같은 곳들을 설치하고 임산부를 위한 서비스 같은 걸 제공하지만, 상담을 통해 아이를 포기하기를 강요하는 군요.
피터: 네 상담이라고 불러요. 아동을 끌어올 자원이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보입니다. 1% 미만인데 제가 알기로는 0.56인가 그럴거에요.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이죠. 아동 자원이 바닥나니 다른 경로를 통해 여성과 아동에게 접근해야 하죠. 여성이 서양 국가에서처럼 같은 권리를 누리지 않습니다. 결혼을 안하면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고, 결혼 제도 밖에서 아이를 가져도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일이죠.
덴마크에서는, 제가 덴마크에서 왔는데요. 커플 중 1/3밖에 결혼을 안합니다. 사실 결혼을 안하는게 더 일반적이죠. 커플인데 결혼을 안 한 상태에서 가족으로 살아요. 한국에서는 결혼이 우선시되고 미혼모는 직업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구할 수가 없죠.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어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여성들이 아이를 포기하고 난 후에 후회하고 아이를 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아이를 다시 사야 됩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죠.
카오미: 그러니까 여성이 아이를 포기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거나 후회가 들어서 돌아가면, 홀트가 아동을 구매하기를 강요한다는 말씀이시죠.
피터: 네 그렇습니다.
카오미: 2012년에 아까 말씀하신 특별입양법이 제정되었는데요, 입양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잠시 요약하자면 특별입양법은
카오미: 입양인들이 친가족을 찾을 권리를 더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입양기관들은 이 법에 담긴 내용을 입양인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매우 보수적으로 해석했죠. 이렇게 정리하면 맞을까요?
피터: 네 매우 정확합니다. 2012년까지 입양산업은 완전히 무법지대였습니다. 입양기관들이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죠. 2012년 법 개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를 입양시키기 전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기자님도 저도 등록이 된 적이 없었죠. 출생등록이 안됐었어요. 고아호적, 고아가족문서가 있었을 뿐이죠. 2012년 법은 실제 아동의 프로필을 보호합니다. 그러니까 하룻밤 사이에 버려진 아동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없어진거죠. 덴마크 입양기관이랑 이야기하면 더 이상 버려진 아동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버려진 아동들이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는 고아가 엄청 많았었다가 갑자기 한 명도 없게 되었다는 걸 믿지 않습니다. 기자님과 저도 문서로 추적해보면 고아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피터: 의심할 것도 없습니다. 저희는 서류상 고아로 조작된 겁니다. 2012년 법으로 가능해진 건 버려진 아동이 있을 때 어쩐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아동을 돕기 위해, 여성을 돕기 위해 어떤 조치가 가능한지 설명합니다. 입양은 다른 가능성들이 없을 때 하는 가장 마지막 선택지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아이를 친척집으로 보내서 돌봄을 받게 하거나 위탁 가정에 임시적으로 맡겨서 입양 외의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이 때 바로 베이비박스가 갑자기 들어오게 된 겁니다. 기자님 말씀처럼 2012년 법은 실질적으로 아동을 보호하고 여성을 보호합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반대합니다. 여성에게 공공기관을 무시하고 다이렉트로 자신들에게 아이를 넘기라고 하죠. 그러면 아이의 기록이 완전히 삭제되고 아이는 보육원으로 보내집니다. 이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문서상으로 고아를 만들어냅니다.
카오미: 베이비박스가 한국에 몇 개나 있을까요?
피터: 두 곳에 있습니다. 한 곳은 서울, 한 곳은 부산이고 제주도에 3번째로 지으려고 하고 있어요. 금요일에 분영씨랑 한국입양홍보회의장과 같이 제주도로 내려갔었어요. 반대시위를 하려고요.
카오미: 베이비박스 찬성자들은, 한 분이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서울 아니면 부산에서 활동하는 목사인가요.
