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 에피소드 6: 벤자민 화이트

Audio available at 7 am EST on November 9, 2020.

출생지인 한국에 파병된 미 육군 중위 벤자민 화이트는 26세이며 한국계 입양아다. 그는 게이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그가 군인이자, 한국계로서 사회가 그가 가진 모든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가에서 다른 한국인과의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벤자민: 제 이름은 벤자민 화이트입니다. 대한민국 전주에서 강기석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뒤로 입양되어서 세인트루이스 근교에서 자랐습니다. 

팟캐스트: 지금은 미군 소속으로 서울에 배치되어 계신 거군요?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입대한 지 얼마나 지났죠? 

벤자민: 전 장교 직위로 2016년에 입대했습니다. 대학교 학위를 따는 동안 ROTC를 진행했고, 대학교 졸업 후 미 육군에 육군 소위로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팟캐스트: 그래서 어떤 학문을 전공하셨죠?

벤자민: 정부, 국제 업무와 관련된 전공입니다. 정치학과 외교학 학사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팟캐스트: 외교관이 되긴 위한 진로인가요?

벤자민: 네. 제 꿈은 외교관이 되거나 적어도 국제 정치과 활동과 관련된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겁니다. 국무부에서 일하거나 국방부에서 일하면 좋겠습니다. 제 꿈의 직업입니다. 

팟캐스트: 임관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럼 장교 교육을 받으시면서 한국에 배치되실 생각을 하셨나요? 

벤자민: 군대에 입대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장교가 될 수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에는 대부분 병사는 사병과 부사관입니다.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팟캐스트: 다른 두 진로가 있는 셈이로군요? 그렇죠?

벤자민: 네. 다른 두 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주어진 정보와 시간과 관련해서 장교가 더 좋은 진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2016년에 임관했을 때 미 육군 화학 병과로 배정되었습니다. 화학 병과란 미군이 상대하게 되는 CBRN… 화학, 생물학, 방사능, 그리고 핵무기 관련 문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병과입니다. 그리고 제가 비교적으로 신병이었을 때 다음 부대로 배치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부대로 배치될 때 선호 지역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미군 기지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선호 지역 세 곳을 전부 한국 기지로 선택했습니다. 입양되고 나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본 적이 없었으니 했던 선택이었습니다. 나중에 연락이 와서 한국에 배치되고 싶냐는 질문이 왔습니다. 가고 싶다고 했고, 그 선택을 한 시기가 2017년이었습니다. 보통 가족이 없이 혼자 배치되는 군인의 경우 1년의 파병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연장 신청이 가능해, 계속 연장 복무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아주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문화, 음식, 사람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인,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팟캐스트: 그리고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벤자민: 26세입니다. 

팟캐스트: 한국에 파병된 군인으로서 생활을 즐기셨다고 하셨죠. 한국에 있으면서 양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벤자민: 네 그런 경우가 확실히 존재합니다.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과 지내고,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내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확실히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느껴지는 평범함이 존재합니다. 저만 아니라 많은 한국계 입양아들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다문화, 다인종 환경에서 다양한 가족들과 자라나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미국 중서부 출신인데, 중서부의 인종 구성은 다양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평범한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눈에 띄게 됩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평범하게 지내면서 주변에 섞여 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이득이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 이름을 쓰신 적도 있나요?

벤자민: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할 때만 사용했습니다. 많은 분이 절 한국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제 한국군 친구들이 화이트나 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기석이나 강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어로 부르기에는 더 쉬우니까요. 그래서 이름을 혼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입양아로,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방법입니다. 

팟캐스트: 성장하시면서 사람들이 화이트 씨가 백인일 그것으로 생각하기도 했군요?

벤자민: 네. 제가 한국에 와서 배치된 부대마다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배치될 때마다 배치 목록이 부대에 전달됩니다. 따라서 어떤 병사가 부대에 배치될지 미리 압니다. 벤자민 화이트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백인이 오는 줄 알지만, 제가 배치될 때나 회의에 참석해서 “제가 벤 화이트입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놀랍니다.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 여기 일하려고 왔고, 그런 반응은 흔하게 겪었습니다. 

