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인 토마스 융커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유아일 때 입양되어 자랐고 항상 출생지인 한국에 관심을 가진 채로 자라났다. 2019년에 그는 휴학하고 한국으로 이주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 그는 한국 뿌리를 찾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삶에 관해서 탐구하며 입양이 어떻게 그의 삶을 바꾸었는지 생각했다. 이 인터뷰는 2020년 초반에 그가 9개월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막 덴마크로 돌아온 뒤에 진행되었다.
토마스: 제 이름은 토마스 융커라고 합니다. 덴마크의 작은 마을 하닝 출신이죠. 50,000명의 거주자가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덴마크어 자기소개)
팟캐스트: 최근 한국에 가서 거주하셨죠?
토마스: 네 그렇습니다. 9달 거주했죠. 덴마크에 돌아온 지 10일이 되었습니다. 한 1년 전에 할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휴학했거든요. 덴마크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중간에 잠시 휴학을 하는 일은 아주 평범합니다. 그래서 휴학을 했죠. 성장하면서 항상 한국에 일정 기간 동안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기 좋은 시간대라고 생각해서 한국으로 이주하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아파트도 구했죠. 그리고 한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주하기 이전에 일자리와 아파트를 찾아서 입사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바로 이주를 해서 빠르고 손쉬웠습니다.
토마스: 2002년에 제 부모님과 함께 여동생을 데리러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고작 3살이라서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리고 2019년 여름에 한국에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생활이 한국에서의 최초 장기 거주였던 셈이네요.
팟캐스트: 처음 도착하셨을 때 아주 기쁘셨겠네요.
토마스: 네. 한국은 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죠. 전 한국 혈통이고 한국 유산을 물려받았으니까요. 제가 혼자 왔고, 아는 사람도 없고, 나라도 잘 모르는 상황에의 생활은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생활하는 것에 힘들기도 했지만 대단한 경험이었지요.
팟캐스트: 많은 입양아가 언급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는 경험도 해보셨나요?
토마스: 네 확실히 느꼈습니다. 제가 사는 덴마크 지역은 인종 구성이 다양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살고 있던 지역과는 달리 한국은 좀 더 인종적으로 저와 비슷했고 그래서 잘 섞여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팟캐스트: 어떤 일을 하셨다고 했죠? 교육 분야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토마스: 네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2달 뒤에는 학원에서 나와서 7달 동안은 개인 과외를 했어요.
팟캐스트: 한국에서 놀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토마스: 한국에서 가장 놀란 점은, 한국에 휴가를 가면 한국 사람들과 가까이 생활하지 않죠. 그냥 여행하면서 구경하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 직접 살다 보니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경쟁적인 국가입니다. 사회적인 구조, 교류, 직업, 모든 일이 덴마크와 비교했을 때 훨씬 치열합니다. 그래서 제 나잇대의 한국 친구들은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고요. 그게 저를 가장 놀라게 한 점입니다. 제 부모님과 같이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때는 느끼지 못했거든요. 제가 가끔 방문할 때는 사람들이 겪는 경험을 느끼지 못했으니 그 경험들을 절 가장 놀라게 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셨죠?
토마스: 덴마크에서는 항상 여러 운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도 계속 그 운동을 지속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아마추어 축구팀에 들어갔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또래의 한국인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절 받아주어서 운이 좋았죠.
팟캐스트: 거기에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셨죠? 한국어를 하실 수 있나요?
토마스: 조금은 합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안녕하세요. 정도밖에 못 했어요. 하지만 한국에 왔을 때 개인 과외를 받았어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지낼 거라는 사실을 알았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9달 동안 제 한국어가 많이 발전했어요. 처음에 한국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좀 이상했습니다. 친구들 영어는 괜찮긴 했지만 유창하지는 않았고 제 한국어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제가 영어를 가르쳐주고 친구들은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줘서 많이 발전했습니다.
팟캐스트: 사람들이 토마스 씨를 볼 때 뭔가 다른 특징을 발견했나요?> 아니면 그냥 한국인으로 봤나요?
토마스: 많은 사람이 절 보기만 해서는 평범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자라난 한국인이요. 제 외모가 한국식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제가 말하기 시작하면 외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팟캐스트: 여성분들은 어땠나요? 한국에서 데이트해보신 적은 있나요?
