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다그렌(46세)는 한국계 스웨덴 입양아다. 제니는 자신의 식욕 이상 항진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신경증이 자신의 유기와 입양과 관련된 낮은 자존감과 연계되어 있었다는 깨달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제니는 40대에 최초로 한국에 방문하기 전까지 자신의 한국계 뿌리를 피해왔다.
제니: 제 이름은 제니 다그렌입니다. 스웨덴에 살고 있죠. 현재 45세입니다. (인터뷰 시 45세, 팟캐스트 게시 시 46세가 되었다) 후 6개월일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었어요.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근교의 주택단지에 살고 있죠. 결혼해서 아이가 두 명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죠. <스웨덴어 자기소개>
제니: 작년 서울에 모임에 참여했을 때 다양한 국가로 입양된 한국계 입양아들을 만났는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육체 언어로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출신인지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외모는 전부 비슷했어요.
팟캐스트: 그 모임에 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제니: 이 모임은 3년마다 전 세계의 한국계 입양아들이 모이는 행사인데, 이번에 후원자 문제 때문에 다시 진행할지는 모르겠네요. 거대한 행사입니다. 2019년에는 700명에서 800명이 참여했죠. 80명 정도의 참여자들이 스웨덴에서 왔어요. 그리고 대부분 참여자가 가족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혼자 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대부분 참여자는 미국에서 왔죠.
팟캐스트: 제니 씨, 이번에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신가요?
제니: 모임 참여는 처음이었지만 한국 방문은 세 번째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참여했던 친구들이 있어서 이야기는 들었지요. 그래서 모든 것에 개방적인 태도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기대한 일은 다른 국가 출신 입양아들과 만나서 우리가 가진 공통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그들의 사정을 듣는 일이었죠.
팟캐스트: 모임은 어땠나요?
제니: 좋았어요.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의 경험이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 첫 방문이었다면 한국을 다른 관점으로 인식했겠죠. 이미 방문 경험이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이긴 하지만 한국이 입양아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한국이 입양아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많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죠. 그래서 사회적인 행사라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워크숍들도 있죠. 한국이 우리를 위해서 한국의 좋은 면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을 관광객으로 와서 보면 한국의 다른 면도 볼 수 있죠.
팟캐스트: 입양아로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계시겠군요?
제니: 네. 매우 그렇습니다. 아주 실망했죠. 입양 제도와 취급 절차에 대해서 배우면 배울수록 입양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거든요.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많은 사람이 친부모를 찾으려고 입양기관에 연락하면 대부분은, 입양아의 신분을 알고 가족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입양아가 정보를 찾으려고 한다고 연락을 하죠. 그럼 가족들이 허락하면 진짜 정보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정보 공유를 거부하면 정보 공유를 거부하거나 정보가 없다고 한다고 하더군요. 제도 자체가 친부모를 보호하게 되어 있죠. 한국이 우리가 존재함을 알지만, 우리에게 비밀을 숨기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한국 출생인 사람들이 한국 법상으로 자신의 친부모를 알 권리가 없다는 점이 말이죠.
제니: 알 수가 없죠.
팟캐스트: 국제 인권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한국은 관련 헤이그 협약도 승인하지 않았죠.
제니: 하겠다고 했지만 하지 않았어요.
팟캐스트: 제니 씨의 문제도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니: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했을 때 제가 무엇을 찾을지 두려웠기 때문이죠. 제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했거든요. 대부분의 스웨덴 입양아들은 SBS…. 홀트와 같지만, 스웨덴 기반 입양 단체를 거쳐 입양됩니다. 저는 다른 입양아들과는 달리 그렇게 정보를 원하지는 않았죠. 그래도 한국에 왔을 때는 관련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제가 찾을 정보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 정보를 찾고 싶은지도 고민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찾고 싶다는 쪽과 찾고 싶지 않은 쪽이 싸움을 벌였어요. 제 삶이 크게 바뀔 것이고 그러한 정보에 따라오는 감정을 제가 받아들이는 문제였죠.