피터: 네네, 그룹 전체가 거기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그 교회에서 여러 대의 버스를 타고 왔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종교적 광신자입니다. 정말 종교적 광신자들이에요. 그들의 활동 구호는 ‘이름 없음, 수치 없음, 비난 없음’ 입니다.
카오미: 그러니까 그분들은 여성이나 젊은 남성 아니면 누가 되었든 문제를 일으킬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피터: 입양제도를 다시 시행시키려고 합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요. 실제로 그 과정도 단계별로 설명을 했는데요.
먼저 미혼여성의 아이를 찾은 다음, 그 아이의 모든 배경과 정체성을 삭제합니다. 이렇게 문서를 삭제함으로서 여성에게 도움을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의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삭제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죠. 그래야 여성이 삶을 다시 되찾는다는 거죠. 아이는 완전히 지워집니다. 아이의 배경까지도요.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들이 보육원에 입양을 위해 등록된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에 있는 보육원의 60%는 전부 베이비박스에서 옵니다. 아동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아동을 보육원에 데려다놓고 수거하는 거죠. 보육원을 아동으로 채워놓고 경찰서에 가서 아동들한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입양의 기회를 주는 게 맞다, 그러니까 앞뒤 따지지 말고 입양을 허락해달라고 하려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제주도에 온 겁니다.
카오미: 아 네, 그러니까 특별입양법이 시행되긴 했지만 베이비박스로 인해 아이들 정체성이 한마디로 세탁이 되는 셈이네요.
피터: 베이비박스는 불법입니다. 완전히 불법이죠. 2012년 특별법을 비롯해 아동을 보호하는 기타 사회적 법들도 모두 어겼습니다. 불법이라는 경고도 받았죠. 하지만 그 목사는 운영을 계속 하면서 종교적으로 광적인 발언들을 하고 있죠.
카오미: 강제로 문을 닫게 할 권한을 가진 주체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피터: 입양이 사랑의 행동이라고 부릅니다. 겉으로는 아동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아동인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분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도 했는데요, 스티브 모리슨씨였습니다. 미국 입양인인 그는 입양이 왜 훌륭한지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연사로 초대되었습니다. 자신이 집없이 떠돌이로 한국의 거리에서 생활했는데, 입양이 자신을 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스티븐 모리슨은 전쟁고아였다는 점입니다. 스티븐은 전쟁을 통해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문에 입양되었습니다. 저희가 입양되었을 때는 더 이상 전쟁이 입양의 역사에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전쟁 때문에 입양이 된 게 아니었고, 그는 전쟁으로 인해 입양이 된 거죠. 모리슨씨한테 당신이 불운하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낸 건 진심으로 안타깝지만 저를 포함해 수천명의 입양인들은 전쟁고아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입양되었을 당시 14살이었기 때문에 정말 입양인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았고 자신의 배경과 뿌리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의 정체성은 우리처럼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베이비박스 후원자이고 여러 미국을 비롯해 여러 백만장자들이 기관을 후원합니다.
카오미: 그렇다면 피터씨, 인종청소라는 개념과요, 정체성을 삭제한다, 완전히 없애버린다라는 것은요, 인권남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맞나요?
피터: 위법입니다. 문서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법을 어긴 겁니다. 불법입양의 첫번째 조건은 문서가 거짓되고 과정이 조작되었다는 겁니다.
카오미: 그러면 UN이나 다른 국제기구에 사례를 제출할 수 있나요
피터: 아동협약 조항 7과 8에 보면 아동인권가 언급되고 저희 같은 성인 (입양인) 에게도 이름에 대한 권리가 해당됩니다. 출생일자에 대한 권리, 출생등록에 대한 권리, 자신의 적힌 문서에 대한 권리,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 자신의 가족 배경을 알 권리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서의 조작이란 건, 입양기관은 일종의 법인 회사입니다. 사회복지기관보다 법인 회사라고 가정하고 접근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미국, 유럽 같은 서구에서 아동에 대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아만 원했는데요, 시장이 고아를 요구한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고아를 제공한 거죠. 아이들을 서류상 고아로 만드는 건 시장 수요의 논리입니다.
