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 에피소드 20: 재클린 웰스

Audio available March 30, 2021 at 7 am ET.

한국계 미국인 입양아 재클린 웰스 (33세), 한국 이름 최예나 씨는 음악가, 장신구 디자이너, 한국계 입양아 사회 지도자의 삶에 대한 정보를 인터뷰를 통해 공유한다. 재클린 씨의 삶에 관한 이야기와 한국 가족과의 재회, 모든 사건에 대한 감상을 들어보자. 

재클린: 제 이름은 재클린 웰스입니다.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고 매사추세츠주 출신이죠. 한국 이름은 최예나에요. 장신구 디자이너 겸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입양아 단체인 Also-Know-As(AKA)의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현재 33세예요. 제가 19살일 때 제 수양 가족과 고국 순방 계획을 통해서 한국에 방문할 수 있었죠. 최초로 많은 한국계 입양아들을 만났고 같이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사회복지사가 만났고 데브라가 그중 하나였어요. 데브라와 제 양부모님이 제 친어머니를 찾아보라고 권유했죠. 대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고 데브라와 같이 편지를 작성하고 번역해서 제 사진, 가족 사진, 친구들 사진을 첨부해서 보냈어요. 주변 사람들이 연락이 온다면 좋겠지만 못 받을지도 모르니 희망을 걸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저는 19살이었고, 매우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죠. 제 아시아계 정체성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살 청춘일 때 삶은 복잡하고, 전 정체성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래도 지금의 저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은 누구였나요? 19살 때 주로 들은 음악가들은 누구였죠? 

재클린: 이모(EMO)계나 하드코어계 음악에 빠져있었죠. 피오나 애플, 라디오헤드, 포셀린 포어헤드, 데스캣 등의 밴드를 가장 즐겨 들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한 밴드는 브라이트 아이즈였습니다. 우울한 분위기가 드는 음악이라면 다 좋아했죠. 유명한 밴드 중심으로 들었던 것 같아요. 음악은 저에게 인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대학교에서 음악 전공이었어요.

팟캐스트: 현재는 밝은 성격인데 청소년기에는 꽤 우울한 성격이셨나요?

재클린: 젊었을 때도 밝은 성격이었지만 외양적으로는 EMO였다고 봅니다. 적어도 3년 동안은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녔죠. 물론 지금도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니긴 하지만, 이건 실용성의 문제지 취향의 문제는 아닙니다

팟캐스트: 고수(Goth, 미국의 패션 유행 중 하나)셨나요?

재클린 : 고스보다는 EMO에 더 가까웠어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시절 매사추세츠 출신이라면 차이점을 알죠. 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설명하자면 고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사악하게 좋네! (wicked good!) 같은 단어도 사용하셨나요?

재클린: 전 사악하다는 말을 평범하게 사용해요.

팟캐스트: 아주 흥미롭네요. 한국 여행에서 양부모님이 친부모 조사에 더 적극적이셨다고 하셨죠?

재클린: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왔으면 친부모 조사를 진행해보자! 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제 부모님은 좀 더 나이가 많으시니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셨죠. 하지만 전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다른 입양아들과 달리 친어머니 조사 자체를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입양아 대부분과는 달리 친부모 조사와 친부모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친부모 조사는 되면 좋지만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죠.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제 삶을 바꾼 아주 중요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때는 친부모 조사의 의미 자체를 잘 몰랐고, 지금도 저에게 직접 중요한 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팟캐스트: 제가 보기에는 재클린 씨와 양부모님의 관계가 아주 가까워 보였습니다. 많은 입양아는 자신의 삶에서 뭔가 부족해서 친부모 조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재클린 씨는 그러한 부족함이 없어서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재클린: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친어머니에게서 한국어로 된 답장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제가 어디에서 왔고 왜 저를 입양 제도에 맡겼는지 이야기가 적혀 있었어요. 저에 대한 아주 좋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고 저에게 가족사진도 보내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에 관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나기는 어렵다고 연락을 해왔죠. 어머니가 이야기를 공유할 정도로 편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아서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했죠. 사진을 받을 수 받아서 기뻤습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느꼈습니다. 오 이 사진들 대단하네. 하지만 어머니가 만나고 싶지 않다니 별수 없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랬죠. 주변 사람들이 절 보고 화나지 않았는지 걱정했지만 전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왜 화나지 않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팟캐스트: 사진을 보니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재클린: 가족이 전부 저와 닮았더군요. 특히 형제들은 그렇죠. 제 두 남동생은 저보다 5살에서 7살 어린데 쌍둥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진을 받았을 때는 12살이었고, 그 애들은 19살이었지만 둘 다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팟캐스트: 잠깐만요, 가족이 전부 있었는데도 재클린 씨가 입양되었다고요?

재클린: 나중에 더 많은 정보를 받았지만 제가 처음으로 받은 정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 서로를 만나서 사귀게 되었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키웠다고 해요. 그리고 제 친아버지가 군대에 입대했죠. 친아버지가 입대하고 난 뒤에 친어머니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낙태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죠. 적어도 제가 들은 이야기는 그래요. 하지만 친어머니가 낙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낳기로 한 뒤에 친아버지를 면회하러 갈 때 긴 코트 등을 입어서 임신 여부를 숨겼다고 하더군요. 친어머니가 말랐기 때문에 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하죠. 처음부터 친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친어머니가 저를 낳은 뒤 2일 만에 제가 입양 제도에 맡겨졌죠. 친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있던 2일 동안 제가 입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팟캐스트: 지금은 아버지가 재클린 씨의 입양에 대해서 알지만, 친어머니가 친아버지에게는 나중에 알려주신 모양이군요?

재클린: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무도 몰랐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숨겼군요?

재클린: 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숨겼다고 합니다. 

팟캐스트: 재클린 씨를 낙태할 예정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겠네요?