팟캐스트: 청취자분들이 군대 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니, 하루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물론 군대 생활이니 보안상 알려주실 수 없는 경우도 많겠지만요. 

벤자민: 군대 생활은 아주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다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예정되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오전 4시 반에 기상합니다. 5시에 육체 단련 이전 운동을 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만납니다. 6시 반에는 조회를 위해 모든 군인이 모입니다. 그 뒤로 한 시간 정도 신체 단련을 합니다. 9시 반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좀 더 일찍 출근해서 9시에 출근합니다. 조용할 때 저에게 온 이메일들이나 일거리를 확인합니다. 그 뒤로 17시, 오후 5시까지 일합니다. 그 와중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육하거나, 교육 감수하거나, 장교로서 여러 회의에 참여합니다. 하루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계획이 진행되는지에 따라서 생활도 달라집니다. 

벤자민: 제 현재 보직은 미 육군 의장대 소속입니다. 한국에서 여러 행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의 경우에는 한국 전쟁 70주년 추모식과 일주일 전에 일어난 휴전협정문 작성 기념식을 준비하느라 아주 바빴습니다. 물론 두 행사 전부 훌륭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둘 다 찬사를 받았습니다. 

팟캐스트: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방한했을 때 그곳에 있었나요?

벤자민: 네. 우리 의장대가 유해 송환 식을 진행했습니다. 147명의 한국군 유해가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송환되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 절차에 참여하셨습니다. 또한, 유엔군 유해를 하와이로 송환해 관련 조사를 하는 절차에도 우리가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다국적 명령체계에서 일하는 일은 꽤 희귀한 경험입니다. 송환을 시행하는 주체 국가, 그리고 한국 전쟁 때 지원을 했던 참여국들도 참여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동맹국 간의 공통점을 확인하는 일도 흥미로운 절차입니다.

팟캐스트: 군대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벤자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국에 배치되는 명령을 받은 뒤에 한국에 도착해,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였습니다. 이곳이 어머니가 살던 곳이고, 제가 태어난 땅이지만, 돌아오기 23년이 걸렸습니다. 그 상황 자체가 제가 살면서 잊지 못할 일입니다. 물론 개인적 입양아 관점의 기억입니다. 군대와 일의 관점으로 보면 훨씬 더 복잡합니다. 관련 기억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친구를 만든 기억, 훈련을 받을 때의 기억도 있습니다. 군대에 있어서 특수한 경험은 여러 사람과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는 점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말하듯이 기분 나쁜 일도 수용해야 합니다. 훈련은 어렵고 지루하며 사람을 마모되게 합니다.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동료들, 휘하 병사들, 그리고 친구들이 그 상황을 낫게 하거나 더 끔찍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상황은 힘들고 어렵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고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점을 찾았던 상황입니다. 물론 힘들고 나쁘긴 했습니다. 

팟캐스트: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느낌이군요?

벤자민: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장교로서 4년간 복무한 뒤 복무연장을 고려하게 되나요? 결정 방법이 어떻게 되죠? 

벤자민: 저와 같이 ROTC 장학금 과정을 거치게 되면 특정 기간을 복무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미 육군이 제 대학 교육을 위해서 비용을 냈으니 그 대신 일정 기간을 미 육군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의무복무 기간 이후에도 군대에 남아 있을 예정입니다. 최소 20년간은 복무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어떻게 진행될지 보면서 결정되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만난 상급자들, 동료들과 사람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특수한 경험입니다. 다양한 배경, 환경,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일을 하게 됩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다양성을 접할 기회는 없었을 겁니다.

팟캐스트: 23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도착했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오셨죠? 미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시고 오셨나요?

벤자민: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만약에 한국에 오게 된다면 군대 관련 방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입대는 항상 선택지에 존재했습니다. 전 군인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스콧 공군 기지 근처에서 자라면서 군인들이 항상 주변에 있었습니다. 군인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자랐고, 한국 파병 경험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입대가 한국 파병과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 자체는 대학 때, 죄송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대학 지원을 하면서 군 생활을 제 진로 중 하나로 염두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군 생활을 진로로 정했을 때 기회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어디에 배치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물론 확정적인 배치는 아닙니다. 만약에 미 정부에서 당신이 더 필요한 곳이 있다고 정하면 그쪽으로 배치가 되게 됩니다. 제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 육군에서 한국에 파병 여부를 물었고 제가 그 기회를 잡아, 3년 뒤에 이곳에 있습니다. 