호주에서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호주사람들은 아동은 (가족등록내용이 담긴) 족보에 대한 권리가 있고 이름을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짜 이름과 부모를 알 권리를 주장했죠. 그래서 호주에서는 미국과 유럽시장과는 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호주로 입양된 아동은 가족에 대한 기록과 배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카오미: 아 네, 정말 공급과 수요가 있는 것처럼 들리네요.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을 하는거고 어떤 나라인지에 따라 그 이민법의 기준을 따라야 하고요, 미국 같은 경우는 국제입양을 하려면 중요한 조건 하나가 아동에게 살아있는 부모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피터: 정확합니다.
카오미: 그래서 입양이 되려면 고아가 되어야만 하는 거고요.
피터: 그래서 많은 입양인들이 입양 경로를 추적할 때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보육원을 문서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남광아동복지원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남광이 물론 복지원이기는 했고 아동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많은 입양인들은 가본적이 없습니다. 남광이나 다른 기관에 간 적이 없는 거죠. 하지만 문서상 고아임을 증명하기 위해 서명이 되어있죠. 실제로 입양기관의 서명에 대해 한국사회봉사회(KSS)가 입양 절차를 위해 배경정보를 조작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내용이 적힌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입양 절차를 위해 정보를 조작했다고요. 이후 부모에 대한 정보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자료위장을 인정한 사례가 있는 셈이죠.
카오미: 그러니까 한국사회봉사회(KSS)와 홀트는 아동의 출생가족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경우에도 두개의 문서를 만든 거지요? 하나는 빈 호적이고 다른 문서에는 진짜 정보를 넣고요.
피터: 증거들이 있습니다. 다음주에 제가 증언을 하게 되어있는데요. 입양인 중에는 출생가족이 등록을 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름이 있고, ID 번호가 있고, 제가 확인한 바 호적에도 부모의 이름과 아동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입양기관은 또 다른 호적을 만듭니다. 그래서 호적에 이미 등록이 되어있는데도 고아호적으로 등록이 다시 된 거죠. 이번주 수요일에 주민센터에 갈 예정인데요. 사실 저도 1달 전에 마포구 주민…
카오미: 주민센터요
피터: 네, 주민센터에서 제 문서에 대한 증언을 했습니다. 실제로 홀트를 통한 모든 입양인들의 문서가 마포구 주민센터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홀트 사무실에서 100m 떨어져 있습니다. 제 호적을 가지고 찾아가서 어떤 문서가 있는지를 물었는데요, 제가 알게 된 건 10년동안 한국 시민으로 지냈었다는 겁니다. 저희 부모님도 몰랐죠.
덴마크에서는 입양이 되면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됩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는 한 개의 시민권만 소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1975년에 덴마크 시민이 되었는데요. 대신 한국에서 저의 시민권 상태는 십년 뒤 박탈되었습니다. 친한 친구 중에 니아라는 덴마크 입양인이 있는데요, 그 친구랑 같은 센터에 갔더니 20년 동안 본인도 모른채 한국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이요. 많은 입양인들이 F4비자를 받으려면 이전에 한국 시민이었다는 걸 증명해야 되는데요. 대부분의 덴마크 입양인들은 본인이 아직 한국시민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지원합니다.
카오미: 그러면 피터씨가 입양되었을 때 부모님은 빈 호적(고아호적)에 대한 서류를 받은 건가요?