토마스: 네. 한국에서 데이트한 적 있습니다. 한국에서 여자친구를 4달에서 5달 정도 사귄 적이 있고, 다른 여성들과 데이트도 몇 번 해본 적이 있죠. 흥미롭고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팟캐스트: 인종 구성이 다양하지 않은 지역 출신이라고 하셨죠. 덴마크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토마스: 음…. 덴마크에서 여성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어요. 관련 문제로 실패한 적도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한국 여성들과 데이트할 때는 한국 여성들이 저를 외모적으로 다르다고 인식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덴마크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이죠.
팟캐스트: 확실히 매력적인 분이니 확실히 다른 국가에서도 여성과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시겠네요.
토마스: 저 자신을 그렇게 자화자찬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잘 모르겠지만 한국 여성을 만난 경험 자체가 좋았다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한국 여성과 덴마크 여성과는 차이점이 있나요?
토마스: 여러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제가 덴마크에서 성장했으니 제가 진지하게 누군가와 교제를 한다면 유럽 사고방식, 정확히는 덴마크 사고방식을 가진 상대와 더 잘 맞겠죠. 한국 여성들의 경우는…. 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수가 유럽 여성보다는 더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보다 자유주의적인 면이 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 여성 중 상당수가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죠.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니 국 여성 중 상당수의 사고방식이 덴마크 여성보다 덜 성숙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덴마크 여성들은 더 이른 시점에 독립해서 더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죠.
토마스: 다른 예를 들자면…. 워낙 다양한 예가 있어서 하나만 집어내기가 어렵네요. 동성애나, 다양성에 대한 관점도 있습니다. 유럽 사고방식이 좀 더 개방적이고 한국 사고방식은 좀 더 보수적이죠. 적어도 제 경험은 그랬습니다.
토마스: 여자친구와의 경험이 떠오르네요. 한국에서 지낼 때 장기간 교제한 여자친구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 21살이었고 그분은 30살이었죠. 저보다 9살 연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놀랐던 점은 저와 데이트할 때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친구와 있다고 하던가, 일하고 있다든가. 처음에는 농담으로 알았습니다. 30살인데 말이죠.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죠.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팟캐스트: 한국 음주 문화는 어땠나요? 덴마크와 비슷했나요?
토마스: 좀 더 거칠다고 봅니다. 항상 자라면서 덴마크 음주 문화가 거칠다고 생각했지만, 한국 문화와 비교할 바는 못되죠. 금요일, 화요일, 수요일, 주중에도 어디든지 술집에 가면 빈 소주병과 취한 사람들을 볼 수 있죠. 처음 봤을 때는 기묘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가면 적응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놀면서 술 마시는 법을 잘 안다고 볼 수 있네요.
팟캐스트: 한국 문화에서 가장 마음에 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토마스: 제가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든 점은 패션 문화였습니다. 한국의 패션 문화를 즐겼고,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모두가 멋지게 보이려고 노력하죠. 물론 나쁜 면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과도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압박도 있습니다. 모두가 외모에 신경 쓴다는 점은 대단하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주 문화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래방 문화도 좋았고 한국 문화에 대해서 마음에 든 것이 많았습니다.
팟캐스트: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이 항상 패션적으로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인들이 덴마크인들보다 더 패션적으로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토마스: 예. 어떤 면에서는 한국 패션이 덴마크 패션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두 나라의 패션은 최소주의적 경향이 있고 둘 다 제 마음에 들거든요. 그래서 덴마크 패션 자체는 비슷하다고 보지만 차이점은 많은 한국인이 매일 잘 차려입는다는 점입니다. 매일 외양을 바꾸죠.
팟캐스트: 특히 여성들에게서 항상 보기 좋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죠. 그리고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여성들이 메이크업을 버리고 꾸미지 않는 운동이 있었어요.
토마스: 네. 봤습니다. 관련 사회적 압박이 너무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이러한 저항 운동이 생기는 이유라고 생각하고요.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알고 공감합니다.
팟캐스트: 한국에 있었을 때 더 덴마크인의 정체성을 느꼈나요?
토마스: 덴마크인의 정체성이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어떤 관점에서는 정말 고향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덴마크에서보다 주변에 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로 가득한 광경과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서 한국어로 편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제 덴마크인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하기도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어로 말하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을 눈치챘고, 제가 영어로 말해도 한국 영어와 다른 악센트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챘죠.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도 우리가 어떤 토론을 할 때 똑같은 나이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알았고 더 덴마크와의 관계를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체성을 자각하기도 했지만, 아니라고 할 수 있네요.