팟캐스트: 그렇죠. 그래서 입양 서류에는 관련 정보가 없나요?
제니: 네. 정보가 별로 없어요. 서류 상당수가 가짜 정보인 것 같습니다. 제 서류에 따르면 제가 발견된 횟수만 3번이에요. 그래서 서류의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지죠. 그래서 제 뿌리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때 아주 힘들고 슬펐습니다. 제 서류들을 보고, 제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서류에 따르면 저는 서울 북부에서 태어났고 강남 근처의 고아원에 맡겨졌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아원이 있던 지역을 찾아갔죠. 이미 재개발이 진행되어 있었죠. 서류상으로는 그곳에서 4달에서 5달 정도 지내다가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서류가 사실이라는 점이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진 기분이었죠. 그 지역 출신도 아니고, 서울 북부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말이죠. 모든 것이 암흑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고 슬펐습니다.
팟캐스트: 돌아가 보니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바뀌어서 고속도로가 들어섰다. 이런 일들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점이 아주 힘들죠.
제니: 그렇죠. 그리고 진짜 이야기를 찾아서 진짜 가족을 만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났어요. 그런 사람 중 상당수도 서류가 소실된 경우가 많았죠. 그래도 진짜 가족을 만나서 입양된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지만 매우 비극적이기도 하죠.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슬픔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 상황에 공감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죠.
팟캐스트: 한국에 처음으로 돌아간 때를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제니: 제가 43세일 때였습니다. 2017년이었죠. 그러니 최근이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을 짧은 시간 내에 세 번이나 방문하셨군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에 귀국했을 때 이미 40대셨군요. 뿌리 찾기에 관심이 없거나 별로 중심을 두지 않다가 중년 때 뿌리를 찾게 되셨나요?
제니: 이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전 입양아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려고 노력했죠. 그런데도 이 생각은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친밀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죠. 그래서 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제 딸이 한국에 관심을 가졌죠. 그래서 과정이 시작된 것 같아요. 딸은 한국에 방문하려고 했죠. 처음에는 한국어를 배우게 됐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저에게 그렇게 좋게 끝나지 않았어요. 배우기 어려운 언어였습니다. 발음들도 어려웠고요. 한글 자체는 쉽게 배울 수 있었지만 말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다른 입양 친구에게 또 다른 한국 관련 정보를 배웠고, 그다음에는 한국에 가게 됐지만, 방문 자체도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팟캐스트: 따님이 BTS나 K-POP 같은 문화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끌게 됐나요?
제니: 아뇨. 제가 한국태생이라고 관심을 가졌어요.
팟캐스트: 제니 씨가 과거에 놓고 온 한국에 대해서 따님이 관심을 가지자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제니: 네. 말하고 싶던 주제입니다. 아주 행복했어요. 제가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아이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움을 가졌죠. 전 한국 출신 입양아였으니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괴롭혀지거나 제가 다른 외모를 가져서 기분 나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딸이 한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팟캐스트: 자라면서 괴롭혀진 경험이 있나요?
제니: 아뇨.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이상하긴 하네요. 전 괴롭힘 당하지 않았고, 좋은 친구들과 평범한 가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웨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었죠. 그래서 과거에 대해서 나쁜 감정이 있을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전 가지고 있었죠. 제가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 정신적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정확히 왜인인지는 모르죠. 이러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어요. 평범한 아동 시절을 보냈고, 친구도 많았고, 직장을 얻는데도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도 제 삶 대부분을 불행하게 살아왔습니다.
팟캐스트: 아주 흥미롭네요. 가족도 있고, 괴롭힘도 안 당했고, 주변과 조화…
제니: 조화롭게 맞아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팟캐스트: 조화롭게 맞아 들어가지는 않았군요.
제니: 네. 하지만 괴롭힘당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유일한 아시아계였고 주변 사람들은 아시아인과의 접촉 경험이 없었고 외국 출신인 아이들도 없었죠. 전부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스웨덴인이었어요.
팟캐스트: 전부 스웨덴인이었다고요?