팟캐스트: 벤자민씨가 한국계 입양아라서 한국 배치에 이득을 본 그거로 생각하시나요?

벤자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미군에 이렇게 아시아계, 그리고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특정 배치 방법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는 여러 정보를 제공하고 누가 어디로 가고 싶어서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친족들 때문에 많은 한국계 미국인 군인들과 아시아계 군인들이 한국으로 오고 싶어서 합니다. 한국계 미국인 군인 중 상당수가 한국에 친척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군에서도 한국계이니 한국에 파병되어도 된다는 판단을 하고 저를 이곳에 배치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군인들은 한국에 파병되면 고생하게 됩니다. 한국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있는 기지들보다 훨씬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다른 문화이고, 언어를 표기하는 데 있어서 다른 알파벳을 사용하고, 많은 사람이 영어를 하지 못하고 음식도 다릅니다. 따라서 18살의 젊은 군인이 한국에 파병되면 당연히 고생하게 됩니다. 한국에 파병되는 많은 군인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경우에는 한국의 좋은 점을 찾고 한국이 제공할 좋은 기회를 찾아야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을 좋은 파병지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주한미군 지도층이 한국을 좋은 파병지로 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평택 기지를 신축했다고 들었는데요.

벤자민: 아 네. 평택 기지 자체는 한국에 오랫동안 존재했습니다. 이 기지 자체를 지은 시기 자체는 기억할 수 없지만 최근 아주 크게 확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 기지의 철수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최소 3, 5000명이 넘는 인원이 평택과 캠프 험프리즈에 주둔하게 된다고 예측합니다. 중요 명령체계 상당수가 평택으로 이전했고 대부분 사람이 험프리즈를 통해 배치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아파트 건물도 신축하고 있고, 인프라도 신축 중입니다. 작은 미국 마을과 같습니다. 

팟캐스트: 지금 3,5000명이 주둔 중이라는 건가요? 아니면 미래에 그렇게 된다는 건가요?

벤자민: 미래에 3,5000명이 된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2,2000명 정도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친부모나 친족 조사를 하고 싶으신 적이 있었나요?

벤자민: 네. 사실 지금도 친족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몇 번 시도를 해보긴 했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파병되었을 때 조사를 시작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많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 아니니 또 다른 조사를 시작해 진행 중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보다 좀 더 어려운 상황이지만 조사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예측하였습니다.

팟캐스트: 어떤 문제를 겪고 계시죠?

벤자민: 사실 부모님의 이름과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년월일, 출생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을 찾으려고 하는 일 자체는 어렵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제공하지 않으셨고 이사를 여러 번 하셔서 더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점을 이으면서 어디로 이사 갔는지 찾아내는 일이라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서울 경찰청에서 제 조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경찰에 연락하셔서 조사하셨군요?

벤자민: 네. 

팟캐스트: 군인이라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실 수 있었나요? 물론 입증하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 경우에는 그렇다고 봅니다. 제가 친분을 나누게 된 한국군 원사님께서 저에게 서울 경찰청에서 근무하시고 있는 동기분을 소개하셨습니다. 원사님이 헌병 출신이십니다. 제 이야기를 동기분에게 설명하셨고, 상관분에게도 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사님과 같이 경찰청에 방문해서 인터뷰와 상담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경찰청에서 절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좋은 연락망을 구축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제가 군인이라서 운이 좋았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의 많은 일은 인맥에 기반을 뒀고, 사람 관계와 인맥에 따라서 여러 가능성이 열리죠.

벤자민: 동의합니다. 직급과 인맥이 한국에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미군 소속이라는 점이 이런 면에서는 작은 이득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관계 형성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팟캐스트: 홍대나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에서 성장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신적 있나요?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여기로 이주를 했다면, 여기에서 자라났다면 어땠을까,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 무엇을 하고 있겠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판단을 하고 있어서, 그들의 입장이 되었다면 또 다른 관점을 가졌을 겁니다.