재클린: 이런 상황이나 다른 상황에서 저는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해요.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친어머니 입장이었다면 저도 낙태를 하려고 했을 겁니다. 19살 미혼에 교제하고 있는 남자를 믿지 못한다면 저도 낙태를 하려고 했겠죠. 친어머니를 이해합니다. 특히 한국이라면 더더욱 그래요. 나중에 아버지가 그 낙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자 그 이야기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죠. 아버지도 19살 미혼에 군대에 징병 되어 있고 거기에 양가 부모님의 반대까지 있었으니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인 반응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저는 두 분을 잘 알지 못하거든요.

팟캐스트: 거기에 임신 사실이 알려졌다면 양가 부모님이 둘을 갈라놨을지도 모르고요.

재클린: 그렇죠. 어머니가 임신을 지속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봐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죠. 저를 입양 제도에 맡겨서 큰 죄책감을 느끼고 사셨다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그 사실이 어머니를 괴롭혀 왔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제 남동생도 저에게 어머니가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모두 어머니가 아주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왜 그런지 몰랐죠. 어머니는 술·담배를 안 하십니다. 반면에 제 친아버지는 소주 두 병 마시는 애주가에 애연가예요. 어머니가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죄책감에 종교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았죠. 다른 문제는 어머니와 호텔에서 최초로 만났을 때 어머니는 제가 분노로 차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대중매체가 입양아를 묘사할 때 입양아들을 분노에 가득 차 있고 복수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로 묘사한다고 어머니가 이야기해줬어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죠. 하지만 어머니가 그러한 이유로 저를 만나기 무서워했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팟캐스트: 입양아들이 한국 대중매체에서 살인범같이 묘사된다는 말인가요? 한국에 돌아와서 가족을 찾아내려고 하니까요?

재클린: 어머니가 대중매체, 특히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는데 거기 나오는 입양아들 대부분이 분노하고 성격도 어두웠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화가 많이 난 적도 있고 성격도 어두웠던 적이 있죠. 하지만 친어머니를 상대로 분노한 적은 없어요. 어떤 사람들이든 분노하고 어두울 수 있죠. 제 남동생들도 힙합을 좋아하고 1명은 문신도 하고 있는데도 입양아는 아니니까요. 어쨌든 결론만 이야기하면 종교가 확실히 영향을 끼쳤고 만약에 어머니가 저를 계속 데리고 계셨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친어머니가 생각해보셨는데 아주 힘든 삶이 예상되었다고 하셨죠. 돈도 없고, 미혼모, 아버지와의 관계도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가난과 한국이라는 배경까지 있었죠.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그리고 한국 방문 이후에 미국에 돌아와서 음악계에 입문했나요?

재클린: 네. 저는 3살 때부터 음악에 심취해 있었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음악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300명 정도의 아이들과 함께 음악 수업을 받았고, 제 삶의 일부였죠. 오히려 제 여행 이후에 음악을 잃었어요. 여행 때문이 아니라 여행 이후 대학 생활이 매우 백인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에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죠. 제가 젊기도 했고 그때는 아직 사람들에게 문화적 존중이나 자각이 부족했어요. 요가를 배우거나,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문화가 전혀 없었죠. 그런 쪽에 관심이 있어서 사람들이 직접 찾아보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하기 바빴고, 제가 사귀는 친구들은 삶을 최대한 즐기면서 살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대학교 경험 자체가 길을 잃은 느낌이었죠. 음악을 조금 하긴 했지만,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저 자신을 잃어버렸고 지금까지 저 자신을 다시 찾아내려고 노력해온 느낌입니다. 친구 몇 명이 자기 자신을 관리하지 않고 막 놀았어요. 노스이스턴대학교(보스턴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좋은 대학교이긴 했지만, 음악 전공이라 그렇게 학점 따기는 어렵지 않았죠. 그런 대학교에 다닐 수 있어서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대학교에 다닐 수 있어서 부끄럽죠. 

팟캐스트: 삶을 최대한 즐기면서 사셨군요?

재클린: 좋게 즐기지는 않았지만, 네. 확실히 삶을 즐기면서 살았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 자신이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재클린: 네 그렇죠. 이유는 모르지만 제 내부에 EMO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당연히 그렇지 않았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제 삶의 대부분 동안 저는 사악하게 빛나면서 동시에 사악하게 어두웠다고 생각해요. 행복하고 밝은 면을 가지면서 동시에 어두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재치가 넘치고, 아름다운데 남자애들이 아주 재클린 씨를 좋아했겠군요?

재클린: 아뇨.

팟캐스트: 이성 교제와 관련된 질문인데, 그 시기에 남자애들에게 관심이 있었나요? 교제는 자주 하셨나요?

재클린: 우리가 친구라서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전 사랑 자체를 좋아해요. 실연, 아름다움, 강렬함, 짝사랑 등 사랑의 모든 부분을 좋아하죠. 전 사랑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강렬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만 그렇게 느낀다고 해도, 누구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느낌은 예술가, 음악가, EMO에게는 놀랍고 찾기 어려운 감정이죠. 동시에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일은 몹시 어렵지만 다양한 일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사랑에 매료되었고 관련 음악에도 끌렸습니다. 

팟캐스트: 짝사랑이나 사랑 자체를 하는 일에 중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재클린: 네 확실히 사랑에 미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현재는 제 과거와 현재의 괴리가 깊어졌어요. 과거와 지금의 저는 다릅니다. 물론 전부 제 일부이고 제 과거를 없애는 일은 아니지만, 제가 바뀌고 발전했죠. 모두가 그렇게 변화하지만 전 지난 몇 년 동안 바뀌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를 통해서 배우려고 했어요. 대학교 때는 어렸고 주변 사람들을 따라 바뀌었죠. 그래서 주변의 변화에 따라 자기 자신을 맡기니 이상한 인간관계에 휘말렸습니다. 지금은 제가 어떤 변화를 할지 직접 정해요. 그래서 휘말리지 않고 목적을 가지고 살죠. 제가 가장 처음 데이트를 했던 때는 13살,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저에 대한 많은 요소가 바뀌었는데, 흥미롭게도 저는 여전히 고향 마을의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전 20살 때까지 계속 같은 마을에서 살았죠. 