제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부 스웨덴은 아니었죠. 저를 제외하고 두 명이 입양아였어요. 우리 셋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었죠.
팟캐스트: 다른 사람들이 교환학생이거나 유학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제니: 한국 출신이라고 말하면 사람 대부분이 입양아라고 이해했습니다. 한국 출신 스웨덴 입양아들이 많았거든요. 물론 사람들이 질문하기도 했고 그런 경우에는 매우 방어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제가 평범하다고 인식하기를 원했기에 매우 방어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순하게 어디 출신인지, 입양안지 물으면 입양아지만 다른 스웨덴인 가족과 똑같고 다른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죠. 하지만 실제로 생각하면 달랐습니다. 다른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게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똑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탄생 이야기도 똑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사람들에게 백인 가족에 입양된 입양아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어요. 지금은 그걸 이해하죠. 지금은 제 아이들을 가졌고,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사람들에게 다르지 않다고 증명하려고 한 거군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삶이 평범하다고 하셨고, 결혼도 하시고, 자식들도 있고, 직장도 좋은 직장을 가지고 계시고 그런 가족적 삶을 가지고 있는데도 공허감을 느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허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항상 제 속에서 걱정이 느껴졌습니다.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았죠.
팟캐스트: 입양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니: 네 지금은 알고 있죠. 항상 불안감에 젖어 있었어요. 15살에서 16살 때 첫 공황 발작을 겪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너무나도 많은 감정을 품었고 분출해야 했어요. 그리고 왜 그러는지 전혀 몰랐죠. 제가 미친 줄 알았습니다. 공황 발작을 겪기 전까지는 공황 발작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죠. 그래서 이러한 공황 발작 때문에 행사와 일을 피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17살이 되었을 때, 저는 식욕 이상 항진증과 같은 식이 장애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어요. 물론 입원하지는 않았고 통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7번 치료를 받으러 갔고, 식이 장애 전문 병동에서 24살이 될 때까지 치료를 받았죠. 아주 긴 시간 동안 식이 장애에 시달렸습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입양의 트라우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인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죄책감을 안고 있었거든요. 제가 입양으로 인해서 이렇게 상태가 안 좋다면, 제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게 될지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제 장애가 입양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죠. 하지만 사실 전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입양이 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몇 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관련되지 않은 문제도 있었겠지만, 저를 괴롭히는 큰 문제들은 입양 관련이었죠.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부모님이 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양육을 해줬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팟캐스트: 네 지금은 더 많은 자료와 증거가 있어서 탄생 이전부터 어머니의 상태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하죠. 그리고 초기 몇 달간 무의식적인 영향을 끼친다고도 하고요.
제니: 네 그래서 초기 몇 년간 친모와 같이 지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죠. 그러한 연결을 만들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이야기하기를 제 공황 발작은 제가 어머니에게서 떨어졌을 때의 느꼈던 공황과 연결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 무의식에 남아서 영향을 끼치고 있죠. 대부분 입양아가 비슷한 감정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어려웠고, 제 감정을 받아들이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어요. 아직 그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많은 일이 더 쉬워지겠지요.
팟캐스트: 제니 씨, 외동딸인가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부모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나요?
제니: 네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바뀌었습니다. 한국에 가까워지면서 바뀌었죠.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죄책감들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있죠. 그래도 지금 카오미 씨(팟캐스트 진행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잘 되면 좋겠죠. 이 팟캐스트에서 카오미 씨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카오미 씨와 진실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서웠어요. 만약에 부모님이 듣는다면 부모님과 대화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해하시나요?
팟캐스트: 네. 입양아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입양 부모님에게 직접 감정 표현이 어렵다는 것이죠. 그분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까 봐 무서워하고, 그분들의 감정을 맞춰주고 싶고, 좋은 아이가 되고 싶어서 해요. 그리고 입양 제도의 방식 때문에 대부분 상황에서 입양아들의 감정적 성장을 멈추고, 문제를 발생시키죠. 그렇게 부모님과 감정적인 거리가 생긴다고 봐요. 그리고 나중에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고 진짜 자기 자신을 되려고 하면, 과거의 우리를 알았던 부모님과 가족들은 변화하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제니: 우리 같은 입양아들이 겪는 문제들이죠.