팟캐스트: 여자애들이 오빠라고 부르고 그런 일 말이죠?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드는 방식은 미국에서는 없던 방식입니다. 인종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자라나면서 자신들의 삶을 즐기는 광경을 보면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팟캐스트: 사람들이 형이라고 부르면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나요? 

벤자민: 네. 특별한 애정 표현 방식입니다. 형이라고 불리게 되면 기쁜 느낌입니다.

팟캐스트: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인가요?

벤자민: 네 작은 환영의 표시인 셈입니다. 특히 한국 문화와 같이 자라나지 않은 배경의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팟캐스트: 다른 한국 군인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자주 교류를 하시는 편인가요?

벤자민: 자주 교류를 나누는 편입니다. 제 전 보직에서는 많은 한국 군인들과 훈련을 진행했고 한국군과의 합동 훈련 관련 연락을 진행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국계이기도 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싶어서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관점으로 보면 한국계 입양아로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일도 하겠지만 동시에 세계 최고의 군대인 미군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제 동기이고, 한국군 부대들과 관계를 맺고 훈련을 계획하고 진행합니다. 제 휘하 군인들이 가장 훌륭하게 해낸, 그리고 즐긴 훈련 중 상당수가 한국군과의 합동 훈련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기쁘고 무언가 해낸 것 같은 감정이 듭니다. 특히 제 휘하 병사들이 훈련에서 무언가 더 많이 얻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문화적 교류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히 훈련 중에 한국군과 자주 진행하는 행사 중 하나는 MRE 교환입니다.

벤자민: MRE는 즉각 취식형 식품입니다. 미군 MRE를 한국군의 MRE를 교환해 먹습니다. 한국군과 미군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는 셈인데, 저, 제 휘하 군인들, 같이 훈련하는 한국군에 있어서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다른 훈련, 다른 문화,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됩니다. 

팟캐스트: MRE에 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벤자민: 네. 군대에서 만들어 놓은 전투식량으로, 훈련 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을 수 있는 식량입니다. 이미 포장되어 나오고 전식과 후식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24개의 메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팟캐스트: 예를 몇 개 들어주실 수 있나요?

벤자민: 소고기 라비올리가 있습니다. 이미 포장되어 나오고 3년간의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차갑게 먹거나 뜨겁게 먹기도 합니다. 시간이 없다면 차갑게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먹을 수 있고,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지도 않지만, 훈련 중에는 필요한 물건입니다. 음식과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또 다양한 과자와 간식도 있습니다. 사과 소스도 있고 쿠키나 스키틀즈도 동봉되어 있습니다. 

팟캐스트: 그래서 한국 MRE가 더 낫나요? 아니면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인가요?

벤자민: 한국 MRE도 맛있긴 했지만, 문제는 메뉴가 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볶음밥 종류와 김치, 소시지, 밥, 김, 다른 부분도 있지만 소시지 대신 콩 밖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시지가 있는 MRE가 가장 맛있었습니다. 

벤자민: 그리고 한국군에서 사용하는 가열 방법이 더 낫다고 봅니다. 미군의 경우에는 물을 넣어 가열하는 방식인데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군 전투식량의 경우에는 잡아당기면 데워집니다. 5분에서 10분 뒤에는 가열되어서 먹을 수가 있습니다. 따뜻한 음식을 빠르게 먹을 수 있으니 한국 전투식량이 그 부분에서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 군인들이 미국 전투식량과 교환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가 많나요? 아니면 교환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나요?

벤자민: 일종의 화폐와 같이 기능합니다. 미국식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군인들도 다른 전투식량을 먹어보고 싶어서 합니다. 따라서 쌍방 간의 교환이 이루어질 이유가 있습니다. 

팟캐스트: 그래서 한국 군인들은 MRE에 관심이 별로 없나요?

벤자민: 아뇨. 항상 관심이 있습니다. 서로 교환하면서 즐거움을 찾게 됩니다.

팟캐스트: 한국 군인들과 훈련하시면서 입양되지 않으셨다면 한국군에 입대하셨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적어도 2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니까요.