피터: 제 호적은 고아호적이었습니다. 제가 집안의 가장이고 부모님은 미상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알게된게, 저는 한국에 오는 입양인들에게 주민센터에 호적을 가져갈 것을 권합니다. 홀트가 여전히 호적을 변경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 문서는 1999년에 홀트가 변경하였습니다. 1984년이 아니라 1999년에 제 부모님에 대한 기록을 바꿉니다. 당시 제 양부모가 법적 보호자였기 때문에 홀트는 저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1999년에 저는 25살이었어요. 전 법적 관점으로 성인이었죠. 그런데도 법적으로 성인인 저를 대리해서 행동한 거죠. 제가 제 서류를 요청했더니 센터에서는 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저는 센터에서 제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긴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출생이 신고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호적만 있고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주민번호도 없이 10년 간 시민일 수 있었는지 물었는데요, 그들은 질문을 이해를 못했습니다. 대답을 할 수 없었죠. 그러니까 명백하게 국가의 역할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홀트를 통한 경우에 외교부가 서명한 여행 증명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보면 저희가 한국 시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서구 법원 문서에도, 가족법원 문서에도, 법무부 문서에서도 그렇습니다. 만약 문서가 가짜라면 어떻게 이 서류들에 도장이 찍혀있을 수 있죠? 2주 전쯤 된 거 같은데 부씨와 저는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씨는 제게 홀트 재단이 홀트 입양인의 80%에 대한 가족배경에 대한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80%요. 네. 그러니까 이게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사실 부씨는 제가 방문했을 때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것 처럼요. 그는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제가 그의 입양아동 중 한 명인 셈인거죠. 그는 굉장히 거만했고 자신이 한 일이 훌륭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혼혈아동에 대해 인종청소를 한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있어요.
카오미: 홀트가 입양한 입양인이요.
피터: 장애인과 갈색피부나 절반이 흑인인 아동을 모으러 다닌 이야기도 자랑합니다. 자기가 어떻게 그 제도를 구축했는지도 자랑합니다. 본인이 그 제도의 회장이었거든요. 그가 오기전에는 (홀트는) 직원이 12명인 작은 단체였다가 그가 온 이후로 마포구에 있는 빌딩을 사고 일산에 있는 산을 구매했습니다. 그는 아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수천명의 아동이죠. 어떻게 죽은 아동을 직접 수거해서 땅에 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카오미: 아동들이 어떻게 죽었나요?
피터: 좋은 질문입니다. 그는 당시 한국이 가난했고 사람들이 나쁜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1980년대 홀트 기관에서 지냈던 해외입양인들의 증언자료를 갖고 있는데요, 1988년까지의 기록이 있어요. 당시에 한국은 저개발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입양인들은 홀트에 먹을 것이 부족했고 아동이 지내기에 부적절한 아주 더러운 곳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 생각엔, 베르타 홀트의 일기에 보면 해리 홀트가 돈을 아끼기 위해 19명의 간호사를 해고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히려 (홀트가) 회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죠.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신 아동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최저예산을 이 일에 투입한거죠. 저희는 수백만명의 입양을 결심한 부모들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를 밝혀내려고 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아동에게 담요와 음식을 주기위해서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제가 확신합니다.
카오미: 돈의 경로를 추적하려고 하시는군요. 어디로 갔는지.
피터: 네, 그렇습니다.
카오미: 피터씨, 왜 부씨가 당신의 인터뷰와 언론공개에 응했다고 생각하세요? 왜 당신과의 대화에 동의했을까요?
피터: 왜냐하면 제가 홀트 입양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직접 제게 말하기를 제가 홀트 입양인이기 때문에 언제나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굉장히 굉장히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카오미: 이야기하는 것에도 동의했구요.
피터: 언론의 관심도 반겼습니다.
카오미: 그는 본인이 원치 않는 아동을 보내 버림으로써 나라를 위한 일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군요.
피터: 네 100% 확신합니다.
카오미: 놀랍네요.
피터: 아동을 부를 때 굉장히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을 부를 때도 양키 공주라고 불렀습니다.
카오미: 부씨의 나이가 몇 살이라고 추측하세요?
피터: 여든 정도 된 것 같아요. 저한테 29세에 홀트의 기관장이 되었다고 했어요. 그는 당시 기관장이었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젊고 혈기왕성한 청년이 홀트에 와서 기관장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이디어들이 많았겠죠. 그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전세계를 여행했다고 하는 걸 보면. 덴마크에서 돈을 많이 기부해서 덴마크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가 실제로 한 말입니다. 일산에 가면 덴마크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일산시 전체에 덴마크 거리를 가리키는 표시들이 있습니다.