-재클린의 음악-

팟캐스트: 입양아들은 백인 지역에서 자라나면 아시아계라서 맞아 들어가지 않거나 차별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죠. 재클린 씨도 그렇게 느꼈나요, 아니면 사람들의 일부로 맞아 들어간다고 느끼셨나요?

재클린: 우선 가장 마지막 질문부터 답하자면, 제가 6학년부터 고등학교, 대학교부터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바뀌어 왔습니다. 제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니 지금 질문과도 연관이 있어요. 제가 자라면서 살던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아시아계로서 제가 다르다는 사실을 6학년 때 알았습니다. 제 차이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6학년은 사랑과 연관된 시기였죠. 남자애들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 애들은 백인 여자애들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절 좋아해 주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전 한 남자애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 남자애는 제가 4학년 때 제 가장 친한 친구를 좋아한다고 저에게 이야기했죠. 귀여운 백인 여자애였는데, 사실 아직도 친한 친구입니다. 우리가 그 애에게 학교에서 저와 제 친구 중 누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고 생각해보고 전화해 달라고 했죠. 그 애가 우리에게 동시에 전화해서 제 친구가 좋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걸 듣고 나니 제가 아시아계라서 거절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가 아시아계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제가 아시아계라 다른 여자애들만큼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8살에서 10살 사이였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사실 인종 문제도 아니었지만 전 오랫동안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울했지만 그렇게 우울할 일도 아니었죠. 어렸을 때의 경험이라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국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몸에서 땀이 나고는 했어요. 6학년 때는 매우 소심했죠. 하지만 제가 중학교 3학년이 되니 무언가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페티쉬적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정체성 자체에 오랫동안 널 사랑해 줄게- 이라는 식으로 성적인 의미가 부여되었죠.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교 3학년 이후로 제 아시아계 정체성에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아시아계 학우들이 더 많이 늘어났죠.

팟캐스트: 청소년기에는 이런 성적 신호에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재클린: 그러한 표시가 어떤 뜻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때는 인식 자체가 어려웠죠. 미투 운동 이전이었고, 인종 차별 인식 운동도 없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난주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 이후로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는 돌과 같이 그러한 탈의실에서 주고받는 농담에서 시작해서 실제로 일어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았죠.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할 뿐만 아니라 아주 무례한 일입니다. 칭찬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죠. 그렇게 시작해서 비인간적 취급으로 진행하다가 살인으로 발전합니다. 물론 제가 이러한 주제에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인종 차별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아주 힘든 한주였어요.

팟캐스트: 재클린 씨가 교제했던 남자들의 변화를 보면 재클린 씨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게 재클린 씨가 하고 싶었던 말인가요?

재클린: 네 저와 제가 만나는 남자는 같이 변화했죠. 현재는 교제 자체가 줄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대학교 때에는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다녔어요. 지금은 제가 아주 마음에 든 사람이 아니면 교제 자체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제가 교제할 상대의 진실함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좋은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같은 목적으로 만나는지도 확인하죠. 전 지금 33세니까요. 21세일 때 마냥 행동할 수 없습니다.

팟캐스트: 그렇죠. 다른 질문이 있는데 음악을 다시 시작하신 때가 언제였나요?

재클린: 딱히 음악을 그만뒀던 적은 없어요. 항상 음악과 함께했죠. 하지만 파도와 같이 음악도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친어머니나 친가족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신 적이 있나요? 어떤 음악을 작곡하셨고, 하시고 싶으셨죠?

재클린: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제 친어머니를 위해서 “웃음(Laugh)”이라는 노래를 작곡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곡 자체는 제 생각이 아니었어요. 이희선 씨의 생각이었죠. 희선 씨는 3개의 구절을 작성해왔습니다. 하나는 길을 잃은 입양아 래퍼의 관점, 두 번째 구절은 친어머니의 관점, 그리고 3번째 구절은 양어머니의 관점을 반영하는 가사였죠. 희선 씨가 이 구절을 위한 후크를 써줄 수 있냐고 했죠. 후크는 구절들 사이에 들어가는 후렴구인데, 저한테 8마디에서 16마디 정도의 후크를 써서 이 세 목소리를 묶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걸 듣고 나니 아주 기본적인 해답이 떠올랐죠. 말로 하면 그렇게 멋져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입니다. 그 셋은 전부 사랑, 이해, 속죄를 원하니까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후크를 쓰는 일틐 아주 쉬웠습니다. 아주 빠르게 작성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사랑으로 노래가 마무리되어서 슬픔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노래 웃음(Laugh)-

재클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예요. 제가 작곡한 노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 중 하나이죠. 희선 씨가 쓰자고 한 노래였지만 아주 대단한 노래라, 제 친어머니에게 이 노래를 들려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셨거든요.

-노래 웃음(Laugh)-

팟캐스트: 왜 친어머니에 대한, 아니면 친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작곡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많은 입양아 음악가들이 한번은 다루는 주제인데 말이죠.

재클린: 우리가 이미 이야기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번 말했지만 저는 친어머니에 대한 큰 갈망이 없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노래를 쓰고 싶다는 갈망이 없었죠. 2번째 이유는 제가 주로 쓰던 음악은 사랑 노래이거나 실연 노래였습니다. 둘 다 제가 쓰기 좋아하는 주제이죠. 많은 사람이 제 우울한 노래들만 듣고, 제가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 아는 사람들은 제가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밝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죠. 전 음악가가 노래를 만들 때 자신의 시간 중 일부를 꺼내서 만든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죠. 전 노래를 작곡할 때 한 시간 이내로 작곡합니다. 제 노래는 제 모든 면모를 드러내지 않죠. 자아 성찰이나 제 일부가 담기게 되고, 슬픔과 음악은 서로 함께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슬플 때는 음악과 함께하고, 제가 슬프면 슬픈 음악을 작곡하게 됩니다. 제가 행복할 때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죠. 집에서 울면서 피아노 음악을 작곡하고 싶지는 않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양부모님과 관계는 어떻죠?