벤자민: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제 직무 수행에 워낙 관심을 쏟다 보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한국군이나, 경찰이나, 사회 복무를 진행하게 되었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는다면 최근 18개월로 복무기간을 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네. 18개월에서 2년 정도 의무 복무를 해야 했을 겁니다. DMZ를 순찰하면서 파주 지역에서 근무하는 전방 군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일어난 일은 잘 압니다. 현재 저는 미군 장교가 되어서 한국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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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한국에서 장기간 살기로 한 입양아들 대부분이 입양, 한국의 입양에 대한 정책,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그리고 한미동맹의 일부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벤자민: 제 한국에서의 경험은 아주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에 있게 된 사실이 아주 기쁩니다.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에 귀국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졌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과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한국인으로 인식하고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고, 말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레스토랑이나 다른 곳에 가면 항상 저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물론 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한국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매우 잘 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반응이 바뀝니다. 사람들이 농담이지만, 한국어를 더 잘하면 돌아와라, 한국어를 더 잘해야 한다고 반응합니다. 농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제가 혼나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전 한국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무지가 절 신경 쓰게 만드는 일들입니다. 

벤자민: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원할 때만 제가 한국인이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인이 아니어야 할 때는 전 그냥 미국인입니다. 그게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전 한국인입니다. 한국 혈통의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그러니 제가 한국어를 못한다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이유로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회의입니다. 제가 회의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절 벤 화이트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가 한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이냐고 묻습니다. 제가 그렇다고 답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친절하게 대응해줍니다. 동시에 자신들의 이득을 얻을 수 없는 회의면 어차피 외국인이지 라는 반응을 합니다. 결국, 자기들의 이득을 위한 행동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팟캐스트: 한국에서 장기간 지내는 한국계 입양아들은 정치적 문제나, 문화적 문제, 그리고 자신의 혈통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 같아요.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저도 문화적 문제로 제 혈통과 제 근원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적어도 4살이나 5살 때부터 제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 부모님들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저와 공유하고 가르쳐 주실 상냥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탐구하게 도왔습니다. 또한, 지역에 있던 한국 교회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 예배를 드릴 때 한국어 교육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작은 한국 사회와의 연결을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한국 문화 행사와 유산 행사를 진행하고 음식도 소개해주고,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장하면서 한국에 가고 싶다, 제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물론 한국으로 여행가기에는 문제가 좀 많았습니다. 시간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하지만 돌아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 혈통과 유산을 진짜 한국에서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코리아타운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제 혈통과 뿌리를 찾고 싶어서 한국에 항상 오고 싶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에 와서 그걸 실제로 하실 수 있었나요?

벤자민: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분이 제 탐구를 도왔습니다. 제가 만난 한국 군인 분들이 많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군인 중 몇몇은 저와 같은 입양아였습니다. 또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입양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입양아 군인 사회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팟캐스트: 군대 내부에도 입양아 사회가 있군요.

벤자민: 네 확실히 그러한 사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움이 됩니다. 한국군도 한국계 입양아들이 미국에서 자라서 군인이 되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낍니다. 보통 경우에는 한국계 미국인과 더 자주 교류를 하지 한국계 미국 입양아들과는 교류할 기회가 적으니까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인들이 입양아들에 대해 가진 인식이나 관념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여전히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벤자민: 제가 묻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에게 묻지 않는다면 입양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정부가 한국계 입양아들이 한국에서 친부모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친부모를 찾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일들은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들이었습니다. 그 법을 우회하려고 하는 일이나, 정보 자체를 찾는 일이 아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제가 입양 기관이나 관련 조직에 찾아가면 “관련 서류가 없어서 정보를 제공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입양아들을 돕고 싶지 않거나, 적어도 관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바뀌어서 한국이 이러한 법안이 부모님을 찾는 입양아들의 탐색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제가 이 주제에 가진 불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친부모의 성함이 자주 볼 수 있는 이름인가요?

벤자민: 제 어머니의 성함은 아주 흔한 이름이지만, 제 아버지의 성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친어머니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머니께서 자주 이사를 하시는 편이라 주거지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팟캐스트: 친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시나요?