카오미: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사회 전반적으로 조작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피터: 틀림없습니다. 위원회에 그대로 전할 겁니다. 정부가 아주 깊게 관여했다는 증거문서들도 찾았습니다. 당시 한국정부조직 내에 사회적 정화를 집행하는 공식적 주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조직에서 두 명이 홀트로 발령받았죠. 처음에 사회적 정화제도는 정부의 대한사회복지회(SWS)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민간 사업이 되었죠. 하지만 대한사회복지가 만들어진 명목은 사회적 정화를 이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일하던 네덜란드인 전직원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한국과의 협력을 멈출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인종청소이기 때문입니다. 혼혈아동에 대한 조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카오미: 피터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정리사위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피터: 가장 중요한 목표는 모든 입양인들이 진실되고 왜곡되지 않은 문서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 문서들은 기관들로부터 회부되어 중립적인 장소에서 보관되어야 합니다.
입양기관들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입양인들이 배경정보 확인을 위해 지원할 수 있어야 하고 가족찾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이 담긴 입양문서에 대한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입양기관 관리 하에 정확히 몇 명의 아동이 죽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 아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이 아동들은 한국에서 입양국가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사망했습니다. 비행이 당시에는 더 힘들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파리에 도착해서 처리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동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밝히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희생자입니다. 한국전쟁박물관에 가면 전쟁으로부터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처럼, 희생자들의 이름이 담긴 추모비가 필요합니다.
한국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처럼 똑같이 추모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보상과 회복이 중요합니다. 성적남용과 관련된 사례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입양인이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모든 일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이 강제로 분리당한 날을 기억했는데요 엄마와 시천시에 장에 갔는데 어떤 모르는 남성이 자신을 납치했고 며칠 간 홀트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미국에 왔다고 했습니다. 도착한 두 번째 날 그는 성적으로 남용을 당했습니다. 그가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때까지 6년 간 이 일이 지속되었습니다. 점점 더 이런 성적 남용 관련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고 전부 홀트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희 조직의 추측으로는 홀트 내부에 소아성애 조직을 돕는 인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한 입양인 여성에 따르면 홀트 기관의 직원으로부터 성적 남용을 당했다고 합니다. 퍼즐조각 맞추기와 비슷합니다. 위원회에 홀트 내부적으로 소아성애 조직에 아동을 제공한 인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병원에서나 다른 곳에서 납치되어 입양이 된 분들은 회복을 위한 특별권리가 필요합니다.
이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홀트 내에서나 다른 홀트 기관에서 아니면 입양국가에서 성적 남용을 당한 사례를 알고 있다면 위원회에 (자료로) 제출할 수 있도록 공개할 것을 요청합니다. 홀트나 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를 살아있다면 찾아낼 거고 이 일을 위한 자금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카오미: 입양인들이 사례를 접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피터: 덴마크한국지부를 통해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웹사이트가 있고요. 영어로 된 1장 안내문이 있습니다. 주소는 danishkorean.dk/dkrg입니다. 제 이메일 주소도 여기 나와있으니 제게 이메일을 주시면 됩니다.
카오미: 다시 한번 제가 말해볼게요. 웹사이트 주소가 Danishkorean.dk/dkrg였죠. 이메일 주소도 말씀해주시겠어요?
피터: 네 peter.moller@danishkorean.dk 입니다.
카오미: 이름 철자를 한 번 더 불러주시겠어요.
피터: 아, 아니면 info@daniskorean.dk 로 보내도 됩니다.
카오미: 피터씨가 하고 계신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으로무언으로 지지를 보내고 당신의 일을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 아주 많습니다. 이제 피터씨 개인에 대한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카오미: 지금 하고 계신 일이 아마 생애 전반에 걸쳐 해야 할 정도의 일로 느껴집니다. 어떻게 사례들을 조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셨고, 피터씨께는 이 일이 왜 중요한가요?