재클린: 부모님과 관계는 아주 친밀해요. 제 청소년기에 두 분이 이혼하셨고, 그때는 지금과 같이 친밀하지 않았죠. 물론 그때도 친밀하긴 했지만 전 반항아였고, 부모님에게 화도 자주 냈습니다. 제가 바뀌었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청소년기에는 말썽꾸러기였어요. 

팟캐스트: 그리고 양부모님의 친자식인 오빠가 있죠?

재클린: 남동생이에요. 그리고 그 애는 순하고 좋은 애입니다. 

팟캐스트: 그리고 그 애는 입양아가 아니고요?

재클린: 네. 백인 남동생이죠. #Whitebrother인 셈이죠

팟캐스트: #Whitebrother라니.

재클린: 제 친구들이 사용하는 은어예요. 4년 전 남동생에게 제가 방해되지 않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죠. 제가 더 많이 관심을 받거나, 빼앗았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남동생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제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제가 청소년일 때 여러 가지 문제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제 남동생은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죠. 부모님이 현명하게 대처하셨습니다. 어떤 아이를 선호한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고 우리를 공평하게 대해줘서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물론 형제자매가 더 많았다면 상황이 달랐을 겁니다. 아마 부모님의 가족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겨서 자기 자식들에게는 그런 경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삶에 대해서 배운 일 중 상당수는 제 부모님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각이 있었죠. 예를 들면, 제 입양아 친구나 입양아 사회에서는 부모가 입양아를 백인처럼 대하면서 인종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죠. 하지만 제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날에는 제 친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친어머니의 용기와 대단함에 관해서 이야기하자고 하셨죠. 한국 음식을 먹으러 자주 다니기도 했고, 한국 문화 학교에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활동을 싫어하긴 했지만, 부모님께서 노력하셨다는 점이 중요하죠. 부모님이 완벽하지 않지만, 제가 다른 입양아들과 다른 경험을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도 입양된 뒤에 양부모님이 친자식을 가시셨죠. 그분들이 왜 입양을 하려고 했는지 이야기해줬나요?

재클린: 네. 왜 입양하려고 하셨는지 이야기해줬죠. 어머니가 난임이었든요. 그래서 입양을 하려고 하셨고, 2번째 입양을 한국에서 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도중에 어머니가 제 남동생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셨죠. 그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부모님은 한국에서 애를 입양하고 동시에 남동생도 낳으시려고 했지만, 입양 기관에서 입양을 거절했습니다. 모든 관심이 한 아이에게 집중되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죠. 부모님은 그 사실에 슬퍼하셨습니다. 

팟캐스트: 친어머니에게 거리를 두는 느낌인데 양어머니에게 미안해서 그러신 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재클린: 아뇨. 그렇다면 적어도 말은 되겠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 친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팟캐스트: 아 확실히 양부모님이 관련 정보 조사를 항상 지지해줬다고 하셨죠? 

재클린: 단순한 지지만이 아니라 제 친어머니를 초대해서 같이 지내려고 하셨어요. 제 양부모님이 자각을 가지고 지지를 해줘서 그분들에게 분노하지 않았죠. 그분들에게 항상 제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어렸을 때 제 부모님이 저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한 느낌이 있긴 했죠. 우리 아시아 애가 피아노나 축구를 하는 모습을 봐- 이런 느낌이었지만, 제가 반발해서 멈췄습니다. 양부모님은 아시아계 아이를 백인 위주 사회에 데리고 오는 일의 무게를 자각하지 못했고, 알았다면 좀 더 아시아계가 많은 곳으로 이사를 하였을 거라고 저에게 사과하시죠. 저는 그 말에 부모님이 몰랐고, 최선을 다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드려요. 물론 제가 성장할 때 다른 아시아계 사람들을 봤다면 좀 더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었을 겁니다.

팟캐스트: 부모님에 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재클린: 제 아버지는 지금 유타주에 거주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메인주에 살고 계시죠. 그래서 사람들이 제가 메인 출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향 방문할 때는 메인으로 돌아가니까요. 둘 다 매우 밝은 사람들입니다. 매우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죠. 두 분의 성격은 다르지만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셔요. 제 어머니는 부끄러움이 많은 내향적 성격이고 반대로 제 아버지는 외향적인 사람입니다. 파티도 좋아하고 주변 분위기를 잘 아시죠. 누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가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도 같이 잘 지낼 수 있어요. 제 부모님 둘 다 매우 자유주의적이시죠. 어머니는 거의 사회주의자나 다름없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봉사활동과 관련되어 있었어요. 그렇게 종교적이지는 않았고 히피와 비슷한 느낌으로 생활했습니다. 두 분은 서로 싫어할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친구로 남았죠. 그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선한 일을 하고, 서로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더라도 사실을 이야기하는 일을 배웠습니다. 두 분 다 저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두 부모님에게 여러 가지 면모를 배우셨지만, 아버지 쪽을 많이 닮으신 것 같네요.

재클린: 네. 확실히 외양적으로는 아버지와 많이 닮았죠. 사실 내부적으로도 그럴지도 몰라요. 아주 깊이가 있는 분이죠. 겉에서만 봐서는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전 이미 죽었을 겁니다. 제 목숨을 수십 번이나 구해 주셨죠. 어머니가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의 삶을 찾아냈다고 생각해요. 그 이전에는 저와 제 남동생을 양육하는 데 신경을 쓰셨습니다. 어머니의 삶에 있어서 양육에 집중하는 생활은 좋지 않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좋았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가 저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머니의 지지를 통해서 버틸 수 있었죠. 전 한 10년 정도 그렇게 좋은 생활을 하지 못했는데, 그런 저를 어머니가 도와줬고, 그래서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광고

팟캐스트: 재클린 씨와 2016년에 개최된 모임에서 처음 만났죠. 그때 서로 마음이 맞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서로 만날 때마다 마음이 맞았다고 생각해요.