팟캐스트: 한국에 가셨을 때 친부모 탐사를 진행하셨나요? 아니면 자료만 받으셨나요?
토마스: 한국에 돌아가기 이전에 친어머니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제 친어머니와 저는 홀트 기관을 통해서 연락되어서 서로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죠. 매달 서로의 상황과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어머니께서는 절 만날 수 없어요. 절 입양 보내고 난 뒤에 새로운 남성분과 만나서 결혼하셨죠. 두 아이를 낳았고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지내고 계셔요. 즉 저와 직접 교류를 하실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해요. 너무 위험하기도 하고, 남편이 알아낸다면 어머니와 이혼하실 수도 있겠죠. 그래서 어머니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요. 이미 저와 이메일을 하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위험을 감당하고 계시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존중하기 때문에 좀 더 일을 진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팟캐스트: 처음에는 실망하셨겠군요?
토마스: 처음에는 당연히 실망했죠. 물론 무시당했다든가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실망했고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어머니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오히려 용감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데도 저에게 반응해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계속 비밀리에 연락했고요. 저와 이메일을 해준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죠.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감정적인 판단이었고, 그 뒤에는 감사했습니다.
팟캐스트: 친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요? 그리고 그 일을 말씀드릴 수 있었나요?
토마스: 네.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싶었던 일을 말할 수 있었어요. 대화보다 이메일이 좋은 점은 말하고 싶은 모든 일을 말하고 바꾸고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죠.
팟캐스트: 영어로 작성하셨나요?
토마스: 네 영어로 작성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영어를 못하시지만, 홀트 기관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어머니에게 전달해주었죠. 홀트 기관에서 어머니와 저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물론 직접 교류는 금지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었고, 제가 원하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친어머니를 직접 모르지만, 전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어머니가 절 입양시킨 것에 대해서 어떤 원망도 품고 있지 않고, 제가 덴마크에서 받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있고, 어머니가 잘 지내면 좋겠다고 말했죠. 제가 말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할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제가 9달에서 10 달 정도 한국에서 살아보니 어머니가 느끼셨을 압박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군요. 친구와의 대화, 그들의 관점, 감정, 부모,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을 들어보니 확실히 어머니에게 있어서 어려운 상황이더군요. 그리고 1년간 한국에서 생활해보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토마스 씨는 젊으시니, 나중에 가면 어머니와 직접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토마스: 네. 그게 제 희망 사항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강제로 만나지는 않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강제적으로 친어머니를 만난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께서 준비가 안 된 채로 만나면 저만 만족할 테고, 그럼 저도 기쁘지 않겠죠. 의미가 없어지는 일입니다. 둘 다 원할 때 만나야죠. 한국은 계속 바뀌고 있고 더욱더 현대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난 뒤 2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죠. 그러니 앞으로 21년 동안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어머니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입양아들에게 있어서 친부모의 정보가 인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시나요?
토마스: 음…. 인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모를 반드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친어머니와 연락이 된 뒤, 한국에서 살면서 이해한 사실이죠.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정보를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인권이면 좋겠지만 않은 이유도 이해합니다. 이 문제에서도 양면성이 존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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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다른 입양아들처럼 한국에 있었을 때, 입양되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해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토마스: 네 물론이죠. 한국의 거리를 걸으면서 마천루들을 볼 때마다 제 삶이 어땠을까, 제 성격이 어땠을까 가정해본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달랐겠죠. 그래서 입양되지 않고 평범한 한국인 가정에서 자라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팟캐스트: 2019년에는 양부모님도 같이 왔었지요?
토마스: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그분들도 한국에 관심이 있고 토마스 씨를 지원해주시고 있나요?
토마스: 네. 두 분 다 한국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K-드라마를 자주 보거든요. 그래서 두 분 다 저를 지원하셨고, 제가 덴마크의 삶에 감사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듣고 말할 수 있을 때부터 저의 유산이나, 제가 왜 부모님과 다르게 생겼는지, 어디 출신인지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 부모님에게 졸업 선물로 3명이 같이 한국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죠. 부모님들은 당연히 동의하셨습니다. 부모님도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제 고향 문화도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제게 부모님이 해준 또 다른 말은 제가 한국인일 수도 있고, 덴마크인일 수도 있고, 두 부모님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고, 네 명의 부모님이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며,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너희를 지지해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살고 싶다면 지지해줄 거고, 덴마크에서 살아도 지지해준다고 말씀하셨죠.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팟캐스트: 대단하네요.