피터: 사실 이 일은 이제 시작하는 일입니다. 저는 평범한 덴마크의 시민으로 출퇴근하는 직업이 있고 가정도 있어요.
카오미: 네
피터: 지난 5-10년 동안 덴마크의 입양인들은 서로 강한 연대를 다져왔습니다. 자주 만나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한가지 발견한 이상한 점은 저희의 사연이 거의 똑같다는 겁니다. 문턱에서 발견이 되어서 경찰서에 넘겨졌다는 그런 이야기요. 길가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어 홀트나 다른 기관 같은데에 데려다져서 입양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면 아마도 1970년대를 상상해보면, 전 1974년생인데요, 서울 길거리가 아이를 담은 바구니로 넘쳤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학적으로만 봐도 앞뒤가 안 맞았어요. 불가능한 이야기죠. 그래서 올해부터 이걸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3-4월에 시작했고 6월부터 덴마크에 있는 한국입양인들로부터 증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피터: 고아였던 이들은 한국에서 모두 가족을 찾은 상태였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문서들도 살펴보니 비슷했습니다. 이게 진실일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저희는 문서가 조작되었다는 전제 하에 사례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한국 정부도 어떤 형태로 개입을 했으며 그 와중에 일들이 터졌다고 가정했습니다. 2달 전만해도 소아성애 사례를 제가 조사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아동을 대상으로 가한 조직화된 성적 남용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들도 제게 편지를 보내왔는데요, 비입양인이기 때문에 이 사건과 관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의 편지는 자신의 (입양된) 형제자매를 찾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형제자매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기를 찾으러 와보니 홀트가 도둑질해 간 상태였죠.
피터: 홀트가 훔쳐간거죠. 당시 1970년대에는 만약 모친이 자발적으로 이를 허락하는 경우에는 포기각서를 써야했습니다. 저희는 홀트로부터 포기각서 문서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는데, 제게 보여준 건 보육원과 홀트 사이에 체결된 포기 문서였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포기각서 작성이 의무였습니다.
피터: 홀트가 이 포기각서를 보여줄 수 없다면 입양이 불법이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양시키기도 쉬웠던거죠. 아이를 입양하려면 아주 많은 문서작성이 필요합니다. 홀트는 이걸 하기 싫어했죠. 그래서 한국사회봉사회가 사례를 모두 조작한 겁니다. 입양하기 위해 문서들을 다 만들어냈는데 이런, 아이가 죽어버립니다. 어떡하죠? 다른 아동을 죽은 아동의 대리로 보냅니다. 입양인들이 서로 뒤바뀐거죠. 40세가 넘은 한 덴마크 입양인은 본인이 서류상 등록된 입양아동이 아니었다는 걸 모르고 지냈습니다. 한 덴마크 입양인 여성은 제게 말하기를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보내졌다는 걸 알고나니 텅 빈 조개 같은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진실된 정체성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카오미: 지금 말씀하신 불법적으로 위장 입양이 조직된 게 사실이라면,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에는 꽤 많은 고위 관직자들이 개입했을 거라고 보는데요, 피터씨의 활동이 그런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라고 예상하시나요?
피터: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21일 다음주 금요일에 국회가 저를 초청해서 발언을 하러 갑니다. 국무총리와 국회의원들 앞에서 발언을 할 예정입니다. 힘이 많은 사람들이죠. 국무총리로부터 국회에서 발언요청을 받았으니, 저를 초청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저를 실제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제 발언을 홀트가 약간 불편해할 수 있을 것 같고 한국사회봉사회가 약간 불편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편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동을 훔치거나 남용하면 그건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홀트는 규명해야 할 사안들이 많지만 입양이 사랑이라는 둥 광적인 기독교적 헛소리만 합니다.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홀트는 피터 뮐러씨에게 어머니를 찾아주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제가 어머니를 찾지 못해 화가 난 사람처럼 만들죠. 근데 저는 제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입양인들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카오미: 피터씨가 생각하기에는 입양사례들이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피터: 한국이 공소시효기간이 10년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9월 29일에 UN 인권위원회가 저희 사례를 지지하면서 정부의 독립적인 진상규명 활동을 허락하고 촉구하고 자료조작을 기소할 것을 요청하는 합동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엔 가입국가들이 이런 사례를 기소 및 처벌하라는 요청도 있습니다. 제가 사는 덴마크에서는 살인은 공소시효 제한이 없습니다. 50년 전에 누군가를 죽였다고 해도 오늘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살인도 공소시효 기간이 10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홀트와 한국사회봉사회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전세계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홀트가 지금도 그런 일을 계속 하고 있다면 그 직원들은 감옥에 가야 할 것입니다.