재클린: 카오미 씨(팟캐스트 진행자)가 웃는 모습이 기억이 나네요.

팟캐스트: 네. 그랬죠.

재클린: 아주 재밌었어요.

팟캐스트: 그 뒤로 제가 한국에 갔을 때, 데브라 씨가 재클린 씨도 한국에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때 친부모 조사 중이라고 생각했죠.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재클린: 그때는 제가 평생을 함께해온 두 한국계 입양아 단체인 보스턴 한국 입양아 단체(Boston Korean Adoptees, BKA)와 DMZ를 건너는 여성들(Women Cross DMZ, WCDMZ)에 가입했을 때였죠. 전 20대 중반이었고 한국인 정체성을 제대로 탐구해 보려고 하려고 했습니다. 데브라 씨를 2006년에 만났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2016년에야 한국에 돌아갔어요. 2016년에 저는 26세였죠. 제 친어머니에게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는데 만나주실 수 있는지 물었어요. 친어머니는 제가 직접 저를 만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걸 듣고 화가 나지 않았죠.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친어머니가 저를 10년이나 지났는데도 만나주지 않으니 아예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념했습니다. 친어머니가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슬프긴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어요. 친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 아주 슬펐죠.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제가 삶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친부모를 만날 이유가 없었죠. 오히려 제 친어머니가 저를 만나고 저에게 의지할까 무서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가능성이 있지만, 그때는 무엇이 일어날지 불확실했고 친어머니가 만남을 거절했죠. 그걸 듣고 저는 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면 왜 단순한 만남도 거부하는지 궁금했고, 친어머니가 걱정되었습니다. 친어머니가 학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학대를 받지 않는다면, 왜 친어머니가 바람을 피워서 아이를 가진 것도 아니고 친아버지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숨기겠어요? 친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은 제 삶에 있어서 가장 좋은 시기였어요. 전 아주 건강했고 행복했죠. 슬픔과 우울에서 빠져나온 상태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일하면서 일도 잘 풀리고 있었어요. 더 삶에 있어서 고생하고 있지도 않았죠. 25세 이후로는 직업이 궤도에 올라 잘 풀리기 시작했고 29세 때는 진짜 어른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룬 성공이 자랑스러웠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를 만났을 때 재클린 씨의 머리카락과 흘러내리는 옷이 기억이 나네요, 보호-시크(Boho-chic, 미국의 패션 스타일)적 스타일이라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클린: 전 그렇게 멋있게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카오미 씨(팟캐스트 진행자)가 그렇게 봐줬으니 다행이네요.

팟캐스트: 입양아 사회에 참여하고, 친구도 만들고, 보스턴 입양아들과 활동하다가 AKA에 참여하게 되셨는데 어떤 경험이었나요?

재클린: 전 2013년에 막 입양아 사회의 일부가 되었죠.

팟캐스트: 그럼 정말로 막 들어왔던 시기였겠네요?

재클린: 네. 

팟캐스트: 그리고 입양아 사회의 신입이셨군요.

재클린: 네. 제가 어떤 사회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전혀 몰랐죠. 입양아가 아닌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돌아가니 어떤 경험이었냐고 그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각국에서 모인 비슷한 연령대의 한국 입양아들을 5성 호텔에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하는 TV 쇼에 참여한 느낌이었다고 답했죠. 제가 기억나는 입양아 중 하나는 이탈리아에서 온 입양아였는데 행동이나 모든 것이 이탈리아인 같은 한국계 입양아였어요.

 팟캐스트: 스테파노 씨요?

재클린: 아 네. 스테판 씨요. 이탈리아인 그 자체였지만 동시에 한국인이었죠. 모임에 수많은 억양과 발음이 있었지만 전부 한국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그걸 듣고 놀랐지만, 전 놀라는 친구들에게 TV 쇼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해줬어요. 서울 캠프(2015) 영화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와 비슷하죠. 서울에 있는 5성 호텔에서 진행되는 입양아들 모임이라니 TV 쇼의 기반이 될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확실히 TV 쇼 같았죠.

재클린: 그랬습니다. AKA 이사회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입양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일의 무게 자체를 몰랐어요. 지금은 우리 입양아 사회가 가진 무게를 알고 거기에 참여하는 입양아들에게 가지는 무게와 참여하는 집단들에 대해서 알지만, 그때는 이 모든 게 새로운 신입 입양아였죠. 

팟캐스트: 그 모임에서 공연도 하셨죠. 기억이 나요.

재클린: 공연 경험도 대단했죠. 루크 맥퀸 씨가 페이스북에 공고를 올려서 음악가인 입양아가 있다면 입양아 공연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공연장도 있고, 장비도 다 준비되어 있다고 공고를 했죠. 그걸 보고, 제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클린의 공연-

팟캐스트: 대중 공연을 하신 때가 그때가 처음이었나요?

재클린: 음…. 보스턴 입양아 단체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몇 번 했던 경험이 있죠. 

팟캐스트: 입양아들 앞에서 공연하니 어땠나요? 무겁게 느껴졌나요? 아니면 기뻤나요? 

재클린: 아주 기분 좋았어요. 공연하기 편하게 아주 좋은 음향 장비를 제공해준 루크 씨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끝나고 나자 누군가가 저에게 “누가 그런 실연 경험을 하게 만들었죠?”라고 질문했고, 제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5개의 슬픈 노래를 연속으로 불렀거든요. 제가 공연하고 싶었던 노래들만 골라서 공연했죠

-재클린의 노래-

팟캐스트: 재클린 씨의 노래들은 사랑에 대한 노래들인가요?

재클린: 네. 모두 스포티파이와 아이튠즈에 올라와 있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의 전 남자친구들이 재클린 씨의 노래에 나오나요?

재클린: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재클린 씨의 고통을 사용해서 예술을 만드시는군요.

재클린: 전 남자친구들이 반발심을 표시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 노래들을 좋아했죠.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노래가 있다니 재밌다고 했습니다. 전 제 전 교제 상대들과 여전히 연락하는 기묘한 사람이에요. 제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이죠.