벤자민: 네. 이미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준비해온 가능성입니다. 해외 입양아기도하고 긴 시간이 지났으니 더 그렇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주거지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어머니를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얻은 정보는 어머니의 최근 주거지였습니다. 전 그 사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말하기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팟캐스트: 입양 자료에 왜 입양 제도에 맡겨졌는지에 대한 정보는 있었나요? 

벤자민: 제 자료에 따르면 두 분 다 미성년자였고 교육을 끝내고 싶어서 하셨기 때문에 저를 입양 제도에 맡기게 됐습니다.

팟캐스트: 그렇군요. 그럼 부모님이 아직 젊으시겠네요?

벤자민: 네 아주 젊을 겁니다.

팟캐스트: 한국으로 이주하려는 입양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있나요?

벤자민: 전 여기 오길 원했습니다.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고, 같은 혈통의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면 한국에 와야 합니다. 이 경험 자체가 아주 가치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만 살거나 코리아타운만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문화 경험에 한계가 있어, 뿌리를 찾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돌아올 생각이 약간만 있다고 하더라도 뿌리를 찾기 위해서 한국 방문을 추천합니다. 물론 뿌리 찾기를 원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고 싶다면 오시는 것이 바르다고 봅니다. 아주 좋은 경험이기도 하고 최소 2주간은 지내면서 한국을 만끽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한국 생활이 한국 방문과 다르다는 의견에 동의하시나요?

벤자민: 네. 한국을 여행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다른 경험이었을 겁니다. 한국 문화를 전부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말에 부산을 방문하는 등, 중요한 점만 경험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 살게 된다면 한국 제도와 한국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로 이사하고, 친구들과 같이 식사하는 행동이 그렇습니다.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과 연계를 하고 한국의 일상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 경험이 생활과 관광의 차이점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어려운 질문이지만 20년 뒤의 자신 모습을 어디에 두고 계시나요? 한국? 아니면?

벤자민: 저의 진로를 위해서 여러 준비를 했습니다.

팟캐스트: 20년 계획을 하셨나요?

벤자민: 네 계획했습니다. 여러 진로 계획이 있습니다. 여전히 미군에서 복무하고 있다면 외국 근무 장교로서 대사관에서 외교관들의 조언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국무부 직원으로서 정부와 일하거나 국방부에서 국제, 동아시아 관련으로 일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원이나 상원의원이 되기 위해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미래 계획이 있습니다. 

팟캐스트: BLM 깃발이 주한 미국 대사관에도 걸렸고. LGBTQ 깃발도 걸렸다가 내려갔죠. 그 사실과 관련해서 의견이 있나요? 

벤자민: 우선 LBGTQ 깃발이 먼저 걸렸습니다. 과거에도 여러 번, 현재 주한 미국 대사이신 해리 해리스 임기 중에도 걸렸습니다. 보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반응이 달랐습니다. BLM 깃발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도 1910-20년 일본 제국 아래에서 압제를 당한 적이 있으니 이해한다고 말을 하셨습니다. 즉 우리 과거로 인해서 그 사실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해 자체를 선별적으로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 사회 정의나 사회 평등의 일부는 과거와 연관이 있으므로 지지하지만, 전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점은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이러한 논쟁에는 항상 구멍이 있지만 그래도 미국 대사관이 다양성과 포함성을 알리고, 미국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고, 대사관에서 성 정체성과 BLM을 지지해줬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습니다. 

팟캐스트: 군대에서 게이이시고, 한국에서 게이이시면서 어떤 것을 배우셨나요?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나요?

벤자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제 성정체성을 숨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이야기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직장 환경에서는 서로 알고 지낼 필요는 없는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하러 왔고, 그 일을 끝내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제 직업윤리는 제 일이 제 능력과 저 자신에 관해서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저에게 와서 “여자친구가 있나요? 아니면 게이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여자친구는 없지만 게이입니다.”라고 답합니다. 항상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하죠. 물론 한국군 관련해서는 좀 더 복잡합니다. 한국군에게 제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좀 더 어렵습니다. 한국군 내부에서 LGBTQ에 대한 적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LGBTQ 성정체성을 가진 군인들이 군 당국에 발각되었고 감옥에 갔습니다. 동성애를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팟캐스트: 한국군이었나요?