팟캐스트: 몹시 어렵죠. 입양 제도의 구성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몰리게 되고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제니: 두 개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양 부모의 관점으로 보면 자신들과 닮지 않은 아이를 키우게 되는 셈이죠. 지금까지는 제가 화자였기 때문에 저에게 집중했어요. 저도 부모님과 닮지 않았죠.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그분들과 닮은 제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가 느끼는 감성과 제 외모는 닮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웨덴식으로 키워져서 스웨덴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스웨덴인처럼 생기지 않았죠. 영어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팟캐스트: 아 괜찮습니다. 스웨덴어로 하셔도 괜찮아요.
제니: 파닉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죠.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팟캐스트: 기대하고 있다고요?
제니: 네. 사람들이 입양아들에게 외모, 감정, 그리도 다양한 일을 기대하고 있어요. 제가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슬프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일입니다. 살면서 부모님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그러지 말라고 한 적 없고 행동으로 지시한 적도 없죠.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어요. 자신감이 없어도 항상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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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80년대 스웨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제니: 네
팟캐스트: 데이트를 하셨나요? 다른 남자아이들이 제니 씨를 매력적으로 보았나요? 아니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나요?
제니: 데이트 관련해서는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핸드폰이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직접 전화를 해야 했죠. 관련 문제는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입양아들은 그런 문제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았죠.
팟캐스트: 성장하면서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나 아시아 페티시의 문제는 겪지 않으셨나요?
제니: 전 개인적으로 그런 문제는 겪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겪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친구들이 가게에 가면 나쁘게 대우받는 경우도 많았고, 사람들이 외모 관련으로 나쁘게 대우하는 때도 많았죠. 거기에 아시아계 여성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대우받은 일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죠.
팟캐스트: 남편 되시는 분은 백인이시죠?
제니: 네. 스웨덴인이죠.
팟캐스트: 언제 어떻게 만나셨나요?
제니: 서로의 직장이 있던 건물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접수처와 다른 것도 같이 공유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스웨덴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이는 노르웨이 기업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는 기업은 본사는 다른 도시에 두고 있던 대기업이었죠. 그 시점에도 식욕 이상 항진증 판정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치료와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고, 다시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몸이 너무 아파서 일을 못 하는 경우를 뭐라고 하죠?
팟캐스트: 장애라던가 건강의 문제로 인한 휴직이었나요?
제니: 네. 그래서 반년에서 1년 정도 장기 휴직을 해야 했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장기 휴직하기 3일…. 아니 2일 전에 만났죠. 어느 정도 대화를 하고 나서 그이에게 전화하고 싶으면 하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그이가 당신의 전화번호를 모르는데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번호를 가지고 있으면 연락을 할 거냐고 물었죠. 그리고 그이가 할지도 모르죠. 번호를 주시면요. 라고 했어요. 그게 화요일에 나눈 대화였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그이가 연락을 해왔고, 집으로 방문했죠. 식이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전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할 수 없었어요. 그이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할 수가 없다고요. 제 증세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죠. 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배웅했죠. 일요일에도 그가 왔고 그때부터 같이 살았어요.
제니: 누구와 만날 생각은 없었어요. 사람과 교제를 시작하면 밖에서 대화하고, 데이트하고 그렇게 시작하죠. 하지만 우리 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식이 장애가 있었으니까요. 그이가 제가 화장실을 사용할 때 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죠. 제가 토하기 시작하면 들어와서 막아야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꽤 특이한 관계로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그때는 그이는 21살이었으니까 나이도 상당히 어렸는데 말이죠. 그이가 12월생이니 거의 22세였고, 저는 24살이었습니다.
팟캐스트: 식욕 이상 항진증을 어떻게 극복하셨죠?
제니: 통원치료를 장기간 진행했습니다. 약도 꾸준히 먹었죠. 제가 생각하기로는 제 남편과의 관계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그분께서 도와줬군요.