카오미: 정체성 삭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아까 그건 인종청소와 다를 바 없다고 하셨죠. 사람들이 사라지게 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살해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피터: 네, 스티브 모리슨씨와 베이비박스 지지자들이 지난 금요일에 저한테 해준 말이 있는데요, 법과 인권, 아동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법과 인권은 제2순위라고 했습니다. 법과 인권이 2순위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건 베이비박스입니다.
베이비박스는 홀트가 5-60년 전에 한 일을 반복하고 있어요. 다른 경로를 통해 다시 입양을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매우 종교적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베이비박스 지지자들은 종교적 광신자입니다. 너무 광적으로 종교에 몰입하면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정치화 됩니다. 그들은 제게 인권과 법을 잊으라고 했습니다. 신이 가장 높은 권력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두머리라고요. 그들은 자신이 신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일을 할 때는 인권과 법이 제2순위가 됩니다. 그들이 제게 해준 말입니다.
카오미: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의 말이군요.
피터: 홀트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중요한 건 홀트도 기독교 단체입니다, 굉장히 종교적인 단체입니다. 홀트도 법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하고싶은 걸 하는 거죠. 하고싶은 걸 합니다. 종교 광신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에 어디가 또 있을까요? 입양 영역에서 아동에게 일어나는 이 일은 알카에다가 상징하는 바에도 비유될 수도 있습니다.
알카에다는 사람과 집과 빌딩과 자동차를 폭파시키죠. 종교적 광신자들은 한국에 있는 사회적 제도와 아동을 보호하는 법과 규칙을 폭파시킵니다.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종교가 광적이 되면 정치화되는데 굉장히 우려가 되는 일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없애고 싶은 법 조항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피터: 전세계에 저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입양은 입양되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입양은 한가지의 현상이 아닙니다. 입양에는 굉장히 많은 과정들이 포함됩니다. 너무 다양해서 같은 사연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희는 모두 각자 개개인입니다. 홀트와 한국사회봉사회와 입양기관들이 저희에게 어떤 일을 했는가를 알려야 합니다. 며칠 전에 한 입양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 여성은 제게 자살시도를 여러 번 했다고 했습니다.
13살 때쯤 되었을 때 자살을 하려고 했었고 그 이후에도 몇 번 했다고 했어요. 그 여성은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70세의 푸른 눈에 금발 여성인데, 거울을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고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많은 입양인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입양인들은 제게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굉장히 사적인 사연을 보내옵니다. 전세계 입양인들로부터 매일 4통에서 600통의 이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카오미: 정말 놀랍네요. 더 놀라운 건 피터씨의 헌신입니다. 기부를 받으시나요? 어떤 분들은 돕고 싶어하실 거 같은데요.
피터: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만약 기부하기를 원하시면 한국미혼모가족협회(KUMFA)에 하시거나 아니면 제주도에 있는 여성쉼터에 하시기를 바랍니다. 굉장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하시는 일은 한국아이들을 베이비박스 광신자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입니다. 한국의 아동을 위해 나서는 일은 저희가 입양되었을 당시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카오미: 많은 입양인들이 입양기관이나 보육시설로부터 입양문서가 타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요.
피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문서는 탄 적이 없어요. 저희는 그 문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