팟캐스트: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도 친하게 지내셨으니 이해가 가네요.

재클린: 그렇죠. 사람이 가장 친밀해질 수 있는 상대는 같이 동거하거나 사랑을 한 상대입니다. 대부분 사이가 틀어지게 전에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고,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죠.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도 알게 되고 용서해 줄 수 있게 되죠. 물론 실연이 고통스럽다면 당분간 연락을 하지 않지만 결국 다시 연락하게 됩니다.

팟캐스트: 연애에 관련된 노래를 작곡하실 때 노래 나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나요? 아니면 전 남자친구들의 여러 요소를 조합하시나요?

재클린: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서 만들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비슷한 느낌의 사람들을 만나와서 그렇게 어렵지 않죠. 여러 사람, 특히 여성들이 동감하는 내용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노래에 나오는 과정을 똑같이 겪었다고 하더군요. 여성 측도 마찬가지지만,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연애 시장에서 서서히 감정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남성들이 늘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에게 받은 호응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팟캐스트: 전 남자친구가 그 노래를 나에 관해서 썼느냐 묻고, 사실이 아니라고 한 적도 있나요?

재클린: 대답하지 않도록 하죠. 하지만 제가 데이트하지 않은 남성 친구들이 그 노래들에 이입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어낸 경험이 있다고 했거든요. 특히 이번 COVID-19 격리 시기에 제가 쓴 노래들이 더욱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입할 수 있도록 노래를 작곡했죠.

팟캐스트: 노래에서 애착이 중요한 주제인가요?

재클린: 애착, 서로 주고받는 사랑, 짝사랑, 타이밍,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밀어내는 사람 등 다양한 주제가 있죠. 제 여성 친구들이 제 노래에서 주로 짚어내는 주제예요. 단순히 입양아들뿐만이 아니라 여성 친구들 전부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격리 중에 작곡한 다른 노래인 내가 알 모든 일(All I’ll Ever Know)은 사랑에 대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길을 잃었는데 이유를 모르는 사람에 대한 노래였죠. 많은 사람이 COVID-19 유행을 겪으면서 바깥세상과 접촉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 때문인지 노래에 공감하더군요. 제가 작곡하고 싶었던 노래였고 관련 주제와 관련해서 제 삶에 결론을 내줬다고 생각해요. 물론 완벽한 결론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이 노래를 발매했으니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물론 모든 사람이 이야기를 공유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취약한 이야기를 공유하면 고통에서 사람을 해방해 줄 수도 있어요. 물론 전 어두운 주제를 별로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모두와 이야기를 공유할 필요도 없고, 모두가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가 음악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청자와의 관계를 구축했는데, 그 일이 재클린 씨가 해방감을 느끼고 감정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재클린: 네. 항상 그랬다고 생각해요. 제가 자란 마을에서는 EMO가 많았어요. 제 후배 중에도 잔뜩 있었죠. 저에게 연락해서 제가 작곡한 노래가 실연 시기를 뚫고 나오는데,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이야기를 해줬죠. 청소년기에 성장하면서 제 노래가 다른 사람을 도와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음악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죠.

-재클린의 노래-

팟캐스트: 2016년으로 돌아가 보죠. 그때 루나 씨를 만나셨죠?

재클린: 루나! 

팟캐스트: 그때 루나 씨를 처음으로 만나셨나요?

재클린: 아뇨. 뉴욕시에서 개최된 AKA 20주년 행사에서 만났죠. 서울에서 만나기 전 몇 달 전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서로 깊게 알게 되었죠. 

팟캐스트: 루나 씨의 첫인상이 어땠나요?

재클린: 아주 좋았어요. 사악하게 착했고, 아주 정직하고 느긋한 사람이었습니다.

팟캐스트: 물론 루나 씨가 영어도 하지만 한국계 입양안데 노르웨이어를 해서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나요? 

재클린: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노르웨이계 억양을 가지고 있어서 신기했죠. 동시에 한국인데도 영어가 제2 언어이고 노르웨이어가 제1 언어라는 사실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팟캐스트: 루나 씨의 행동거지는 유럽인이라는 점도 그렇고요. 

재클린: 네. 참여자 대부분이 미국인이니 그러한 행동과 분위기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었죠. 

팟캐스트: 예를 들어줄 수 있나요?

재클린: 루나는 훨씬 직설적이죠. 자신이 생각하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물론 루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화법이 워낙 직설적이라 실수로 사람을 헤아리거나 신경 쓰지 않는 화법으로 보여서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한국계 입양아 사회에서 우리가 서로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처음으로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사귀게 되었어요. 전 미국계 백인이 아닌 사람과 사귄 적도 얼마 없었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가 처음으로 사귄 아시아계 남자친구였나요?

재클린: 아시아계-백인 혼혈과 고등학교 때 사귄 적이 있었지만, 그 친구는 백인에 더 가까웠어요. 사실 우리 둘 다 그랬다고 생각해요. 서양 사회에서 아시아계 남자가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은 제가 흥미가 있는 주제입니다. 잘못된 일이니까요. 

팟캐스트: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면은, 재클린 씨가 입양아 사회에 들어와서 자신의 입양아 정체성을 자각하고, 또 다른 한국계 입양아와 사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재클린 씨의 모든 요소가 하나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재클린: 아뇨.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러기를 원했죠. 그래서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어요. 말을 좀 정리하죠. 한국계 입양아 사회의 판결과 분노는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입양아들은 방송에서 입양아와의 연애 관계를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지 분노하는 경우가 많아요. 입양아들의 그런 반응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루나와 저는 서로가 연애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 둘은 친구이고 서로를 존중하죠. 과거의 연애에 대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이제 과거의 추억입니다. 지금은 루나도 저도 서로 다른 연인이 있고 서로가 행복하기를 원해요. 제 삶에 연관되었던 사람들은 전부 제가 루나와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죠. 제 삶의 일부였고 제 성장의 일부였던 사람입니다. 모두가 제가 누구를 언급하는지 아는데 그와 헤어졌다고 해서 다시 언급하지 않을 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죠. 루나는 좋은 사람이에요. 모두가 한국계 입양아 커플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니 이야기할 이유가 있습니다.