벤자민: 네. 한국군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군에게 커밍아웃 하는 데에는 불편합니다. 알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동시에 일과 상관이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군 모두가 차별적이나 편견을 가지고 절 바라볼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을 무릎 쓸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에서 복무하고 있는 친구들이 저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3년이나 이곳에 지내면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되고 그중 하나가 친구들이 저에 대한 평가하는 일이었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친구들은 절 잘 생겼다고 하고, 미국인이기도 하니 인기 좋을 거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받아넘겼고, 친구들이 이해하지만 묻기에는 부끄럽고, 저도 알려주기는 모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팟캐스트: 그래서 친구들 대부분이 알아챈 것 같다고요?

벤자민: 대부분 한국 친구들과 미국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말하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결국, 군대가 보수적인 사회로 보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LGBTQ 문제에 대해서 지지해주는 군인들을 많이 만났고 그러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서로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서로를 지켜주는 겁니다. 보수주의자이건, 중도주의자든 저를 지원해주고 저도 그들을 믿고요.

팟캐스트: 군대의 태도가 많이 변화한 느낌이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묻지 않고 말하지 않기(미국 클린턴 행정부 시기 시행되었던 미군 정책. 미군 군인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지 않는 대신, 밝히지도 않게 했다.) 정책에 대해서 논의했죠? 

벤자민: 네. 최근 미군에서 다양성과 포함을 추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화에 관한 관심도 늘었습니다. 미국은 거대한 인종의 용광로이고 군인들에게 그 다양성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수적이나 무지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팟캐스트: 현재의 정책은 어떻지요? 성 정체성 권리와 같은 권리가 지켜지고 있나요?

벤자민: 제가 현재 이해하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몇 년 전에 법안이 통과된 뒤로 정확한 정보까지는 알아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팟캐스트: 적어도 게이라는 사실을 공유해도 될 정도의 환경은 되었군요?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성 소수자라고 해도 같은 권리와 이득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팟캐스트: 현재 교제 관계가 있나요?

벤자민: 현재 교제 관계는 없습니다.

팟캐스트: 한국인들과 교제하신 적이 있나요?

벤자민: 네. 그리고 다른 관계와 다른 바 없습니다. 두 한국인이 같이 게이입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의 장벽을 넘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이성애자든 교제하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한국인과 교제하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장벽 극복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장벽입니다. 

팟캐스트: 또한 한국 문화적으로 사람들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 영향을 끼친다고 보셨나요? 미국인이시니 정체성에 대해서는 좀 더 개방적일 수 있지요?

벤자민: 네. 미국인들이 가진 특권 중 하나입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성정체성을 밝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친구들에게도 밝힌 거야?”라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그렇지.”라고 답합니다. 그럼 더 놀랍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털어놓거나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국보다 미국에서의 개방성이 대단한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국을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미국인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미국인 상대를 만나고 싶나요, 아니면 한국인 상대를 만나고 싶나요?

벤자민: 국적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이해해주고, 제 직업과 제 진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상대를 원합니다. 군대에 있다 보니 직업 시간이 복잡하고 이상할 때가 많고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상대에게 원하는 면모는 이해심과 호환성입니다. 물론 한국계 미국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이 상대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문화와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이해하기 쉽고, 한국 요리도 해줄 수도 있을 겁니다. (웃음)

팟캐스트: 한국인은 생각해 보셨나요?

벤자민: 절 이해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 그리고 군인이라 문제가 있는 점도 있습니다. 많은 군인이 한국에서 1년 동안 파병 나와 있다가 돌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군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주저하게 됩니다. 사람을 알아 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불안정성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팟캐스트: 미군 장교이고 공식적으로 게이라는 점도 신기하겠군요?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못 믿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문제가 있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그걸 막는 규칙들이 존재하니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지휘 계통도 믿고, 좋은 친구들도 많고, 동료들도 있습니다.

팟캐스트: 벤자민씨에게 연락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것이 있나요?

벤자민: 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이메일 계정이 있으니 연락해주시면 됩니다. 꿈을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노력하십시오. 문제는 극복할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팟캐스트: 차가운 라비올리를 먹고 나면 또 다른 날이 오죠.

벤자민: 네 그렇습니다. 다음 날은 또 다른 날입니다.