제니: 그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오랫동안 이 증세로 고생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누군가와 만나서 그런 관계가 될 줄은 전혀 몰랐죠. 그래서 그이와 만나기 몇 년 전에 부모님에게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으니 손자 손녀는 기대하시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팟캐스트: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제니: 이상하게 보이시겠지만 입양아인 사실을 상대방들이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식이 장애를 앓게 되자 제가 버스 타기에도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했죠.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잘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게 됩니다. 제가 역겹게 생겼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교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 고립되고 사람들과 교류가 끊기기 시작했어요. 버스에 타면 역겨운 사람이 버스를 탔다고 생각해서 버스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웃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이죠.
팟캐스트: 그 당시에는 상당히 마르셨었죠. 오히려?
제니: 지금이 더 날씬하지만, 그 당시에도 살이 찐 것은 아니었어요. 많은 사람이 식이 장애를 앓는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팟캐스트: 내부의 감정적 문제에 더 가깝죠?
제니: 네 그렇습니다. 마약 중독이거나 다른 병을 앓고 있으면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죠. 저는 식이 장애를 통해서 제 불안감을 해소했죠. 아주 파괴적인 불안 해소 방식이고, 사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끔찍한 영향을 끼칩니다. 모든 것이 끔찍하죠. 다시 그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몰라요. 다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주 끔찍한 병이죠.
팟캐스트: 식욕 이상 항진증을 극복하면서 다른 사람과 최초로 먹은 식사에 대해서 기억하시나요?
제니: 네 기억해요. 채소를 곁들인 파스타를 어머니와 같이 먹었죠. 몇 년 만의 먹고 나서 토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낫는 데 아주 오래 걸렸어요.
팟캐스트: 식사 도중과 식사 후의 기분은 어땠나요?
제니: 장기간의 상담과 약 복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해 있었어요. 적어도 먹고 나서 바로 토해야 하는 단계는 극복했죠. 물론 아주 힘들었습니다. 병 때문에 음식과 몸에 대한 관점이 뒤틀려 있었어요.
팟캐스트: 그러한 경험이 제니 씨가 부모로서 행동하는 데 영향을 끼쳤나요?
제니: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 인해서 제 딸이 그러한 경험을 겪는다면 눈치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식욕 이상 항진증을 겪으면 오랫동안 평범해 보이죠. 하지만 거식증에 걸리면 몸이 말라가니 모두가 눈치를 채게 되죠. 하지만 항진증은 평범해 보여서 사람들이 눈치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팟캐스트: 딸을 걱정하셔서 하신 준비는 무엇이 있나요?
제니: 준비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좀 더 신경을 썼을 뿐이죠. 제 딸이 잘 먹게 되는 것을 원했고, 실제로 제 딸은 먹기를 좋아해요. 자기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게 하고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팟캐스트: 식욕 이상 항진증의 이유가 자신감 부족과 자아 존중이 부족해서 그랬던 만큼, 자식들의 자신감과 자아 존중을 성장시키려고 하셨는지 알고 싶었어요.
제니: 네. 음식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에게 공격을 받지 않고, 제가 가진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끼지 않기를 원했죠.
팟캐스트: 제니 씨의 공포와 고통을 물려줄까 봐 두려웠나요?
제니: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팟캐스트: 아주 흥미롭네요. 입양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니 씨와 최초로 피로 이어진 가족 관계니까 말이죠.
제니: 네. 저의 관점에서만 말하는 거지만 아주 강력한 감정이죠. 제가 생각하기 전에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다른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차이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들을 낳고 유전자로 이어진 두 명의 아이를 가지게 되자, 제 입양 부모님과 가진 관계와는 다른 더 깊은 관계를 그 아이들과 가지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죠. 제가 아이를 가지게 되자 제 입양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어요. 우리 장남이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아주 오랫동안 그 애를 데리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죠. 그래서 제 남편에게 우리 아들이 제가 제 부모님에게 온 나이가 되었다고 말하니 그이가 저를 안아줬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누가 그런 것에 신경이나 썼을까 생각하니 아주 슬퍼졌고요.