팟캐스트: 그래서 여러분 커플 명이 루나린이었나요? 재클루나였나요?

재클린: 커플 명은 없었어요. 제 이름도 루나의 이름도 사람들이 철자만 보고 발음할 수 없었죠. 전 루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팟캐스트: 루나 씨에게 재클린 씨가 첫 한국계 입양아 여자친구였나요?

재클린: 당연히 아니죠. 루나는 저보다 13살 연상이고 20살 때부터 한국계 입양아 사회에서 활동해왔으니까요. 저는 막 한국계 입양아 사회에 참여한 신입이었습니다. 다른 입양아들이 루나가 다른 입양아와 교제해서 화가 나지 않는지 물어보고는 했죠. 당연히 그렇지 않았어요.

팟캐스트: 한국계 입양아 사회 내부에서 연애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작은 사회이니 그것과 관련된 문제가 재클린 씨를 신경 쓰게 했나요?

재클린: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루나에 대한 거짓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긴 했죠. 그래서 그를 변호하려고 했어요. 물론 모든 연애 관계가 완벽하지 않으니 하소연을 친구들에게 하면 뜬소문이 흘러나가기 마련이죠. 제가 한국계 입양아 사회 내부에서 연애하지 않았다면 관련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재클린: 그러한 뜬소문들이 저를 막지는 않았습니다. 한국계 입양아 사회 내부에서 연애하면 좋지 않다, 너무 큰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입양아들 사이에 있었죠. 그걸 듣고 저는 동의하기도 했지만 동의하지 않기도 했어요. 일반화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입양아 사회에서 데이트한 좋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팟캐스트: 저도 동의해요. 한국계 입양아 남성과 여성 둘 다 자기들에게는 한국계 입양아와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죠.

재클린: 그런 이야기는 꽤 모욕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거절하고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팟캐스트: 친어머니를 만나셨죠? 

재클린: 네 결국 2018년에 친어머니를 만났습니다. 한국 관련 이벤트로 다시 한국에 방문한 상태였죠. 친어머니에게 다시 연락을 드렸어요. 이번에는 아주 짧게 다시 한국에 왔으니 만나고 싶으면 만나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팟캐스트: 왜 친어머니가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 다시 만나자고 연락을 하셨죠? 친어머니가 마음을 바꿔 먹었기를 기대하셨나요?

재클린: 제 친구 로니의 생각이었죠. 로니는 40살이고 저와 같이 한국에 와있었는데, 로니가 자기가 대신 연락해주겠다고 이야기했죠. 로니가 한국어를 하기 때문에 저 대신 연락을 해줘서 제가 한국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일을 진행해줬습니다. 저는 친어머니의 거절을 상해서 긴 편지도 쓰지 않았고, 딱히 화가 나지도 않았어요. WCDMZ 관련 작업으로 계속 바빴고, DMZ를 따라 걷기 활동에 평화 집회도 준비하고 있어서 아주 바빴죠. 그 와중에 로니가 모든 준비를 다 끝내 놓고 “아 만나시겠다고 하시던데.”라고 저에게 말했죠. 당연히 놀랐어요. 서울에서 3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 방에서 둘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통역가를 고용해서 아침 일찍 그곳으로 갔죠. 그렇게 친어머니를 만났어요. 

팟캐스트: 그렇게 갑작스럽게 만났는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죠? 친어머니가 예라고 말해서 놀랐나요?

재클린: 아주 많이 놀랐죠. 거기에 아주 좋은 시기기도 했어요. 요가 학교를 막 끝내서 육체와 정신이 아주 안정적이었거든요. 요가 학교 자체가 아주 부르주아적이고 백인답지만 제가 간 학교는 정통 요가 학교라서 정신과 육체의 균형, 영혼, 병과 육체, 스트레스의 연관성에 관해서 이야기했죠. 그러한 고통에서 생각으로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과거의 충격이나 기억을 확인하고, 지금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배웠어요. 200시간 정도 요가 교육을 받고 한국에 갔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친어머니가 저를 만나려고 하셨죠. 만나기 좋은 시점이었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친어머니와의 만남에 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재클린: 아주 좋았습니다. 제 친구 로니와 통역가 그레이스 씨가 같이 호텔에 가서 문을 두드렸죠. 친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주 한국적인 분이더군요. 지금과는 달리 한국 문화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아서 놀랐죠.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시고, 화장한 상태에서도 매우 창백하셨고, 거기에 파마머리도 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행동과 패션도 전부 한국적이고, 저와 달라 공감할 수 없었어요. 어머니가 떠시면서 저를 안았고, 저를 안으신 채로 소파로 걸어가시기 시작하셨죠. 전 그 상황에 공감이 가지 않아서 울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해서 잘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공감을 하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죠. 

팟캐스트: 그 모든 상황과 관련해서 약간 무덤덤한 기분이 들었나요?

재클린: 네 그렇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제 앞에 있고, 여러 감정이 들어야 하는데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친어머니와 훌륭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불안하지 않았죠. 사실 공감하지 못하거나 무덤덤했던 것이 아니라, 친어머니를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했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제가 진짜 공감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요

-재클린의 음악-

팟캐스트: 제가 재클린 씨가 입양아와 관련된 모든 일을 입양과 관련하는 이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재클린 씨가 친어머니에게 약간 무심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가 친어머니가 재클린 씨를 거부한 후유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재클린: 그랬다면 말이라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전 거절을 당하면 아주 깊은 영향을 받죠.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제 생애의 모든 거절을 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어머니가 저를 거부한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친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여러 번 같이 시간을 보냈죠. 제 친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제 양어머니와 느낀 친밀감 백 분의 1 정도밖에 느끼지 않았어요. 양어머니와 저와의 관계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아예 없습니다. 사실 제 양어머니는 제가 친어머니와 같이 살러 간다고 해도 응원해 주시겠죠. 뭐 실제로 응원해 주실지는 모르지만, 양어머니와의 관계에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제가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친어머니가 필요 없었죠. 제가 19살이었을 때 제 입양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배웠을 때부터 제 이야기를 알았고, 이미 결론을 냈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입양아 사회에 참여하는 입양아들은 입양아 숫자에 비하면 숫자가 적죠. 하지만 입양아 사회에 참여하는 입양아 대부분은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이 사회에 참여했고 서로를 찾아냈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친어머니에 대해서 강렬하게 반응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이해해요. 전 친어머니를 아주 사랑하지만, 그 감정은 먼 친척 고모나 이모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그분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그분들을 알게 되어서 좋죠. 제가 친어머니에게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하고 나니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네요.