토마스: 네. 정말 대단한 부모님이시죠.
팟캐스트: 한국에 가셨을 때 9달만 지낼 그거로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어쩌다 보니 기간이 짧아지게 됐나요?
토마스: 9달보다 적게 있을지 많이 있을지 정하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한국에서 살고 싶어서 갔고 매일매일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고향에 돌아온 이유는 한국에 직장이 있었지만, 제가 2021년 8월에 진행해야 하는 석사 학위가 있어서 돈을 모아야 해서 돌아왔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한국에 살면서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국제적 대도시에서 사는 남성이 돈을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죠. 서울에는 흥미로운 일들이 너무 많고 즐기고 싶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우선 덴마크에 돌아와서 1년간 돈을 모은 뒤 대학교 진학이었습니다.
팟캐스트: 어떤 전공인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토마스: 한국학 석사입니다. 1년 동안은 한국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웁니다. 다음 2년은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마지막 해에는 아시아 문화의 차이점등을 배우죠. 아주 흥미로운 방식이에요.
팟캐스트: 9개월 동안만 한국에서 살다 오셨지만, 문화적 충격을 겪으셨나요? 두 나라가 문화적으로 차이가 심하니까요.
토마스: 확실히 차이가 나죠.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덴마크 직행 항로가 없어서 서울에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는 많은 한국인이 탑승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에서 덴마크행 비행기를 타니 덴마크인과 네덜란드인들만 있더군요. 그래서 스튜어디스가 저에게 물을 마시겠냐고 물었고, 전 고개를 끄덕였죠. 하지만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니 덴마크어나 영어로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죠. 한국에 있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쓸모가 많아서 그게 버릇이 된 거죠. 덴마크에서는 바꿔야 할 작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덴마크와 한국 간 문화적 차이가 커서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을 떠났을 때 슬프셨나요?
토마스: 저만의 결정이었다면 아직도 한국에 남아 있었을 겁니다. 한국을 떠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대도시에서 사는 혼자 사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하루하루가 모험 같았죠. 매일 다른 일이 있었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진심으로 경험했고 제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고 현재 한국을 떠나는 일은 실망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덴마크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죠.
팟캐스트: 현재 지금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시면, 다시 한국에 돌아가 거주하고 싶나요?
토마스: 단언하기 어렵네요.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의 문제입니다. 제가 한국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요.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확실히 한국에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살지 않을 수도 있죠. 여러 가능성이 공존합니다. 한국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팟캐스트: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단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쟁적인 직업 문화 같은 문제 때문인가요?
토마스: 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마음에 들지만, 너무 심한 예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동시에 덴마크도 마음에 들거든요. 편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산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되죠. 덴마크에 친구들도 많고, 가족도 있고 덴마크 문화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요. 덴마크에서 자랐으니 여기에서 지속해서 살아갈 겁니다.
팟캐스트: 향수를 느낀 덴마크 문화는 무엇인가요? 놀란 점도 있나요?
토마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물론 좋은 친구들도 많았고 좋은 대화도 많았지만, 친구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고, 저도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대화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죠. 반면에 덴마크어로의 대화는 좀 더 자유로웠습니다. 또 덴마크 유머도 그리웠습니다. 덴마크식의 자유주의적 사고도 그리웠고요. 한국에서는 어떤 농담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되어 있어 친구들이 제 대화를 교정해주었죠. 물론 친한 한국 친구들이 있어서 그 문화를 배울 수 있었지만, 덴마크의 사회적 규범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팟캐스트: 다시 아기가 된 기분이셨겠네요.
토마스: 네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여자친구들이 저를 항상 가르쳐주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고, 어떤 상황에서 맞고 틀린 일을 가르쳐 주었지요. 다시 유아 단계로 돌아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전부 다 다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많이 배웠죠.
팟캐스트: 덴마크에 돌아간 지 몇 주정도 지났는데, 한국이 토마스 씨를 바꿨다는 느낌이 드나요?