팟캐스트: 친자식을 낳고 난 뒤 제니 씨가 입양된 나이까지 자란 것을 보니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군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6개월이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서류상으로는 제가 발견된 주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었죠. 물론 사실이 아닌지는 모르지만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헤어진 셈입니다.
팟캐스트: 부모님이 제니 씨의 자식들과 친밀한 관계인가요?
제니: 네. 아버지 어머니는 손자 손녀들과 친밀한 관계죠.
팟캐스트: 항상 입양의 충격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죠. 하지만 입양아의 아이들은 버림받지도 않았고 부모를 알기 때문에 관련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롭다고 합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이지만, 아이들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으시나요? .
제니: 정확히 어떤 말이시죠?
팟캐스트: 배경에 대한 의문이나, 다른 문제가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자식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해서요.
제니: 아니오. 그런 느낌은 받은 적이 없어요. 제 부모님이 그 아이들에게 있어서 뿌리 역할을 해주시고 있죠. 그리고 아이들도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걱정하는 문제는, 스웨덴의 입양아들은 한국 출신입니다. 그리고 많은 스웨덴 한국 입양아들이 입양 부모와의 어떤 연결고리도 없죠. 그 사실에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많은 입양아가 평범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수많은 입양아가 끔찍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거나 처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순진하게 입양아들이 좋은 상황에서 자라났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스웨덴의 입양아 중 절반이 끔찍한 상황에 부닥쳐 있더군요.
팟캐스트: 스웨덴에서 말이죠?
제니: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입양에 대해서 표현하기 위해서 음악도 사용하셨죠. 말해주실 수 있나요?
제니: 네. 저에게 음악은 치료 방법과 같아요. 저는 콘서트 피아니스트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죠. 그냥 평범하게 저를 위해서 연주하는 편입니다. 치료 절차인 셈이죠. 제가 처음으로 배운 감정 분출 방법의 하나였습니다. 두 살에서 세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죠. 어렸을 때부터 제 음악을 작곡했고 대부분 아주 슬픈 음악이었어요.
팟캐스트: 음악을 작곡하셨군요?
제니: 네. 제가 가진 감정을 해소하려는 방법이었죠. 모든 음악이 외로움과 슬픔, 버림받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이 조금 무섭네요
-제니 다그렌이 이 작곡한 음악-
제니: 이 음악을 작곡한 시기는 제가 37세였을 때였어요. 꽤 이전에 작곡했죠.
팟캐스트: 그때부터 이미 어머니이셨군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이 음악을 작곡하고 난 뒤 감정이 바뀌셨나요?
제니: 아뇨. 바뀐 점은 입양 제도에 대해서 더 실망하고 더 충격을 받았다는 점이겠죠. 제가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입양 제도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전에는 입양을 부패나 인신매매와 연계해서 생각하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많은 입양아가 구매됐고, 납치당한 경우도 많았고, 금전적인 거래와 부정부패가 많았다는 사실을 배웠거든요. 이 입양 제도 내부의 부정부패가 저를 입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입양에 대해서 낭만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입양이 아주 좋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입양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죠. 전 입양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생활을 보냈다고 해도 입양은 하지 않겠죠. 입양되면 자라면서 맞지 않고 남들과 닮지 않고, 슬픔을 가지고 자라나게 되어요. 하지만 동시에 집도 있고 물질적으로 풍요를 느끼면서 자라나게 되는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네요. 물질적으로 풍요하냐,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것이 더 좋은지를 말이죠. 물론 입양아 중 일부는 그 두 가지를 전부 누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무언가를 상실한 채로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니: 입양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전 병원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냈어요. 의사들도 많이 만났죠. 16세에 골반을 다쳤고 15년간 관련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첫 1년은 서서 지내야 했어요. 그리고 남편과 이 문제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 남편은 의학적 요가를 권했죠. 그래서 다양한 문제를 위한 다양한 치료를 실험해봤습니다. 그리고 지속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병원도 갔었고 다양한 일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요가를 시작하게 됐을 때 요가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고통의 시점이 친부모와 연관이 없어서 시작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이건 요가식 접근 방법입니다. 모두에게 효과가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맞았고, 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고통 중 상당수는 육체적인 고통이었고, 상당수가 제가 친어머니와의 관계 부재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고통을 가지는 것이 이상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치유였죠. 어떤 일을 겪어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가를 42세 때 시작했고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팟캐스트: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죠?