팟캐스트: 아뇨. 사실적으로 느껴져요. 

재클린: 친어머니가 제 이모나 고모같이 느껴져요. 제가 잃어버린 이모나 고모같이 느껴지죠. 제가 아이를 가진다면 다르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이런 문제에서 거리감을 느껴요. 그렇게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죠.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서 분노나 슬픔을 느껴서 고생하지는 않았거든요. 

팟캐스트: 친어머니가 재클린 씨와 더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현재 상황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재클린: 저도 비슷한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한 적이 있어요. 친어머니가 저에게 더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친어머니와 제가 서로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친어머니가 어른일 때 저를 놔줘야 했기 때문에 저에게 좀 더 깊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죠. 전 친어머니와 떨어졌을 때 아기였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합니다. 물론 제 몸에는 영향을 끼쳤겠지만 기억하지 못하죠. 제 양부모님이 저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이 문제에 반응하셨죠. 오 두 사람이 드디어 만났구나! 이라는 느낌입니다. 제 양어머니는 제가 친어머니를 만난다고 하니 흥분하셔서 친어머니를 만나는 날에 계단에서 구르시기도 했어요. 두 분 다 아주 깊게 신경 쓰시죠.

팟캐스트: 양부모님이 재클린 씨보다 더 신경을 쓰니 이상한 기분이었겠네요?

재클린: 아주 이상했죠. 두 분께 전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고, 제 형제들인 조니, 형진, 필진과 저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단순히 저만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 이 일이 일어나니 대단하다고 기뻐했지만, 누구도 울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팟캐스트: 다른 가족들과는 언제 만났죠?

재클린: 어머니와 만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만났죠. 제 남동생들은 절 만나러 2번 만나러 왔었고 서로 아주 친밀해요. 남동생이 제 노래인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Say You Don’t Love Me)에 나오죠. 제가 가장 빠르게 친해진 사람 중 하나였어요. 남동생은 내향적이고 저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아주 똑같았습니다. 남동생이 저를 받아들이고 누나로 인정해줘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죠. 제 남동생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주 강하다고 생각해요. 입양과 관련해서 제 남동생과 만들어낸 관계가 아주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죠. 그리고 제 남동생이 제 가족 중 저를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2달을 같이 보냈기 때문에 절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뉴욕에 와서 같이 지냈군요?

재클린: 남동생이 저를 알고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죠. 물론 다른 가족들도 절 알긴 합니다. 

팟캐스트: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남동생이 래퍼죠? 

재클린: 네.

팟캐스트: 그리고 서로 음악을 통해서 협업을 할 수 있었죠?

재클린: 네 기적과도 같이 서로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팟캐스트: 그 음악적인 협력에서 혈연이 중요하게 느껴졌다고 생각하나요?

재클린: 아주 특별했다고 생각하죠. 제 친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에게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가족에 영향을 끼쳤는지 물어봤습니다. 남동생은 가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를 해줬고, 그 해답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재클린과 남동생의 노래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Say You Don’t Love Me)- 

재클린: 전 평생 제가 왜 이런지 고민했어요. 제가 입양아라서 그런가? 제 백인 부모 때문인가? 제 친부모의 유전자 때문인가? 전 제가 왜 이런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팟캐스트: 재클린 씨가 친가족과 같이 밥을 먹는 사진을 봤는데, 그럴 때는 친가족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죠? 오래전에 잃어버린 조카같이 대하나요?

재클린: 아뇨. 친가족들에 있어서 저는 잃어버린 딸이죠. 제 친아버지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고 칭찬하는 일을 그만하라고 해야 합니다. 전 천사가 아니니까요. 다시 말하면 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입양아 친구들과 사연을 들어보면 친어머니를 모르고, 입양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모르는 사실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죠. 그러한 관점도 이해해요. 특히 입양된 가족에 따라서 이러한 정보를 알려고 하는 욕구가 커지기 마련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제 결과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면 해요. 물론 그 사람들과 자리를 바꿔서 제 이야기를 주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결과를 제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생각되지 않기도 해요. 제가 이 결과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죠.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입양아가 왜 제가 이렇게 운이 좋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평생 무언가를 원했는데.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쉽게 손에 넣으면 당연히 화가 나겠죠. 그런 반응이 왜 나오는지 이해합니다.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죠. 왜 저에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니까요. 카오미 씨는 제가 쓴 글을 읽어서 아시겠지만, 제가 우울증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제가 우울증으로 고생해서 이런 보답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그런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제 이야기도 계속 편하다가 친가족도 만났는데 전부 착하고 좋았다- 이런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제가 살면서 여러 번 죽을 뻔했죠. 한두 번 자살시도를 했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 빠진 요소인지는 모르지만, 저도 조금씩 삶에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친가족을 만난 일도 좋은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조정해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죠.

팟캐스트: 우리가 연애 관계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했는데 재클린 씨가 지금 교제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재클린: 네. 제 삶에서 찾고 있던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그와 같이 보내기 전까지 삶이 이렇게 편하고 좋았는지 몰랐죠. 제가 그를 찾으려고 아주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자아 성찰도 했고 직접 찾아내려고 노력했죠. 다른 사람으로 만족하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