토마스: 네. 한국에 가기 전에는 100% 덴마크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생활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이 제 관점을 넓혀 주었습니다. 한국 친구들에게 배운 정보를 제가 받아들였고 제 일부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가르쳐 준 지식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좀 더 한국인 같은 느낌이 들고 한국인 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팟캐스트: 덴마크 유머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덴마크 유머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토마스: 좋은 예가 하나 있는데요. 제 친구와의 이야기입니다. 친구와 같이 인터넷으로 옷을 보던 도중이었습니다. 한국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하는 신생기업 쇼핑몰이었고요. 그래서 한국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었고, 그때는 제 친구에게 현금을 준 다음에 절 위해서 결제할 수 있는지 물었죠. 친구는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꿔서 주문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 달라고 했죠. 그래서 친구가 지금 돈이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아니 돈은 필요 없어- 라고 농담 식으로 말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그런 농담이 흔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리가 좋은 친구니까- 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친구가 이해한 줄 알았어요. 웃었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제가 돈을 돌려 달라고 이야기하니 친구가 돈을 써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째서 돈을 썼는지 물어봤는데, 친구가 돈을 가져도 된다고 그랬던 것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농담이었다고 하니 친구가 그게 농담이었냐고 되물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통할 농담이었고, 돈도 돌려받긴 했죠.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었고요. 하지만 소통의 문제, 그리고 언어적 차이점에 만들어낸 문제라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덴마크 친구들이라면 돈 가져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도 농담이라는 걸 인식할 거라는 말이죠?
토마스: 네. 이미 그 친구에게 비싼 생일 선물도 줬거든요. 그래서 아 그래. 내가 가진 거 다 가지고 가. 생일 선물도 받았으니까. 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거죠. 문화적 차이점에 대한 소소하게 재밌는 이야기였습니다.
팟캐스트: 제가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 느꼈던 사실은 대단한 경험을 겪고 난 뒤라 전 바뀌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죠. 토마스 씨도 자신은 바뀌었지만, 남들은 바뀌지 않은 그런 느낌을 받으셨나요?
토마스: 네.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겪은 일을 말해도 전부 이해하지 못하죠. 거기에 없었으니까요. 운이 좋게도 제 친구들은 제가 겪은 일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제가 하던 일을 알려고 했고요. 하지만 전부 이해하지 못하고, 제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없죠. 제가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1년간 살았다고 해도 한국에서 살았던 1년과는 달랐을 겁니다. 한국은 저에게 특별한 나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은 제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요. 물론 친구들이 최대한 노력하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외롭죠.
팟캐스트: 여동생도 한국 입양아 출신이라고 하셨죠?
토마스: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하지만 토마스 씨보다 어리신 거죠?
토마스: 네. 18살입니다. 저보다 3살 어린이죠.
팟캐스트: 여동생분은 토마스 씨와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토마스: 네. 확실히 다릅니다. 개인마다 관점이 다르죠. 저는 항상 제 고향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지만 제 여동생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 관심이 없었죠. 무관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동생의 경우 자기 자신을 순수한 덴마크인으로 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저와 제 여동생을 다르게 대하셨지만, 저와 제 여동생에게 저희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토마스: 덴마크에는 백인 친구들밖에 없어요. 제가 백인 친구들만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 출신 지역은 인종적으로 다양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불만을 가진 적은 없어요. 친구들과 걷고 있으면 제가 덴마크 출신이라고 모두 인식하죠. 하지만 한번 한국 출신 여성과 같이 덴마크에서 데이트했습니다. 놀이공원에 갔는데 모든 직원이 영어로 대답하더군요. 아시아계 관광객이 많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제가 완벽하게 덴마크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제가 덴마크어로 답하면, 사람들이 그걸 듣고 제가 덴마크인이라는 사실을 아니,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인식하는지 이해도 합니다. 많은 관광객이 오고 가니까요. 인종차별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차이점을 느끼기는 하지만 분노할 일은 아니죠.
팟캐스트: 한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려고 하거나 관심이 있는 입양아들에게 줄 수 있는 조언이 있나요?
토마스: 제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즐겨라! 입니다. 고향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하고 한국 문화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매일 한국을 느끼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토마스: 네. 모국에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기회입니다.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감사합니다. 토마스 씨. 토마스 씨에게 연락하거나 SNS상으로 구독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토마스: 인스타그램이 있습니다. Thomas Juncker 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어요.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