제니: 정답을 얻었기 때문이죠. 진짜 정답들을 얻었어요. 왜? 어떻게? 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제가 골반 부상을 입어서 골반이 뒤틀린 채로 굳어버렸어요. 요가에서는 첫 번째 차크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뿌리에 관한 내용이죠. 0세에서 3세까지의 친모와의 관계와 연관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문제가 있었죠. 하지만 요가를 통해서 치유될 수 있어요.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말이죠. 모두에게 맞지는 않지만, 저에게는 맞았습니다.
팟캐스트: 그래서 현재 고통을 덜 받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제니: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고통을 받고 있어요. 그래도 이제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지 않아도 되죠.
팟캐스트: 사람들이 감정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으로 드러난다고들 하죠.
제니: 네 그렇죠.
제니: 감정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제니: 네. 물리적인 고통으로 나타났다고 봐요. 그래서 요가가 저에게 맞았죠. 그리고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친부모와의 관계가 직접적인 현재의 상태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상당히 급진적일 수 있으니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하지만 저에게는 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니 다그렌이 작곡한 음악-
제니: 전 감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몇몇 사람들이 저에게 스웨덴으로 입양된 것을 감사하라고 하죠. 그러한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스웨덴 자체에서 자라난 것은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팟캐스트: 음악은 계속하셨나요?
제니: 네. 했습니다.
팟캐스트: 입양이나 다른 주제에 관련해서 하셨나요?
제니: 제가 음악을 작곡할 때는 입양에 집중해서 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나오는 편입니다. 단어와 음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요. 하지만 진행될 때의 느낌이 있죠. 상실, 외로움, 사랑받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제니 다그렌이 작곡한 음악-
제니: 그리고 자신의 가치가 더 낮다고 느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좋은 대화였습니다. 제니 씨.
제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팟캐스트: 오늘의 제니 다그렌 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더 말씀하실 것은 없나요?
제니: 오늘의 저는 더 많은 것을 알지만 그래서 더 모른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나요?
팟캐스트: 네.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모른다는 말이죠?
제니: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말할 것은 없네요.
팟캐스트: 현재 스톡홀름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입양아들과의 관계를 유지 중인가요?
제니: 네. 한국계 입양아 친구들과 아직도 관계를 지속하고 있어요.
팟캐스트: 20대나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이 지금의 제니 씨를 만난다면 알아볼 것 같나요?
제니: 제 외모를 통해서는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 자신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때보다 더 외향적이고 더 행복하죠.
팟캐스트: 슬픔을 마주 보고 처리하기 시작하셨으니까요?
제니: 네. 물론 시간이 걸릴 그것으로 생각하지만 전에 비해서 더 개방적으로 다가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입양아들에게 가끔 이 질문을 하고, 흥미로운 반응이 나오는데…. 24세 때에 고생하고 계셨죠?
제니: 제 삶 전체가 고난의 연속이었죠.
팟캐스트: 아 네. 그래서 20대 초반의 제니 씨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제니: 자기 스스로 상냥하고 좀 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팟캐스트: 그리고 삶이 알아서 해결되라고요?
제니: 네 그럴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질문을 사전에 하셨으면 더 좋은 대답을 했을 겁니다.
팟캐스트: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니: 그래도 자기 스스로 상냥하고 좀 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고 싶죠. 자기 자신에 확신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팟캐스트: 감사합니다. 제니 씨. 만나서 기뻤습니다.
제니: 저도 만나서 기뻤습니다.
-제니 다그렌이 작곡한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